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정책금융과 재정



지난 8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첫째,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철회하면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통합하고, 둘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현 체제를 유지하며, 셋째,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은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경제정책 수립 시 얼마나 현상 유지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2007년 9월 당시 재정경제부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일반은행의 업무 영역이 혼재되어 국책은행이 시장 마찰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제시했었다. 그 주요 내용은 산업은행의 상업성 IB기능을 점차로 금융투자회사로 이관하겠다는 것이었다. 2009년 4월 이명박 정부는 구 산업은행을 분리해서, 중소기업 지원 등의 정책금융 업무는 신설된 정책금융공사로 하여금 전담케 하고, 나머지 기업금융·투자은행 업무는 현재의 산업은행이 맡아 운영하면서 장차 민영화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처음부터 그 실현성이 의심스러웠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산업은행의 기존 역할, 특히 부실기업을 카펫 아래에 쓸어 담는 역할을 폐지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기능은 존속시켰다.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 국내적으로는 건설업·조선업·해운업이 부실화되었고, 그 중 금호그룹·STX그룹 등 대형 부실기업의 처리 과정에 정부는 산업은행을 사용했다. 산업은행은 여전히 ‘관치의 늘어진 팔’이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산업은행이 과연 정부보증에 의존하지 않는 민영기관으로서 경쟁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고, 그 은행을 사갈 주체가 나타날 전망도 안 보였는데, 게다가 여기에 계속 부실기업을 쓸어 담고 있으니 그런 은행을 누가 사가겠는가? 또 법에 규정된 정책금융 업무를 맡아야 할 정책금융공사는 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 처음부터 그 정체성이 모호했고, 끝내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발표된 방안은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국회와 언론에서는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추진한 산업은행 민영화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그동안 산은지주사 설립과 산은 예수기반 확대 과정에서 벌어진 헛발질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제개발 초기에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시작된 한국의 정책금융 체계가 더 이상 그러할 필요가 사라진 지금에 와서도 그대로 온존되고 있고, 정부 당국이 이를 경기조절을 위한 거시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으로 중앙은행이 맡기로 되어 있는 통화신용정책의 역할을 행정부가 대신하여 경기조절을 하던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정책금융 범주 확대

한편, 이번 정부 발표에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정부가 정책금융의 목적으로 시장실패 보완이나 시장 선도 기능에 덧붙여 시장 안정을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정부에 의하면, 시장실패 보완은 중소기업 지원 및 SOC 투자에 관한 것이고, 시장 안정은 긴급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 등이 해당되며, 시장 선도 기능은 해외프로젝트와 신성장 산업 지원 등이 해당된다. 시장실패와 시장 선도를 보정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해도, 유동성 지원과 기업구조조정을 하는 시장 안정까지 정책금융의 범주에 슬며시 끼워 넣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의 금융시장과 산업에 대한 개입이 이미 과도한 한국이지만 지금까지는 정책금융의 범주에 시장 안정을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2004년 카드 사태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긴박성을 이유로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에서 긴급대책으로 나온 것이지 정책적으로 아예 그 일을 자기의 주 업무로 하고 이를 위해 국가재정 주머니를 따로 차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정부 발표를 보면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부담스러워하던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를 정책금융의 하나로 포함시켜 비판의 예봉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정책금융(Directed Finance)이란 정부가 특정한 부문에 자금 지원을 결정해서 금융자원의 배분에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시장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자원 배분에 나서는 것인데, 시장기구에 의한 자원배분에 비해 과연 효율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러한 정책금융의 비효율성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정책금융의 폐해가 IMF 위기를 가져왔고, 그 후 지금까지도 중소기업을 포함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저해하고 있으며, 한국 금융산업이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IMF 위기 전까지 한국 경제에서 정책금융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가를 상기해보자. 여러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금융자율화에도 불구하고 1992년 말 예금은행 대출에서 정책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56~58%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규모 정책금융은 결국 상업은행의 대규모 부실화를 가져왔고, 결국은 IMF 위기를 초래했다. IMF 위기 후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포함하지 않은 정책금융 지원액은 2012년 말 현재 117.4조원으로서 예금은행 및 정책금융기관 원화대출액의 10.1%에 달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포함하면 각각 306.2조원, 26.2%).1)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난 대출보증 및 보험액을 포함하면 예금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의 원화대출금 중 33.1%가 정책금융의 지원을 받았고, 게다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대출금까지 합하면 49.2%에 달해, 아직까지도 정책금융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책금융 폐해 직시해야

금융시장에서 정책금융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금융산업과 시장에 끼치는 영향 측면에서만 보자. 정부가 내세우는 금융정책의 두 가지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발전인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정책금융은 바로 금융산업 발전을 막는 모순을 초래한다. 첫째, 정책금융이 비대해지면 상업금융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정책금융기관은 정부 보증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저해한다.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으므로 당장 재정에 주는 부담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금 조달은 정부 보증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결국 정부가 잠재적 부채를 떠 안는 것이다. 특히 보증을 통한 정책금융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늘면 차입자와 민간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여 우발채무를 증가시킬 수 있다. 또, 위에서 말한 좁은 의미의 정책금융만이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규모에 비해 일반정부 채무 부담이 작게 나타나지만 일반정부 채무대비 공기업 채무비율이 높다.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발행액을 제외할 경우 일반정부 채무 대비 공기업 채무비율은 80.7%(378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호주(62.9%), 일본(43.0%)보다 높다.2) 보금자리 사업, 4대강 사업, 학자금 대출 등 정책추진사업에 공기업의 부채가 동원되고 있고, 에너지 관련 시설 투자,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공공요금 인상 억제에도 동원되었다. 심지어 근래에 들어서는 저소득층 소득 지원에 정책금융과 공기업 부채가 동원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현상으로 더욱 우려스럽다. 정책금융은 한국경제의 발전 단계에 비추어 보아 이미 그 시효를 다한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조절을 전통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신용정책에 의거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정부 개입에 의한 신용정책, 부동산 부양정책, 환율정책으로 운영하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물론 재정정책의 실종이다. 경제성장률이 3%에 못 미치고, 실업자가 아무리 양산되어도 한편으로는 균형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 조절과 구조조정을 정부 의도대로 하기 위해 정책금융을 통한 신용정책의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공기업의 부채를 통해 소득 보전과 신용 확대도 추구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경제정책 운영의 틀을 그만 버릴 때가 되었다.

(윗 글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재정포럼 10월호에 권두컬럼으로 쓴 글이다.)

2013년 4월 9일 화요일

2012년 정부 결산: GDP의 1.4%에 불과한 2012년 재정적자

지난 번,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에서 2012년 예상 국가재정 적자가 19조원이라고 했었는데 오늘 최종 결산 결과가 보도되었다. 19조원이 아니라 17조 4천억원이다.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합한 지난해 통합재정수지는 18조5천억 원 흑자가 났지만, 여기서 미래에 결국 빠져나가게 되는 사회보장성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등)을 뺀 순수한 관리재정수지는 17조4천억 원 적자가 발생했다...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아직 GDP대비 1.4% 수준이어서 EU 기준인 3%를 넘지 않았지만, 해마다 관리재정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2010년과 2011년 관리재정수지가 모두 GDP 대비 1.1%였는데 작년과 같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겨우 1.4%로 증가했을 뿐이다. (말미에 사족처럼 붙인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맹꽁이 소리는 여전하다.)

