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일 토요일

또 하나의 탱자, 적격대출

작년 한국 금융시장의 히트 상품은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적격대출이었다. 적격대출(Conforming Loan)이란, 주택금융공사가 미리 정한 기준에 맞추어 은행이 대출을 하고 난 후 이를 공사에게 넘기는 대출을 뜻한다. 작년 3월에 장기 고정금리 대출로 출시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2월말까지 총14조원까지 증가했다. 

내가 적격대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적격대출의 빠른 성장속도 때문이었다. 작년 3월에 시판되기 시작했는데 12월 말에 가서 이미 14조원이 팔렸다. 무엇이 되었든 이렇게 빨리 팔리는 금융상품은 대개 나중에 뒤탈이 난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해볼수록 더 이상했다. 주택금융공사에는 전부터 장기고정금리 대출 상품이 있었다. 보금자리론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이 정한 인수 기준에 맞추어 고정금리로 장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를 팔았다. 처음에는 은행들에게 대출 수수료를 주면서 모집하다가 근래 들어서는 인터넷으로 직접 신청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아 소비자들에게 부담스럽고, 양적 경쟁에 길들여진 은행들이 자기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 대출에 소극적이어서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2009, 2010년 각각 약 6조원 정도 팔리다가 장기금리가 낮아진 2011년에 가서야 약 9조원 정도로 늘었다. 그런데 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장기고정금리인 적격대출은 무엇이 다른지? 같은 고정금리대출인데 갑자기 선풍적으로 많이 팔린다고? 심지어는 신규 입주 아파트 담보대출의 반을 차지한다는 보도도 나왔다(여기).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금자리론과 무엇이 달라서 적격대출이 많이 팔리는 것일까? 

얼핏 보아서 유일한 차이는 그 대출이 은행 장부에 계상되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한 것 처럼 보였다. 보금자리론은 대출이 이루어지는 과정 내내 그 대출이 은행 장부에 계상되지 않는다. 은행은 중개 역할만 한다. 따라서 어느 은행의 문을 두드리든 간에 소비자에게 제시되는 금리는 동일하다. 적격대출은 은행이 자기들이 각각 정한 금리로 먼저 고정금리 장기주택대출을 팔아서 자기 장부에 기재한다. 그 후 한 달 정도 후에 공사에 넘긴다. 그 한달 정도의 기간 중 시장의 장기금리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이자 위험을 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적격대출이 보금자리론에 비해 더 잘 팔려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은행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외국계 은행에서는 내부 가격 기준으로 가장 마진이 많이 남는 상품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봄에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에서는 적격대출을 팔면 거의 1% 정도 순수익이 남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자기 은행 대출을 팔면 0.6% 정도 마진이 남는 것으로 내부관리회계에서 계산한다고 했다. 자기 장부에 남는 대출의 경우 자본을 쓰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초여름이 되면서 심지어는 적격대출의 금리가 보금자리론보다 0.5% 씩이나 낮은 경우도 있다는 보도(여기)가 나왔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주택금융공사 사이트에 가보아도 공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매우 피상적이어서 이 상품의 특성과 구조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니 국가 재정으로 운영하는 공사가 신용 위험을 지고 파는 상품인데 왜 이토록 상품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게 해놓았을까?

그래서 내가 속해 있는 한국금융연구센터의 정책패널에 적격대출에 대한 조사를 해서 발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주 집필자로 동국대의 강경훈 교수가 나섰다. 강교수가 쓴 글을 기반으로 패널 참가자들이 여러번 토론을 거쳐서 최근 주택금융공사의 적격대출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자세한 것은 센터 사이트, 또는 한국금융신문 보도)

패널에서는 1) 아직까지 거치식 대출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2) 상환능력, 신용등급 등 채무자 요건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3) 민간 금융회사가 수취하는 수수료를 스스로 결정하므로 과다 책정 가능성이 있고, 4) 관련 통계가 제공되지 않고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헀다.

이중에서 내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은 거치식 대출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내부 정보에 의하면 2년에서 5년까지 이자만 내는 거치식 대출이 약 50%에 달한다. 그런데 공사는 전체 적격대출 중 거치식 대출의 비중을 비밀로 하고 있다. 국가가 신용위험을 지는 대출인데 그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궁금증이 풀렸다. 적격대출이 그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금리가 낮은 것도 작용했지만, 당분간 이자만 내고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재작년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을 30%까지 높이겠다고 했는데 그 방편으로 거치식 고정금리 대출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가장 큰 문제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6%에 달하도록 놔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자만 내고 있는 거치식 대출이 80%에 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정책목표를 고정금리 대출 비중에 둘 것이 아니라 거치식 대출 비중 축소에 두어야 했다. 그런데 정책 목표를 고정금리 비중으로 잡고보니 그에 맞추어 거치식 고정금리 대출을 주택금융공사가 들고 나온 것이다.

보도자료가 나간 후 흔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보도자료가 나간 그날 주택금융공사가 바로 반박문을 내었다. 그래서 신문 보도에는 센터의 주장과 공사의 반박문이 같이 나갔다. 이렇게 신속한 대응은 예외적이다. 

그 반박문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막상 거치식 비율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면서 최근에 거치식 대출 비중 한도를 과거 70%(!!!)에서 30%로 낮추었다는 말만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패널 보도자료에서 서술해놓은 얘기다. 아니, 글쎄, 거치식 비중이 얼마나고요!

신용등급 요건이 낮은 것에 대해서는 평균 신용등급을 들어 대답하고 있다. 헐! 문제는 신용등급 7등급, 8등급에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들 비중이 얼마나 되냐는 것인데 일부러 딴청이다. 우리가 언제 평균 물어봤나고요!


신용위험은 낮단다. 그 근거로 연체율이 낮다는 것을 들고 있다. 끙! 아니, 대출이 나간지 일년도 안되었는데! 연체율이 낮은게 당연하다. 빌리는 사람의 신용등급과 상환능력은 별 관심이 없고 담보 비율만 챙기는 기존 은행권 관행과 다를 것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작년 대출 중 약 반을 차지하는 거치식 대출 중 원리금을 모두 갚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그 때 가면 새로 대출 받아 돌려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국가 재정으로 하는 일이니 더 투명하게 하라고 하니까 기껏 반박보도자료에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하던 얘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치졸한 연막작전이다. 그런데도 순진한 기자들은 그저 받아 적을 뿐이다.


금융위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너무 빨리 늘어나는 적격대출에 경각심이 드는지, 작년 말 부터 자제를 권하고 잇다. 그러나 여전히 신규대출에서 거치식 대출 비중 한도를 30%로 한 것을 보면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이젠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정책 목표로 삼을것이 아니라 거치식 대출 비중을 줄이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

적격대출은 미국의 모기지 유동화 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일시상환 주택다모대출이 무너지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사가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은행으로부터 인수해주는 제도가 발달했다. 그러나 이런 기관이 없는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고정금리 모기지의 비율이 낮다. 그렇다고 최근의 버블 붕괴 전까지는 지금까지 큰 일이 나지 않았다. 그것만을 보아도 모기지 대출의 건전성은 고정금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환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귤이 한국에 와서 탱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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