2017년 8월 31일 목요일

<정규직 전환의 열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2004년 우리금융지주회사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당시 내 상사였던 분이 말하길 자기 운전 기사를 바꾸었다고 했다. 자기 출퇴근 길에 운전만 하는 사람의 연봉이 거의 8천만원이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우선 교체했다는 것이었다. 

운전 기사가 어떻게 그런 연봉을 받고 있었을까? 연공서열식 호봉제 때문이었다. 운전 기사로서 하는 일이 나이와 상관 없이 똑같아도 30년이 넘게 일하면 호봉이 그 수준까지 기계적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호봉제의 맹점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최소한 과거 노사협상 때 하급 직의 호봉에 상한을 두어 그 상한이 바로 위 직급의 중간 수준 이상을 가지 못하도록 설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요즘의 정규직/비정규직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우리나라는 호봉급 제도가 강해 생산성에 부합하는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고용, 외주화 확대 압력이 크다. 이를 자본의 착취라고만 여기는 발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더 부합하는 직무급 쪽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깜깜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가로등 아래를 맴돌며 계속 열쇠를 찾는 시늉만 하는 격이죠" 라고 했었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어제 어느 국회의원과 점심을 하면서 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과거에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경험도 있고 민주노총에서 일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자연히 최근 정부 부문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얘기가 흘렀다.  

그는 지금 정부가 너무 졸속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 대안으로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물었다. 비정규직이 겪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일괄해서 급하게 추진하면 단지 지금 공공부문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비 지나치게 높은 임금을 자기들만 누리게 되는 또다른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공공부문 노조가 지금의 불합리한 호봉제를 고집하는 한 이 문제는 해결책이 안 보인다.  

그런데 민간기업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민간기업은 어떻게 대처했나? 생각난 김에 대강 정리해봤다. 

민간에서는 크게 봐서 다섯 가지 방법으로 대처해왔다. 

첫째 방법은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호봉제를 조금씩 수정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임금 인상을 하더라도 고직급 호봉에 대한 인상 폭을 하직급 보다 낮게 하여 연공에 따른 임금 배율의 폭을 낮추도록 노력해왔다. 대신 직급이 올라갈수록 총지급액에서 정액급 대비 변동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도록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하던 성과연봉제의 방향이 바로 이것이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기업 부문에서는 점진적으로 꾸준히 추진한 것과 달리 정권기간 달성하려는 욕심에 졸속으로 추진해서 불법 논란에 휘말리다가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되었다.

둘째 방법은 모회사 안에 저숙련 노동자 용 직군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증권사에 선호하는 방법이다. 기존 정규직 직원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직무급 도입을 정규직 노조의 저항 때문에 추진하지 못하자 일부 저숙련직에만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 지점에서 현금 출납등을 담당하는 창구직 직원을 옛날에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다가 무기계약직으로 1차 전환했다가 다시 이들을 별도의 직군인 정규직으로 2차 전환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것 역시 거의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다. 

셋째 방법은 자회사를 만들어서 고숙련 노동이 아닌 직원들을 자회사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청소, 빌딩 관리 등 업무가 많은 경우에 사용한 방식이다. 이들 자회사는 모회사에 비해 임금수준이 전체적으로 낮게 설계되었다. 현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등에서 추진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거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숫자가 많지 않으면 관리 편의를 위해 외주 하청을 주었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는 정규직 직원이 2천명이 안되는 반면 외주 하청 비정규직 인원이 8천명이 이른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은 어느 정도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었고 지금처럼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식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인다. 

넷째 방법은 기존의 비정규직을 그냥 기존의 정규직 호봉제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경영진이라면 가장 꺼리는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기존 정규직 노조에서도 떨떠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원들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자기들이 누리던 특권의 달콤한 맛이 덜해진다. 자기들만의 임금 상승 요구를 관철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상대적 숫자가 바뀌어 노조 선거구도에도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다섯번째, 본격적인 직무급제로 가는 중간 단계로서 연봉제를 일부 도입하거나 사업본부 별로 직급체제를 설계하기도 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도입되었다는 연봉제는 사실 본격적인 연봉제가 아니라 이름만 연봉제인 경우가 많았다. 직급이 올라가면 연봉이 껑충 뛰는 기존의 계단식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게 기존 한국 대기업에서 최대한 노력한 결과다. 그것도 거의 20년에 걸쳐 진화한 모습이다.