한편,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방정부를 포함한 국가채무는 443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3조3000억원 늘었다. 국내총생산(GDP)대비로는 34.9% 증가해 전년(34.0%)보다 0.9%포인트 확대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재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언론기사나 기획재정부 요약보다는 보도자료 전문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첫째, 처음으로 발생주의 국가 재무제표가 나와있다. 이것은 예상되는 수입과 지출을 반영한 것으로 기업의 연결제무제표와 비슷한 것이다.

이것으로 봐도 한국의 재정은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도 인정하듯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30%에 불과해서 다른나라에 비해 한참 낮다. 게다가 순채무로 보면 한국은 그 숫자가 약 10% 포인트 감소하지만 다른 나라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진짜 채무비율이 과대포장되어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나라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르지만 그것 때문에 크게 차이가 날 이유는 없다.)

둘째, 이러한 발생주의 방식으로 계산한 채무가 2011년 대비 약 129조원이나 늘었는데, 그 중 95조원이 미래에 예상되는 공무원 연금 부채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말로는 국가부채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바로 그 공무원들 연금 때문에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부채가 현재가격 기준으로 1년 사이 95조원이 늘었다.

이것만 봐도 공무원 연금 개혁만 제대로 해도 국자 재정 걱정할 일은 앞으로 한동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3년 4월 2일 화요일

주택 양도세 해체 작업: 이제는 뼈도 안보인다

일본 동경 수산시장인 쯔키지 시장에 아침 일찍 가면 참치를 해체하는 작업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가끔 참치 회집에서 해체 작업 쇼를 하기도 한다. 뒷꽁무니로부터 시작해서 지느러미,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으로는 등을 가른 다음, 마지막으로는 살을 다 벗겨 낸 등뼈를 보여주는 것으로 쇼가 끝난다. 물론 부위 별로 일일이 해체하는 작업은 아직도 남아 있다. 큰 놈의 경우에는 약 2시간이 걸린다. 해체 쇼가 끝나고 나면 원래는 거대한 유선형이었던 참치의 모습은 간데 없고 가죽과 뼈와 다양한 부위의 살만 남는다.

어제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4.1 부동산 대책, 정확하게 말하면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종합대책"을 보면서 바로 주택 양도세 해체 작업을 목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자본 차익세, 즉 양도세로 거둔 돈이 약 7조 2천억인데, 그 중 주택 양도세로 거둔 돈이 1조 2천억 정도라고 한다. 겨우 GDP의 0.1%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지나치게 비싼 주택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도 적은 돈이다. 온갖 가지 이유로 감면해주고 면제해주기 때문이다.

주택을 팔 때 발생하는 차익에 세금을 매기는 주택 양도세는 크게 보면 자본 차익에 대한 세금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자산을 팔 때 발생하는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주택 양도세의 역사는 1974년 종합소득세와 더불어 도입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저항과 왜곡의 역사였다.

그 결과, 한국의 주택 양도세는 어지간한 사람은 이해하기도 힘든 세금이 되었다.

대표적인 왜곡이 1가구 1주택에 대한 면세다. 2년 또는 3년 거주했다고 하면 면세해주었다. 분명 차익이 발생했는데도 세금을 안물린다. 집을 한 채 사서 3년 후 팔고, 다시 사서 3년 후 팔기를 계속하면 일생 동안 주택 양도세를 물 일이 한 번도 없다. 거주 증명도 허술하다. 집주인이 전세를 주면서 주민등록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너무도 쉽다. 주민센터에 얘기해도 "그래서 날 보고 어쩌라구요?" 라는 듯 그냥 멀뚱멀뚱 쳐다본다.

이것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때그때 마다 상황 논리에 따라 차등 부과 기준이 겹쳐졌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택에는 차별해서 더 부과했다. 요새는 수도권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진다. 고시가격과 공시가격 기준으로 부과하더니 요새와서는 투기지역의 경우에는 실거래가로 신고해야 한다. 평수와 거래 금액에 따라 차별 부과했다. 요새와서는 금액 기준으로만 차별 부과한다. 3년 이상 거주 했어도 다시 한번 거주 기간 별로 또 차별 부과한다. 보유 주택 수 별로도 차별 부과한다. 휴! 이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이번 정책이 국회를 통과하면 여기에 더해서 이제는 거래된 주택이 신규, 미분양인가에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은 물론, 구매 시점과 매각 시점에 따라서도 차별된다.

1가구 1주택자에게서 9억원 미만, 85제곱미터 이하 집을 산다면 다주택자라도 양도세를 5년간 면제하기로 하겠단다. 대신 2주택자로부터 사면 면제를 못받는다. 단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는 주택을 팔아도 상대방이 양도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다주택 보유자라도 9억원 미만짜리 신규, 미분양 주택을 올해 안에만 구매하면 5년간 양도세가 전액 면제된다. 다주택자라도 1년  내 주택을 팔 면 적용되는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2년 내 양도시에는 6%~38% 기본과세를 하겠단다.

이러고도 안 헷갈린다면 당신은 천재다.

이렇게 되면  주택 양도세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당 지역, 물건 가격에 더해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사정, 사는 시점과 파는 시점 등, 수 많은 변수가 더깨더깨 껴있게 되었다. 왜곡의 정도가 지나쳐서 이제는 그 형체도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아니, 전체적인 형태는 물론, 개별 부분마저 알아보기기 힘들다. 주택을 거래해야 하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포기할 정도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머리가 돌 지경이다. 참치 해체로 치면,  하도 마구잡이로 햎체해서 원래 모습은 커녕, 참치 뼈도 안 보이게 되었다.

2013년 3월 19일 화요일

경제민주화 논쟁의 의미: 한국 사회 최초의 경제체제 논쟁

기독 민주주의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 1세가 오늘 즉위한다. 벌써부터 파격적으로 소탈한 그의 행보와 가난한 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강론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와 청빈한 삶의 상징인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천주교 역사 상 처음으로 자기의 연호로 선택했다. 그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교황으로 선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옆에 있던 브라질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카톨릭 교회가 가난한 자에 대해 갖는 관심은 단순히 감상적 측은지심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후 19세기에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카톨릭 교회는 빈곤의 문제와 이를 낳는 자본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교황들이 여러 차례 회칙(Encyclical)을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경고해왔다. 첫 회칙은 1891년 레오 13세가 발표한 것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배격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서도 빈곤에 대한 사회 비판 및 교회의 의무를 강조하는 회칙은 계속되었다.

유럽의 현대 정치 지형에서 우익을 기독교 민주주의(Christian Democracy)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기독 민주주의 정당은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개념이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이 왜 기독교 민주당으로 불리는 지도 잘 모른다. 기독 민주주의는 보수주의와 빈곤문제에 관심을 갖는 카톨릭 사회교리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에 유럽에서 발생했다. 유럽의 기독민주당은 보수세력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자의 폐해를 모두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한 움직임의 소산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소득 불평등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서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시장 경제를 선호한다.

