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7일 화요일

저출산 대책에 옮겨붙은 원하청 질병

제목을 보고 무슨 소리인가 싶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원청-하청을 한국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병이란 뜻에서 학질처럼 “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다. ‘원하청 질병'
이 병은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전근대적 의식에 잠재하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교합하는 모든 사회 부문에 퍼져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 원청-하청 시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유용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그런 시각에서 조명되지 않는 문제도 알고 보면 원하청 질병에 걸려 있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이 한국 경제의 최대 약점으로 '저출산' 문제를 꼽았다는 조선일보 기사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루 장관은 지난 3일 열린 한·미 재무장관 회담에서 "과거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도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어 경제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핵심 과제가 인구 문제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침체와 소득 양극화라면 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그동안에도 한국 내외에 많았다. 이제는 미국 재무장관도 이를 알고 한국 경제 부총리에게 물을 지경이 되었다. "너 이거는 알고 있냐, 안다면 뭐하고 있는 거냐?"는 우호적인 우려 또는 질책으로도 들린다. 
기사에 의하면 유일호 부총리는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안 그래도 출산율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다양한 출산 장려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답했다.
짦은 기사이므로 이것이 유부총리의 답변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했을 수 있지만 나로서는 이런 그의 응답이 흥미롭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우선, 나라면 출산 장려 대책이라는 시각에서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출산은 매우 복합적인 사회현상이다. 이런 문제는 대증치료에 가까운 '출산 장려 대책' 같은 것을 들이댄다고 해서 개선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정부가 출산 장려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정부가 출산 장려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시도한 것이 2005년 전후였다. 벌써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마련 중'이라니 약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마 말 그대로 추가적인 정책안을 마련하고 있거나, 유일호씨도 그 동안의 정부정책이 미흡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한 정책은 그야말로 언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면 방향이 잘못 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요즈음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하나만 낳는 부부가 늘고 있다. 10년 전부터 서른을 넘긴 여성의 결혼식이 흔하게 되더니 요새는 어느덧 서른이 안된 여성의 결혼식이 도리어 드물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4년 서울 시민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2.8세, 여성 30.7세였다. 평균 초혼 연령을 남성과 여성 모두 서른을 넘긴 것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빨리 상승했는지는 과거 통계와 비교해 보면 안다. 20년 전(1994년)에는 각각 28.6세, 25.8세였다. 10년 전인 2004년에는 남성 30.9세, 여성 28.3세였다. 
그래서 30대 남녀의 결혼률이 서울의 경우 남자는 60%, 여자는 70% 밖에 안된다. 
이렇게 늦게 결혼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내 어머니는 1956년 만 24세에 결혼해서 넷을 낳으셨는데 막내 동생을 낳았을 때가 서른 한살이었다. 60년 전에는 막내를 낳을 시기에 요즈음은 처음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아이를 셋 가졌을 때 이런 저런 혜택을 주겠다고 하니 언발에 오줌누기란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선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너무 늦추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다.
그럼 왜 한국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 할까?
일반 여론이나 보수적인 인사들은 결혼율이나 출산률이 낮아진 이유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은 것을 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피상적인 얘기다.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가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저출산의 이유로 든다면 무책스러운 얘기를 하는 것이 된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헛소리를 제외하고 보면 한국의 결혼율이 낮은 이유로는 취업율이 낮은 것과 양육비와 교육비가 높은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5세~29세 취업율이 40%를 맴돌고 있다. 이는 OECD 평균 50%에 비해 약 10%정도가 떨어진다. 청년실업이 문제라는 유럽의 경우도 이 숫자가 60%에 달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이 통계는 매우 돋보인다.
그런데, 낮은 취업률과 높은 양육비용 및 교육비용은 경제 구조상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어렵다.
아주 작은 싸이클 하나만 얘기해보자. 너무 높은 비율의 학생들이 대학교에 진학한다. 교육부와 교수들이 경직적인 학교를 운영해서 취업이 어려운 전공 과목 정원을 줄이기 어렵다.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 전공을 택해야 한다. 이분화된 노동시장에서는 취업 초기부터 원청 부문에 들어가지 않으면 두번째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취업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대기업은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다. 높은 임금을 주어 많이 고용하느니 하청업자에게 일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렇게 해서는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질 수가 없다. 내수가 죽는다. 원청에 껴들어간 사람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낫다.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에 가야 한다. 
자, 이렇게 요 싸이클 하나만 해도 어떻게 바꿀지 막막하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주택 비용이다. 소득 대비 너무 높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싸이클이 뒤에 숨어 있다. 
이렇게 문제를 각자 하나씩 따로 보더라도 각각이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 고려하려면 아예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런 전체 경제 구조상의 제약 조건을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그나마 이미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실시하고 있는 정책도 그 방향이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좋은 예가 누리과정이다. 2012년부터 무상보육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누리과정을 통해 현재 학부모들이 지원받는 금액은 유치원(유아 학비+방과후 과정비)은 공립 11만 원, 사립 29만 원, 어린이집은 보육료 22만 원과 방과후 과정비 7만 원 등 인당 총 22만~29만 원이다.
지금은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 배정을 갖고 중앙정부와 지방 교육청 사이에서 논란을 벌이고 있으나 내 생각에 한국의 보육정책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이러한 국가보조금을 정부가 부모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보육기관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보육기관들이 공립이 아니라 대부분 사립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더욱 이상하다.
지금은 주로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갈 경우 국가가 재정 보조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게 설계된 정책이다. 
누가 되었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돈이 들어간다. 보육기관에 보내든 말든 그러하다. 그렇다면 보육 보조금은 아이를 기르고 있는 가족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 돈을 집에서 아이를 기르기로 한 엄마가 일상 생활비에 쓰든 아니면 가까운 일가붙이에게 아이를 맡기든 정부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어린 영유아는 어린이집 같은 시설보다는 엄마나 가족이 직접 돌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너무 어리면 아이도 힘들고 어린이 집에서 돌보기도 어렵다. 내 경험으로도 미국에서 아이를 기를 때만 두살이 되지 않은 아이는 유아원에서 받지를 않았다. 2살이 넘은 아이도 되도록이면 종일반이 아니라 세시간만 맡기는 반일반을 유치원에서 권했다.
지난 총선에서 나는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정에게 직접 지급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지만 모두들 회피했다. 지역구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들이 반발한다는 것이었었다. 직접 지급 방식으로 바꾸었을 때 얻을 수 있는 표는 불확실한데 어린이 집과 유치원장의 반발로 잃을 수 있는 표는 확실하다는 계산이었다.
가정의 보육비를 지원하고 싶다면 이런 방식에 비해 정부가 부모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굳이 소득에 따라 차등하고 싶으면 할 수도 있다. 우리보다 보육 지원을 먼저 도입한 다른 나라들 대부분이 이렇게 직접 지급 방식을 선호한다. 한국처럼 사립 유치원에게 까지 국가가 보조금을 주는 방식은 아주 희귀한 사례다. 
그런데 이렇게 재정 보조를 국가가 수혜자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중간에 있는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지불하는 방식은 한국정부의 다른 부문에서도 나타나는 방식이다. 청년 고용지원을 하기 위해 정부가 50가지가 넘는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연간 2조원이 넘는 돈이 들지만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 효과는 미미하다. 농업 역시 사업 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농민에게 직접 돈이 지급되는 액수는 전체 농정 예산의 10%대에 불과하다. 
재원을 배분하는 중앙부처 관료는 자원배분 권한 때문에 권력이 늘고 자리가 더 필요해진다. 이를 받아서 배분하는 지방 교육청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결국 무상보육이라는 아름다운 취지로 시작한 제도도 이렇게 원청업자의 권력을 늘려주는데 악용되었다. 
이런 체제는 일단 고착화되면 없애기가 어렵다. 이를 통해 생사가 정해지는 소수의 기득권 층이 생기는 반면 이를 개혁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층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한국 사회의 원청과 하청이란 병은 이렇게 좋은 취지로 시작한 무상보육정책도 감염시켰다.