민간기업들은 이런 방법들을 통해 기존의 노동제도가 갖고 있는 경직성에 대처해왔다. 물론 이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여전히 신규 직원 대비 장기 근속자의 임금 배율이 너무 높다. 그래서 사오정이란 현상도 생겼다. 우리가 만든 우리만의 지옥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인사제도 역시 그러하다. 민간 기업이 이런 변화를 지난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추진해온 것과 달리 한국의 공무원과 공사 부문은 과거의 호봉제가 제공하는 특권을 고수해왔다. 김대중 정권때 4대 개혁으로 내건 공공부문 개혁과 노동개혁은 모두 이 연공 호봉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을 몇년에 걸쳐 응시하면서 젊은 날을 보내는 공시족이 IMF 위기 이후 대거 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서 당하던 억울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기존의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누리던 특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평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민간기업이 그동안 진화해온 과정을 잘 되살펴서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점진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제일 경계할 것은 물론 졸속 일괄 시행이다. 이번 정권 기간 안에 다 해결하려고 하면 될 일도 안된다. 그게 박근혜 정권이 남긴 교훈이다. 이런 건 좀 배우자.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좋은 적자와 나쁜 적자 : 적자 재정,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정책에 따른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에 관해 보수 세력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앞으로 국회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각 언론들도 많은 기사를 써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시민들로서는 누가 맞는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내 생각에 한국인들이 경제 문제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재정 적자와 국민연금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한국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늘 주장해왔다. 예를 들어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는 1.7% 였다. GDP 대비 2% 정도의 재정 적자를 갖고 시비를 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 이는 과거 정부 관료들이 균형재정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생각하도록 세뇌를 해 놓은 결과다. 근래에 들어서는 보수 정치세력이 복지국가와 이를 위한 증세를 막기 위한 근거로 재정적자를 갖고 국민들을 협박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내가 장기 재정 수지를 어떻게 보는지를 간략히 설명해보았다. 비록 숫자가 나와서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요점을 깨치고 나면 머리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다. 시작하자.
장기 재정 수지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 대비 부채의 비율이 얼마인가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만 되면 아무 상관이 없다. 갚을 능력은 세금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세금 수입은 GDP에 비례한다. 따라서 재정 적자가 나도 그 덕분에 경제 성장이 얼마나 촉진되는가가 중요하다. 이게 핵심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지금 한국처럼 경상 GDP가 5% 증가하는데 재정적자가 2~3%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과 같이 부채비율이 40%이고 경상 GDP가 5% 증가하는 국가에서 재정 적자가 40년 동안 매년 GDP 대비 2%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40년 후 2057년 부채비율은 38%로 도리어 약간 감소한다. 재정적자가 매년 3% 난다고 해도 40년 후 부채비율은 57%일 뿐이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단순한 셈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계산의 정치경제적 의미다. 4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재정적자가 2~3% 발생한 시나리오인데도 이렇다. 그러니 재정적자가 몇년 발생하면 뭐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소란을 부릴 일이 아니다. 
장기 국가 부채비율 분석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분모인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경상 GDP 성장률이 위에서 말한 5%가 아니라 4% 라면 재정적자 2%와 3% 시나리오에 따른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46%와 68%로 증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만 해도 감당할 만하다. 만약 성장율이 3%로 떨어지면? 재정적자 2%와 3% 경우에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59%와 82%로 상승한다. 일본의 국가 채무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해 발생한 재정적자 탓도 있지만 경상 GDP가 실질 성장율 하락과 디플레이션으로 제자리 걸음을 한 탓도 크다. 
그러면 한국의 장기 경제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큰 위협은 이미 진행 중인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다. 이건 단순한 양의 문제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경제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 다음 위협은 각 국민들의 생산능력이다. 이것은 질의 문제다. 현재 한국은 진즉 지식경제로 전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우기 경쟁에 따른 상대평가와 원청/하청 소속에 따라서 보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 양성 시스템과 원청/하청 시스템은 각 개인의 생산성과 보상 사이에 괴리를 낳게 한다. 생산력과 상관 없는 보상 시스템을 고집하는 경제체제로는 각 개인의 생산능력을 효과적으로 높이기가 어렵다. 
그러면, 재정 확대 정책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 잣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위에서 장기 재정 수지 분석에서 중요한 것이 국가부채 비율이고, 또 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경제성장률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잣대는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이 경제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이어야 한다. 같은 재정 확대, 같은 재정 적자라고 해도 그것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그 적자는 결국 나중에 생산력 증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 거꾸로 만약 그 재정 확대가 생산력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부담도 더 커진다. 
일본이 오랫동안 대규모 적자 재정을 지속했는데도 경제성장이 침체되고 국가부채비율이 200%가 넘게 올라간 이유도 그 재정 확대가 고령화를 해소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좋은 재정 적자와 나쁜 재정 적자를 구별해야 한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장기적 경제 성장률 상승에 도움이 되는 재정을 확대하느라 생기는 적자는 '좋은 적자'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는 재정이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건강보험제도 개선, 아동수당 제도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앞으로 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더 구체화 되길 기대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경제적 보상체제의 왜곡을 해소하여 국민들의 생산력 증진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교육 재정을 쓰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공교육 부담을 늘리고 사림 학교에 지원하는 재원을 줄여야 한다. 이것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에 반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원청 부문인 국가 공무원 인원 수 대폭 확대 같은 정책은 우려스럽다. 지금과 같은 보상 시스템을 놔두고 추진하면 도리어 원청 부문의 보상체제 왜곡을 증폭시키고 이에 따라 경제 전체적인 생산성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첨부한 기사는 전슬기 (Seulgi Juhn)기자가 쓴 기사다. 약간 길지만 기초적인 숫자를 한 곳에 잘 정리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적자성 부채와 자산성 부채를 구별하지 않은 점이다. 제대로 하려면 적자성 부채만 갖고 얘기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첨부한 표에선 이 둘을 구별해 보여주면서 기사 글 안에서는 이에 상응한 언급이 없다. 이 문제는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