기독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

흥미로운 것은 이 기독 민주주의가 경제민주화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본다.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부작용 제거를 위해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근로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주장이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반영되면서 작업장 민주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이론적 틀을 갖춘 것은 1950년대 독일의 기독민주당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였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전후 경제부흥을 이끌어낸 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중시하고, 독과점을 철저히 규제하고, 노동자의 기업 의사결정 참가를 권장하고,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독일 기민당의 경제정책이었다. 대공황 이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계획경제와 케인즈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다시 들고 나왔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에 대해 엄격하고, 보편적 사회안전망 제공을 적극 수용한다는 면에서 1980년대 이후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러한 수정자본주의 경제체제 구축은 독일만이 아니라 다른 유럽 대륙 국가에서도 이루어졌다. 유럽국가들은 1950년대 이후 열악한 근로조건, 독과점체제에 따른 경제력 집중, 빈부 격차의 심화 등 자본주의가 노출한 비민주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사회경제적 소외계층들의 꾸준한 요구를 반영하여 경제재건을 이룩했다.

현재의 유럽 경제 체제는 우파 정당과 좌파 정당 사이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 과정을 통해 체제 노선의 수렴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독일 사민당은 2차대전 후에도 한동안 주요 생산시설의 국유화를 주장하다가 1957년 선거에서 대패하면서 비로소 국유화 정강을 포기했다. 프랑스 역시 사회당이 1982년 집권하면서 주요 산업 국유화를 실시했지만 그 후 사회당은 국유화를 포기했다.

이와 같이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등장한 전후 유럽의 수정 자본주의체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 체제 수립은 좌우 정당간 토론과 경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파시즘과 한국 경제체제

한국에서의 경제민주화 역시 근본적으로는 박정희 시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고속 성장기에는 덮어두었지만 성장속도가 느려지면 드러난 사회경제적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 경제민주화라는 말로 집약된 것이다. 기업 지배체제 개혁, 독과점 방지, 노동시장 개혁도 있지만, 복지체제 또는 조세체제를 통한 경제력 집중 방지 등이 우선 과제로 등장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일에서와 같은 기업 경영권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은 한국인들이 해방 후 최초로, 정치적인 압제의 굴레 밖에서 자유롭게, 정치과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체제 논쟁이다.

해방 후 한반도 가운데에 냉전 대립의 경계선이 그어지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가 원하는 국가체제를 자주적으로 결정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 역시 타율적인 체제였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채택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남한을 지배한 것은 국가사회주의 또는 파시즘에 가까웠다. 파시즘과 같이 민주주의도 뒷전이었고, 시장경제도 불신했고, 단지 이윤을 남기는 방식만 자본주의였다. 어떤 식의 민주주의와 어떤 식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독재정권 체제 아래에서는 금기시 될 수 밖에 없었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는 여전히 정경유착과 고속성장의 틀에 갇혀 있었다. 기존의 정부 주도 아래 대기업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에 자율화 바람이 들어오면서 재벌의 과잉투자가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그 후에도 한국은 여전히 고속성장을 갈망했고 정경유착을 해결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덕분에 가까스로 정권을 잡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이 체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의 주류 사회는 소득 양극화를 성장률을 높이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우파 정권 역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더 이상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자각을 우파 정당이 하게 되면서 그들 역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정치민주화 25년 후 시작한 경제체제 논쟁 

한국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이 본격화된 것이 바로 우파 정당의 자각과 돌파구 모색 후에서야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양당이 공동으로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정책 경쟁을 할 때 비로소 경제민주화 논쟁이 정치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 무의미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채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만 기능을 해서는 아무런 진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경유착과 고속성장 신화에서 벗어나 소득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둘러 싼 논의가 바로 경제민주화 논의다. 결국 이는 우리가 어떤 경제체제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경제체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대화와 경쟁을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1987년 민주화 혁명은 우리 사회의 정치 분야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대화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된 계기였다. 그 후 25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직접선거 민주주의에 주 관심이 가 있었지만,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인권 존중,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자본주의, 어떤 경제체제를 원하는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황새, 흑두루미, 알락해오라기

지난번 가창오리 얘기를 읽고 사진이 없어 아쉬워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몇개 더 얻어왔다. 

황새


흑두루미


갈대 숲에서 목을 하늘로 올리고 앉아 있는 알락해오라기



 자세히 보면 눈이 보인다.


반복되는 신임 대통령의 인사 실패: 관료제 시스템 개혁의 또 다른 이유

박근혜 정부 인사

청문회 절차가 남은 인사들이 있지만 드디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인사를 잘못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 야당에서 그런 소리하는 것이야 그러련 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현 정부에 비교적 호의적인 사람들도 인사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청와대도 그렇지만 해당 부처 장관을 하기에는 리더쉽도, 식견도, 경험도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인사에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 취임과 같이 시작한 내각 인사들은 대부분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교체되었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일을 잘 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사람들도 별로 없다. 특히 정권 초기 장관일수록 그렇다.

어렵기만 한 인사

회사 다니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회사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사라는 것이다. 마땅한 사람은 드물고, 시키고 싶은 사람은 고사하고, 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몰려든다. 다른 일은 경험에 의지해서 일을 하면 자기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데 고위직 인사는 처음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조직 임원 인사는 최선도 아니고 차선도 아니어서, 그냥 있는 자원으로 돌려막기에 그칠 때가 많다.

임명 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 뜻대로 하려고 들기 마련이다. 또 인간이기에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격도 있어서 자기 행동이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임명할 때 가졌던 기대에 못미치는 게 다반사다. 특히 조직 상층부로 갈수록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주기 때문에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까지 맡은 일을 잘해서 승진을 시켰는데 새 직무에서는 실망스러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외부 인사는 물론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을 거친 내부 승진의 결과인데도 그렇다.

이렇게 인사가 어려운데도, 한국에서는 사장이 되기 전에 인사를 해보고 사장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장은 전략, 생산, 영업, 재무 출신이고 인사 출신이 사장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원 기간 중 인사를 맡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사장이 된 후 인사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는다. (나는 그래서 사장감으로 키울 인재는 임원 시절에 인사 업무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한국적 조직 운영 방식 탓도 크다. 아마도 군대 조직 운영 방식에서 유래한 것일텐데, 인사 관련 권한을 사장과 인사팀이 틀어쥐고 중간 임원에게 재량권을 별로 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발령이 나서 가보면 이미 같이 일할 아래 임원이 다 짜여져 있다. 임원 평가도 사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어서 직접 상위자가 한 평가를 무시할 때도 많다. 그래서 사장이 된 후에서야 인사권을 처음으로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별 인사는 물론이고 인사제도에 관해서는 더욱 문외한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 기업이 시정해나가야 할 숙제다.