댓글 2개:

  1. 직장맘의 입장으로서 누리과정으로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한마디 해보자면,
    원청과 하청이란 병이 무상보육정책만 감염시킨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린이집 한반에 원아가 십여명 정원가준일때 직장맘은 몇%라고 생각하세요? 50%도 안됩니다. (제기준 서울형)
    어린이집 원비로 지원되니까 가정보육하는 맘들도 공짜인데 안보내면 손해라고 생각해서 두살 세살때부터 다 보내고, 어린이집은 원아수급 걱정 안하니까 보육질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각종 학대문제 나오고 원장의 비리터지고 하는겁니다.
    덕분에 직장맘은 더 힘들어지고 퇴근해서 6시 7시 가면 직장맘애들 서너명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집에있는엄마들,, 누리교육과정이다 모다 해서 서너시면 일정이 끝나고 다 가버리거든요
    그럼 남은 애들은 찬밥,,, 교사들이 돌어가며 걍 보는 정도,,, 서울형어린이집인데도 이런수준...
    누리과정 전일땐 이렇지 않았습니다
    10시부터 2시 3시 저렇게 하는 교육은 그야말로 유치원에서 하고,,, 아린이집은 보육,, 직장맘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다소 그들입장에선 열악했겠지요
    보건복지부 산하 어린이집원장들의 로비로 누리교육과정을 유치원과 공유하게 되면서 어린이집이 교사나 교육의질은 유치원보다 떨어지면서 모양과 형태만 유치원 흉내를 내게된 형국이 된것이죠
    그래서 직장여성들의 아우성은 더 해결이 안되고 있고,,, 어린이집 학대와 비리는 끊이지 않고
    결국 원청에서 하청으로 지급되는 수당을 어린이집도 받게 허려고 누리과정의 확대로 보육의 질도 떨어지고 질떨어지는 보육교사의 양산, (무시험 저격제도) , 직장여성들의 고충만 가중,,, 기관들의 배불림,,, 뭐 이렇게 된건가요,,??
    두서 없이 주절댔는게 ㅠㅠ
    방송 열심히 듣고 있어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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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음 그런데 보조금을 수혜자에게 직접 주는 게 좋다는 주장은
    공립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현 상황과 맞지 않는거 아닌가요?
    "그 돈을 집에서 아이를 기르기로 한 엄마가 일상 생활비에 쓰든 아니면 가까운 일가붙이에게 아이를 맡기든 정부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면 모든 공립도 사립으로 바꾸는게 맞지 않나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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