신임 대통령의 행정부 인사

하물며 작은 기업 조직도 그러한데 수십만명을 지휘하는 행정부는 어떨까? 나는 항상 한국에서 신임 대통령이 행정부 조직을 짜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정부 운영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어떻게 정부 조직 인사를 잘할 수가 있을까? 회사로 치면 회사 운영 경험이 없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사업본부장 인사를 하는 것에 해당한다. 당연히 잘 할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외부 인사인 신임 대통령이 조직의 수장으로 처음 와서 외부 인사로 정부를 채우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 운영 경험 상 위험하다. 외부인사 출신 장관은 업무와 조직 파악하는데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국회 나가서 혼나고 여기저기 행사장 돌아다니느라 차분히 일을 볼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업무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으로만 인사를 할 수도 없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라도 행정부의 과장, 국장급의 중간 관리층에 자기가 원하는 인사를 임명할 수 없다. 따라서 관료 이외에는 행정부 경험을 가질 수가 없다. 이런 식의 정부조직 운영방식 아래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인사에서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정권 초기에 외부 인사를 장관으로 쓰고 난 후 실망하게 되면서 정권 후기에 가면서 점점 관료 출신으로 내각이 짜여지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관료제 시스템 개혁

차라리 정권 초기에는 전현직 장차관 출신 관료를 장관으로 쓰고, 차관과 차관보 자리에 외부 인사를 영입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그들을 장차관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어떨지? 근본적인 개혁은 과장과 국장 자리 중 일부를 외부인사로 채울 수 있게 하는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들은 다시 학교나 기업 등 민간부문으로 나가거나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을 하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정부에 복귀해서 고위 행정직을 맡으면 어떨지? 공무원법을 고쳐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뿌리깊은 고시 관료들의 기득권과 부딪칠 일이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임 대통령이 당선 후 짧은 시간 안에 청와대만이 아니라 장관직까지 외부 인사를 쓰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 운영의 원리 상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지난 정권이 겪었던 문제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싶다.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가창오리 때문에 새 됐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가창오리 떼. 멀리 서해대교가 보인다.


황새가 왔다고 해서 서산만에 갔다. 황새는 더 이상 한국에 텃새로 머물어 살지 않고 철 따라 이동할 때만 들른다고 한다. 미꾸라지 등을 먹고 살기 때문에 서산만 그 넓은 평야에서 아직 논바닥에 물이 남아 있는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황새는 날개 끝이 까맣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대략 여섯 마리를 본 것 같은데, 다른 새들보다 더 예민해서 사람이 근처에 가면 날라가 버린다. 천천히 젓는 그 날갯짓이 두루미보다 더 여유롭고 우아하다. 가만히 보니 항상 처음에는 앞 방향으로 날아오르다가 곧 방향을 틀어 휘 옆으로 날면서 고도를 높인다. 무언가 공기 부력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황새가 몇 마리 안되는 것에 비해 흑두루미들은 여기 저기 떼로 나뉘어 있다. 몸은 까맣지만, 목부위는 하얗고, 머리 꼭대기에 붉은 색 반점이 있어서 색 조화가 절묘하다. 간혹 목 부위가 옅은 회색에 가까운 놈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어린 새들이라고. 우리가 본 흑두루미들은 순천에서 겨울을 나고 북상 중이란다. 일본 이즈미에 있는 흑두루미 떼는 아직 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아냐고? 이동을 시작하면 그곳 사람들이 연락을 해준단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와도 그냥 두는데 이 흑두루미들은 사람에 예민하다.

억새 풀밭 사이에 자리를 틀고 있는 알락해오라기를 발견한 것은 망외의 소득. 나를 데려가 준 야생조류 전문가가 차를 몰면서도 어떻게 그것을 알아봤는지 그 대단한 실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방 길 아래 약 20미터 가량 떨어져서 누워있는 갈대밭 안에 있었지만 그가 알려주는데도 막상 새를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다.

망원경으로 본 모습은 화려하다고 할 만큼 아름답다. 알락달락한 무늬 때문에 붙인 알락해오라기라는 이름처럼, 누런 바탕에 고동색 줄 무늬가 화려한데 마치 불로 살짝 그슬린 오동나무 무늬목 같다. 재미있는 것은 풀밭에 앉아 뾰족한 부리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있다는 점. 가만히 있으면 영낙없는 억새풀이다. 바로 코앞에서 우리가 자기를 보고 있어도 그대로 가만히 땅바닥에 붙어 있었다. 자기 엄폐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진 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기다리던 우리가 지친다. 조약돌을 근처에 던져봐도 능청맞게 모르는 척하니 픽하고 웃음이 난다. 결국 우리가 졌다. 고얀 놈.

오는 길에 가창오리를 보려고 삽교호수에 갔다. 해가 질 무렵에 하늘로 날아올라 펼치는 군무를 기대하고 찾아갔다. 가창오리는 거의 모든 개체가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군집성이 유난히 강하고, 낮에는 물에 떠 있다가 밤에 되면 곡식 낱알을 먹으려고 논으로 올라온다. 서산만 먹거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요새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단다.

삽교천 방둑을 따라 차를 천천히 몰면서 망원경으로 찾다가 호수 가운데 있는 작은 섬 가까이에 붙어 모여있는 오리떼를 발견했다. 하도 많은 오리들이 촘촘히 물위에 모여있어서 처음에는 섬의 끝자락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눈으로 보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망원경으로 지켜보니 다른 오리들이 섬 뒷편에서 계속 날아와 합류하고 있었다. 야생조류 탐사가들이 공유하는 정보에 의하면, 그제 저녁에는 7시 5분 쯤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 시간까지 차에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날씨가 좋아 각도가 낮은 햇살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어 석양의 햇빛에 반사되는 최고의 군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침이 꼴깍.

석양이 먼산 기슭에 걸치기 시작하는 6시 반이 넘어가자 오리들의 움직임이 슬슬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눈으로 보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상류쪽 끝자락에 있는 오리들이 계속 하류 쪽으로 낮게 날아 옮겨가고 있다. 마치 전체 떼가 모여 이룬 섬이 하류 쪽으로 천천히 떠가는 것처럼 보인다.

6시 55분 경, 붉은 석양이  먼 산 등성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 주위가 거뭇한 땅그림자에 휩싸이자 오리떼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다. 갑자기 전체 무리 중 삼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놈들이 낮게 날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한바퀴를 돌아 다시 내려 앉는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면서 오리떼 섬은 어느덧 빠른 속도로 하류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를 돌려 따라가는데 갑자기 검은 먼지 구름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 구름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면서 나비 모양 처럼 옆으로 퍼지더니 금방 다시 둥그런 뭉치로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군무가 시작되었다.

어! 그런데 구름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간다. 너무 빨라서 차로 따라갈 수가 없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어느새  서해대교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너무 멀어서 날아간 방향 하늘에 거무스레한 자국만 가웃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이 30초 정도 만에 벌어졌다. 이런 허망한 노릇이!

원래부터 가창오리의 군무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때는 한 자리에서 30분에 걸쳐 군무를 펼치기도 하지만 다른 날에는 그냥 훌쩍 저녁 먹으러 날아가 버리기도 한단다. 나를 데려간 분도 여러 번 봤지만 제대로 만족스럽게 군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개체 수는 많았지만 군무가 너무 짧다. 그것도 너무 빨리 멀어져가면서 벌어졌다. 입맛만 다실 뿐. 이놈들! 다시 만나면 잡아 먹어 버릴까 보다.

자연 현상은 이렇게 변화무쌍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대를 훌쩍 벗어나기도 하고, 기대 하지도 않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게 어쩌다 한번씩 자연을 느끼려고 여행을 다니는 재미 중 하나다. 변화막측.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일부를 접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 그렇지. 이 지구에는 사람과 시멘트와 차만 있는 게 아니었지! 이 지구는 인간 말고 다른 생물도 사는 곳이었다.

2013년 3월 8일 금요일

한국의 투자은행업, 어떻게 키워야 하나

로스차일드 서평

오늘 중앙일보에 쓴 서평 (가족경영, 로스차일드가엔 양날의 칼이었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에 대해 니얼 퍼거슨이 쓴 책에 관한 것이었다.

영어 원문만 해도 1,300 쪽이 넘고, 번역으로는 1,500 쪽이  넘어 두권으로 나뉘어 나온 이책은 금융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저작이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다.

로스차일드는 경제사나 금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름이다. 제일 오래된 투자은행이어서 업계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름을 안다. 일반인들 중에는 유태인 금융가에 대한 음모론적인 시각에 의한 책들 때문에 이들 이름을 알게된 사람들도 꽤 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전혀 못들어본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로스차일드가문의 내력을 설명하다 보면 신문사에서 허용한 짦은 지면이 다 찬다. 서평 쓰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시각을 조금 비틀었다. 투자은행업의 본질에 대한 시각에서 글을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정부의 금융정책 목표 중 하나는 대형투자은행 육성이었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의 증권사와 서구의 투자은행을 규모를 비교하면서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0년에 걸친 서구 투자은행업의 역사를 무시하고, 투자은행업의 핵심경쟁력을 도외시한 주장에 불과하다.
자본시장법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재경부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들고 나왔다. 그 당시 정부는 대단한 것이나 하는 것처럼 선전을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별게 없어서 증권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가 대형 투자은행 육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논리는 간단했다. 한국은 앞으로 기업가 정신에 의한 창의적 기업활동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돈을 대줄 자본시장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금융중개를 맡은 투자은행이 커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증권사는 서구의 투자은행보다 자본금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그러니 증권사 대형화가 필요하다. 이게 정부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규제법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집안 정리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또, 정부의 규제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나열하는 방식(Positive 방식)에서 안되는 것을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게 하는 방식(Negative 방식)으로 바꾼다고 했지만 정부의 구태의연한 업무 방식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별로 믿을 수가 없었다.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고도 했지만 기존 법 안에서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규제당국이 법을 새로 바꾼다고 행동을 바꿀 것 같지도 않았다.

과잉 자본금

게다가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의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쌓아놓은 자기 자본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증권업계 전체의 자기자본수익률(ROE: Return on Equity)는 평균 약 4%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직원을 고용할 필요 없이 은행에 정기예금을 들어도 그보다는 더 벌었을 것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자본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증권사의 자본을 더 늘려서 무엇을 할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1년에 다시 한번 더 자본시장통합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자본을 늘려봤자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는 업계의 불평을 의식해서 대형증권사에게만 특정 업무를 허가하겠다고 했다. 헷지펀드를 허용하고 그 헷지펀드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자본금이 3조원을 넘기는 증권사에게만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네가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헷지펀드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것인지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이것을 자본액수 기준으로 선을 긋겠다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장사에서 대단히 돈을 벌 것이라는 자신을 하기도 어렵다.

정말 희극은 일부 대형사들이 법 통과를 믿고 자본을 먼저 증자한 것이다. 2011년 하반기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원을 넘긴 곳은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5곳이다. 이들이 당시 증자한 규모는 3조 4,000억원에 달한다. 증권업 전체 기존 자본금 대비 약 13%를 증자한 셈이었다. 대우증권은 1조 1,200억원을 증자했고, 우리투자증권은 6,300억원을, 현대증권은 5,600억원을, 한국투자증권은 7,300억원, 삼성증권은 약 4,000억원을 증자했다. 법 통과를 보고 난 후 증자를 해도 되었을텐데, 정부가 눈치를 주어서인지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증자를 한 것이다.

그 후 1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그 법은 통과가 되지 않았다. 정권 이양과 함께 사임을 한 김석동 위원장이 퇴임 전 열심히 법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했다.

규모 보다 투자자 보호와 인재 경영

그러나 법이 통과되었든 아니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투자은행업의 핵심은 규모에 있는 게 아니다. 고객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윤리적 기업 문화를 통한 평판 관리, 전문인력 양성, 적절한 보상체계 설계 등에 있다. 지금처럼 지배주주가 따로 있고, 직원을 언제라도 갈아댈 수 있는 머슴 다루듯이 해서는 제대로 된 투자은행을 키울 수가 없다.

정부가 선심 쓰듯이 육성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지금처럼 인위적인 자본 규모 규제로 선을 그으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프랑스 정부가 1982년 로스차일드 은행을 국유화하고 나서 몇년이 지난 후 프랑스 로스차일드가는 다시금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그때 자본금이 겨우 1백만프랑이었다. 평판과 머리만 그대로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증거다.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안되는 나라에서 투자은행과 자본시장은 발달할 수가 없다. 자본시장은 참가자들의 신뢰를 먹고 큰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싶다면 투자자 보호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배주주의 전횡과 일감 몰아주기, 빼돌리기부터 막아야 한다. 소액주주 권한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주어야 한다. 기업 회계의 신뢰성을 올려야 한다. 이런 일을 하지 않은채 억지로 회사 자본금이나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탱자의 변명: 주택금융공사의 거짓말

금융주택공사의 거짓 해명에 대해 재반박하기로

요즈음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은 적격대출이다. 금융정책패널이 그 적격대출의 문제를 지적하자 주택금융공사가 당일 반박자료를 내놓았는데 그야말로 문제의 촛점을 흐리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탱자, 적격대출)

패널에 참여하는 학자들끼리 논의 끝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세운 공사가 사실을 왜곡하는 해명자료를 내는 것을 그냥 놔두면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언론이 사실 파악을 하지 않은 채 공사의 반박자료를 그냥 옮겨 적은 것도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언론이 제대로 문제를 인식할 것 같기에.

이번에는 동국대의 강경훈 교수와 중앙대의 박창균 교수가 같이 쓰기로 했다. 이들이 쓴 반박문에서는 저번 블로그에서 얘기한 것에 더해서 수수료에 대한 공사의 거짓말도 더 자세히 지적하기로 했다.

조선일보가 이를 받아서 자체 조사 끝에 기사를 내었다. (여기) 그 기사에 의하면 이자만 내고 있는 대출 비율이 52%다. 그런데 이 기사는 수수료에 대한 얘기는 건너뛰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수수료에 대해 얘기해보자.

너무 높은 대출 수수료

대출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패널의 지적에 대해 주택금융공사는 미국의 경우 취급수수료 100bps, 채권관리수수료 25bps, 합계 125bps가 수수료 총합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취급수수료 60~70bps, 채권관리수수료 10bps, 합계 70~80bps이어서 한국이 더 싸다고 했다.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우선 논의의 틀이 잘못되었다. 취급수수료(underwriting fee)는 대출 발생시 한번만 발생하는 비용이고, 채권관리수수료(servicing fee)는 대출잔액이 남아있는 동안 매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성격의 수수료를 공사는 합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은행은 취급 수수료로 고객에게서 일회적으로 100bp(1%)를 받지만 그 후에는 연간 25bp만 부과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125bp가 수수료 총합이라는 공사의 주장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경우도 오류 투성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취급수수료는 보통 120bp다. 신문들도 모두 취급수수료를 120bp라고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지금까지 공사가 그렇지 않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 반박문에서 공사는 이것이 60~70bp라고 했다.

굳이 좋게 해석해주면 서류 상의 만기와 상관없이 2~3년 만에 상환이 되기 때문에 한번 발생한 취급수수료를 연율로 환산하면 60bp~40bp라는 뜻에서 한 얘기일 수는 있다. (지금까지 경험 상 적격대출과 비슷한 보금자리론의 평균 만기가 3년을 겨우 넘었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 없이 일회성 비용과 반복성 비용을 합산하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관리수수료에 대해서 말하면, 우리가 입수한 공사 자료에 의하면 이것이 50~60bp라고 한다. 그런데 공사는 10bp라고 하고 있다. 은행업계 내부자료에 의하면 주택담보대출의 채권관리비용은 원가 기준으로 보통 30bp정도 드는 것이 통상이다. 내가 따로 입수한 모 은행 자료도 관리수수료가 0.43~0.49% p.a.(고정채권관리수수료 0.1%p.a.+변동채권관리수수료 약 0.33~0.39%p.a.) 였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미국과 달리 한국의 적격대출의 경우 채권관리 수수료를 은행이 각자 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예를 들어 패니메(Fannie Mae)가 이 채권관리수수료를 일률적으로 25bp로 정해준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은행 결정으로 고객에게 부과하는 것이어서 경쟁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 비싼 수수료를 부과할 가능성이 항상 있다.

요약하면, 개별 수치의 정확성을 떠나서, 공사는 이렇게 합산할 수 없는 성격의 수수료를 합하여 50~60bp+10bp=60~70bp라는 요령부득의 주장을 하고 있고, 개별 수치도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전혀 다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 지?

공무원들의 실적주의를 배경으로, 정권 이양기 중 보직에 예민한 공사 경영진의 조바심이 일으킨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노인 빈곤에 대한 국민 토론 이제야 시작 : 박근혜 인수위 노인연금 방안 발표

인수위 안

노인기초연금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이나마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박근혜 행정부 인수위가 오늘 발표한 방안은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되,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소득에 따라 최소 4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최종 확정됐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소득하위 70% 노인들에게는 원안대로 20만원을 지급하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소득하위 70% 노인들은 14만원~20만원의 연금을 차등 지급한다.

소득상위 30%노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4만원을 받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으면 4만원~10만원을 받는다.

단, 부부가 모두 연금을 받는 경우는 기초연금액에서 각각 20%를 감액한다. 이같은 내용의 기초연금제는 내년부터가 아니라 오는 2014년 하반기부터 지급된다.

인수위는 사회적 우려가 일었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도 밀어부쳤다. 공적 부조 성격의 기초연금과 적립 방식의 국민연금을 '국민행복연금'이라는 이름으로 합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인 모두를 대상으로, 단 국민연금 가입기준과 소득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되, 그 재원은 기존의 기금을 건드리지 않고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수위 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가 될 지는 불확실하다. 지급액이 조정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이미 조성된 기금을 건드리지 않고 재원을 따로 마련하겠다는 방안일 것이다. 앞으로 입법과정을 통해 더 많은 토론이 예상된다.

노인 빈곤에 대한 인식 확산

시민들의 이해 구체적인 계수 방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언론도 처음에는 내 돈 건드리지 말라는 시각에서 점차 노인 빈곤 해결이라는 시각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지난 주에는 심야시간이기는 했지만 SBS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심층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번 주부터 오마이뉴스가 중앙대의 연명 교수 글을 앞으로 10차례에 걸쳐 싣기로 했고, 오늘 동아일보는 순천향대의 김용하 교수 인터뷰를 실었고, 매경은 노인빈곤 문제를 1면 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납세자연맹이라는 시민단체(?)의 역할도 약간은 있었던 것 같다. "국민연금의 불편한 진실 10가지"란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이미 참여자가 7만명에 육박하고 있단다. 지금 노인에게는 해주는 것이 없고, 마치 수익률 좋은 재테크를 하는 것처럼 홍보했던 과거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제도가 갖고 있는 설계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폐지 운동으로 갔다. 어느 정도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막연한 불안이 구체화되었고, 덕분에 이에 대한 토론도 더 명징하게 된 감이 있다.
  
전문가 의견

이런 사정을 보고 드디어 국민연금 전문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쓰여진 글 중 가장 잘 쓴 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연명의 글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굳이 나서서 써보았자 이보다 더 잘 쓸 수가 없다. 특히 그가 글 끝에 첨부해서 실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포함하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이 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글과 프리젠테이션을 적극 추천한다.

순천향대의 김용하의 인터뷰 역시 일독할 가치가 있다. 특히 그가 지적하듯이 공약 실천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나, 이를 위해 국민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제언, 민간 복지 서비스 시설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 등은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얘기다.

김연명과 김용하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갖고 있다. 김용하는 양자를 통합하는 것을 반대하고 김연명은 찬성한다. 또 이들은 상위 30% 노인들에게도 돈을 주는 것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김연명은 모두 주는 것에 찬동하고, 김용하는 반대한다. 김연명은 아예 모두에게 20만원씩 주자고 한다.

나는 전체적으로 김연명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만약 김용하 말대로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주장대로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 부분을 분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어디 그런 나리이던가. 근본적인 개혁을 못한다고 가정하면 큰 폐단이 없는한 지금 당장 노인들의 빈곤 해결에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는 방안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김용하가 주장하듯이 고소득층에게 주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만약 모든 국민의 소득에 대한 파악이 잘 되어 있는 나라라면 나도 그의 의견에 동조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소득 자료가 매우 불완전한 나라다. 부동산 등 재산은 많은데 소득이 적은 노인들이 많다. 아마도 임대 소득 중 상당비율이 아예 신고도 안되고 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도 엉터리여서 자기가 갖고 있는 금융재산을 가족 명의로 옮겨 놓은 사람도 많다. 이번 제도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재산과 소득을 숨기려고 나설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번에 금융소득 종합소득세 적용 한도를 2천만원으로 내리면서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소동은 늘어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같이 인상되는 의료보험료를 피하기 위한 것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 들어갈 행정적 수고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냥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당장은 모두 지급하고 향후 소득 투명성이 개선되면서 그때 가서 소득 별 차등지급을 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지급을 하겠다고 한다. 차후 국민적 논의를 두고 볼 일이다.

미룰 수 없는 노인 빈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존 제도가 워낙 부실하게 설계된 제도여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명확하지가 않다. 지난 번에 얘기했듯이 소득 파악이 잘 안 되는 나라에서 임의 가입제인 국민연금제도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 만이 아니다. 의료보험도 그렇다. 거의 모든 소득 보조 제도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현금 지급을 통한 복지체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실물 서비스를 공공부분이 직접 제공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는 시각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더 유효하다. 예를 들어 공립 병원, 공립 유치원, 공립 학교를 더 지어야 한다.

어쨋든 한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연금에 대해 국민적 토론을 시작했다. 1889년 비스마르크가 근로자를 위한 공적연금을 시작했을 때 이름이 노동자 노년 보장(Alterssicherung für Arbeiter)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국민연금은 시작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의 노인에게 주는 혜택이 거의 없는 이상한 제도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사회가 세대간 이악스러운 주판알 튀기기에서 깨어나 주위의 노인 빈곤을 직시하고 부끄워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3년 2월 9일 토요일

우리는 언제 염치가 들까? 노인기초연금 논란을 보면서 (II)

이제 세번째 문제, 노인기초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얘기해보자. 사실 이 문제는 정치권과 언론 모두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에서 문제를 보는 바람에 얘기가 꼬였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기존의 국민연금 기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모든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오해와 정치적 계산이 얽혀 있다. (제대로 쓴 글을 보고 싶으면 김연명이정환 글을 보라.)

일반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지금 제도 아래에서 자기들이 받을 연금이 각자가 적립한 돈에 이자가 붙은 만큼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민간연금보험에 들었을 경우보다 약 두 배의 돈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 돈 건들이지 말라"라는 식의 뜬금없는 얘기다. 아무러나 반은 남의 돈이다.

그럼 누가 그 부담을 지나? 후세들이 진다. 즉, 반 정도는 자기가 적립한 돈에 비례해서 받고 나머지 반은 후세 사람들이 그때 가서 내는 돈으로 받는다. 그 동안 왜 2050년대가 되면 기금이 고갈된다고 했을까? 각자가 부은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부은 돈만큼 받는다면 고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를 알고 나면 지금처럼 기존의 국민연금 기금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의 모순이 드러난다. 자기들은 나중에 가서 후세에게서 돈을 받아 생활할 것이면서, 지금 당장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은 도와주지 말라는 말이 된다. 만약 이런 사정을 알고도 노인연금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뻔뻔한 얘기다. 후세의 부담을 줄이자고? 지금 현세의 노인은 어쩌자는 말인가?

물론 지금까지 쌓인 기금에서 노인연금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기금이 더 빨리 고갈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공적연금 설계가 이상해진 것은 1988년 출발하면서 그 당시 노인을 위한 연금으로 시작하지 않은데 있다. 돈을 미리 일부나마 쌓기 시작하고 난 후 10년 이상 불입한 후에야 받을 자격이 생기도록 했다. 평시에는 임기응변에 그토록 능한 한국 행정부가, 문득 그 때에만 제 정신이 들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렇게 설계했겠는가? 아니다. 국내저축을 동원하기 위해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면서도 강제저축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서 적립하는 돈에 비해서는 받는 돈이 훨씬 많게 설계했다. 그래 놓고 나서 21세기에 들어자 허구헌날 기금 고갈이 된다고 지청구를 놓았다. 여기에 넘어가 노무현 정부는 받는 돈을 줄이고 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늦추는 쪽으로 설계를 수정했다. 김연명이 "진보의 원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는 계수 조정에 불과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층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가 없고, 임의가입제 때문에 가입대상자의 1/3이 사각지대에 있는 문제는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연금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많은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연금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설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것 저것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면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지고, 문제만 더 복잡하게 된다. 이번 경우에서도 금방 표면화되었듯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조그마한 변화에도 불만이 생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는 여러 계층간의 이해 충돌과 사회분열로 개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재구축을 기다리느라 지금의 노인 빈곤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다. 이명박 5년 전 모든 노인에게 30만원 씩 준다고 공약을 했지만 당선 후에는 꿀꺽 삼켰다. 5년만큼 낭비한 셈이다. 그 동안 자살로 죽어간 노인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면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하나? 결국은 세가지 방법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적자재정을 감수하거나 예산체계에서 다른 사업의 예산을 줄여 충당하는 방법, 연금보험료를 올리는 방법, 아니면 이미 쌓인 기금을 동원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방법을 택할 것인지를 한국 정치는 올해 정해야 한다. 가장 좋기는 지금 있는 기금을 동원해 쓰는 것이 가장 좋다.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20만원 미만인 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20만원에 더해서 지금 받는 돈만큼 그대로 지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모두들 이 방법을 반대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는 것 같다. 진보진영은 한편으로는 박근혜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기금은 안 건드리고 기초연금을 주려면 증세가 필요하니 박근혜로 하여금 증세안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한다. 자기들도 주장하지 못하던 즉시 노인연금 확대를 위한 증세를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속셈이다. 비겁하다. 보수 진영 언론은 자기가 받을 돈이 모두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분한 줄 아는 국민들의 무식을 겁내서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타협으로 하위 70% 등등 온갖 가지 얘기가 나온 것이다.

어쩌겠는가? 국민연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이 그런 것을.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의식하게 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어떤 방법을 채택하든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는 말자.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나중에 받을 세대만큼 지금의 노인들도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많은 공이 있으면서도 가장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세대가 지금의 노인계층이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 48% (일본은 24%, 다른 서구 국가들은 12%대)를 부끄러워할 염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3년 2월 7일 목요일

작은 승리라도 좋다: 노인기초연금 논란을 보면서

박근혜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연금을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첫째, 박근혜가 공약집과 대통령 토론에서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방안을 말했는데 당선 후 말을 바꾸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미 국민연금에 가입된 사람들로서 20만원도 못받는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다. 셋째는 그 재원을 국민연금기금에서 일부를 헐어서 마련할 것인가이다. 

한국의 다른 사회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제도 역시 관료가 주도해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제도의 구조에 대해 잘 모른다. 이번 기초연금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많은 부분도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지에 연유한다. 박근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알게 될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 글을 이러한 무지와 오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썼다. 나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다. 국민연금제도는 매우 복잡한 제도다. 여러가지 사회통계가 필요하고, 많은 분야의 고려가 통합되어야 한다. 자기 글에 대해 책임성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언론에서 오가는 얘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불합리한 오해와 왜곡이 횡행한다.  

현재의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누가 나서든 간에 뚜렷한 해결책을 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국민연금제도가 워낙 부실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문제, 박근혜가 당선 후 말을 바꾸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연금 문제는 원래부터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국민 모두에게 관련된 문제이고 한번 만들면 오래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 한두달 전에 선거공약으로 들이댄 제안을 그대로 실시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갖고 말을 바꾸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비생산적인 뒷다리걸기에 불과하다. 벌써 대선 3차 토론 때 박근혜의  얘기를 듣고 일부 똑똑한 유권자들은 모두 기초연금을 받게 되면 국민연금을 가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지적했었다.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그것도 모르고 구경만 하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법석을 떨고 있다.

우선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지부터 생각해보자. 현대 국가들이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을 따져보면, 공적연금제도는 노인이 되어 경제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소득이 끊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농촌에서와 같이 자식이 부양을 하는 방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주는 기초연금제가 가장 이상적이다. 기껏 만들어 놓고 나서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만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안 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민연금제도 도입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아서 저축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발달한 형태가 일정 소득 이하인 사람들에게는 정액으로 기초연금을 주고, 그 이상 소득자에게는 소득비례 연금을 주는 방식이다. 누가 듣기에도 합리적이고, 많은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당장은 실행하기가 어려운 방안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애초부터 한국의 공적연금제도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제도로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크게 국민연금과 공무원과 사립교원을 위한 직역연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전 국민 대상의 기초연금이 없다는 것이다. 직역연금이 먼저 탄생했고, 그 후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도 기초연금의 개념이 없이 출발했다.  

그래서 아직도 사각지대가 많고, 진정한 모든 국민을 위한 연금제도가 아니다. 경제활동인구 약 2천2백만명 중 백만명이 실업인구이고 여기에 그냥 일을 안하고 있는 비경제활동인구 9백만명을 합치면 거의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 문제는 취업자 약 2천 1백만명 중 소득이 낮거나 불규칙적이어서 예외로 되어 있는 사람과 그냥 안 내는 미납자와 미가입자가 아직도 거의 700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취업자 2천백만명 중 약 1/3이 가입을 안한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이 임의가입제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상용직중에서는 98.5%가 가입했지만 임시 일용직에서는 18% 정도만 가입되어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소득이 낮은 사람일 수록 가입률이 낮다. 100만원 미만 소득자 중 약 17.5% 정도만 가입되어 있고, 100만원~200만원 사이에서는 약 59.5%만 가입되어 있다.


이를 명실상부한 국민개연금(Universal National Public Pension)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연금을 신설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가입율이 낮아서도 안된다. 즉 모두가 받는 연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는 구조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모두가 내고 있지 않는데 모두에게 주겠다면 어떤 방식을 택하든간에 모순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소모적인 형평성 논란이 일게 되어 있다. 모두에게 주어도 모순이 발생하지만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어도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답이 없다.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참에 국민개연금제로 개혁하면 안되나? 불가능하다. 국민개연금과 같은 이상적인 개혁안은 연금 조달방식부터 증세까지 대대적인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단기간에 실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금융실명제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소득도 불투명한 나라이기에 더욱 힘들다. 처음부터 재원조달 방식을 보험방식이 아니라 조세방식으로 했으면 소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적용 대상자는 되었을 것이지만, 소득이 불투명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실시하면 온갖가지 폐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국민개연금제로 가려면 금융실명제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도 제대로 도입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은 소득 투명성 면에서 이런 기초도 아직 못갖춘 나라다. 

이와 같이 박근혜 정부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한 것은 선거를 의식한 것이거나, 아니면 당장 실시하려고 할 경우 발생할 모순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비판만 할 일도 아니다. 아무리 작은 승리라도 승리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조금이라도 노인들 빈곤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을 바꾸었든 아니든 간에 환영하고 볼 일이다.

세번째 문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자. 

2013년 2월 2일 토요일

또 하나의 탱자, 적격대출

작년 한국 금융시장의 히트 상품은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적격대출이었다. 적격대출(Conforming Loan)이란, 주택금융공사가 미리 정한 기준에 맞추어 은행이 대출을 하고 난 후 이를 공사에게 넘기는 대출을 뜻한다. 작년 3월에 장기 고정금리 대출로 출시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2월말까지 총14조원까지 증가했다. 

내가 적격대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적격대출의 빠른 성장속도 때문이었다. 작년 3월에 시판되기 시작했는데 12월 말에 가서 이미 14조원이 팔렸다. 무엇이 되었든 이렇게 빨리 팔리는 금융상품은 대개 나중에 뒤탈이 난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해볼수록 더 이상했다. 주택금융공사에는 전부터 장기고정금리 대출 상품이 있었다. 보금자리론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이 정한 인수 기준에 맞추어 고정금리로 장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를 팔았다. 처음에는 은행들에게 대출 수수료를 주면서 모집하다가 근래 들어서는 인터넷으로 직접 신청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아 소비자들에게 부담스럽고, 양적 경쟁에 길들여진 은행들이 자기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 대출에 소극적이어서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2009, 2010년 각각 약 6조원 정도 팔리다가 장기금리가 낮아진 2011년에 가서야 약 9조원 정도로 늘었다. 그런데 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장기고정금리인 적격대출은 무엇이 다른지? 같은 고정금리대출인데 갑자기 선풍적으로 많이 팔린다고? 심지어는 신규 입주 아파트 담보대출의 반을 차지한다는 보도도 나왔다(여기).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금자리론과 무엇이 달라서 적격대출이 많이 팔리는 것일까? 

얼핏 보아서 유일한 차이는 그 대출이 은행 장부에 계상되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한 것 처럼 보였다. 보금자리론은 대출이 이루어지는 과정 내내 그 대출이 은행 장부에 계상되지 않는다. 은행은 중개 역할만 한다. 따라서 어느 은행의 문을 두드리든 간에 소비자에게 제시되는 금리는 동일하다. 적격대출은 은행이 자기들이 각각 정한 금리로 먼저 고정금리 장기주택대출을 팔아서 자기 장부에 기재한다. 그 후 한 달 정도 후에 공사에 넘긴다. 그 한달 정도의 기간 중 시장의 장기금리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이자 위험을 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적격대출이 보금자리론에 비해 더 잘 팔려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은행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외국계 은행에서는 내부 가격 기준으로 가장 마진이 많이 남는 상품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봄에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에서는 적격대출을 팔면 거의 1% 정도 순수익이 남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자기 은행 대출을 팔면 0.6% 정도 마진이 남는 것으로 내부관리회계에서 계산한다고 했다. 자기 장부에 남는 대출의 경우 자본을 쓰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초여름이 되면서 심지어는 적격대출의 금리가 보금자리론보다 0.5% 씩이나 낮은 경우도 있다는 보도(여기)가 나왔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주택금융공사 사이트에 가보아도 공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매우 피상적이어서 이 상품의 특성과 구조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니 국가 재정으로 운영하는 공사가 신용 위험을 지고 파는 상품인데 왜 이토록 상품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게 해놓았을까?

그래서 내가 속해 있는 한국금융연구센터의 정책패널에 적격대출에 대한 조사를 해서 발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주 집필자로 동국대의 강경훈 교수가 나섰다. 강교수가 쓴 글을 기반으로 패널 참가자들이 여러번 토론을 거쳐서 최근 주택금융공사의 적격대출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자세한 것은 센터 사이트, 또는 한국금융신문 보도)

패널에서는 1) 아직까지 거치식 대출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2) 상환능력, 신용등급 등 채무자 요건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3) 민간 금융회사가 수취하는 수수료를 스스로 결정하므로 과다 책정 가능성이 있고, 4) 관련 통계가 제공되지 않고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헀다.

이중에서 내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은 거치식 대출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내부 정보에 의하면 2년에서 5년까지 이자만 내는 거치식 대출이 약 50%에 달한다. 그런데 공사는 전체 적격대출 중 거치식 대출의 비중을 비밀로 하고 있다. 국가가 신용위험을 지는 대출인데 그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궁금증이 풀렸다. 적격대출이 그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금리가 낮은 것도 작용했지만, 당분간 이자만 내고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재작년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을 30%까지 높이겠다고 했는데 그 방편으로 거치식 고정금리 대출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가장 큰 문제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6%에 달하도록 놔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자만 내고 있는 거치식 대출이 80%에 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정책목표를 고정금리 대출 비중에 둘 것이 아니라 거치식 대출 비중 축소에 두어야 했다. 그런데 정책 목표를 고정금리 비중으로 잡고보니 그에 맞추어 거치식 고정금리 대출을 주택금융공사가 들고 나온 것이다.

보도자료가 나간 후 흔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보도자료가 나간 그날 주택금융공사가 바로 반박문을 내었다. 그래서 신문 보도에는 센터의 주장과 공사의 반박문이 같이 나갔다. 이렇게 신속한 대응은 예외적이다. 

그 반박문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막상 거치식 비율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면서 최근에 거치식 대출 비중 한도를 과거 70%(!!!)에서 30%로 낮추었다는 말만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패널 보도자료에서 서술해놓은 얘기다. 아니, 글쎄, 거치식 비중이 얼마나고요!

신용등급 요건이 낮은 것에 대해서는 평균 신용등급을 들어 대답하고 있다. 헐! 문제는 신용등급 7등급, 8등급에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들 비중이 얼마나 되냐는 것인데 일부러 딴청이다. 우리가 언제 평균 물어봤나고요!


신용위험은 낮단다. 그 근거로 연체율이 낮다는 것을 들고 있다. 끙! 아니, 대출이 나간지 일년도 안되었는데! 연체율이 낮은게 당연하다. 빌리는 사람의 신용등급과 상환능력은 별 관심이 없고 담보 비율만 챙기는 기존 은행권 관행과 다를 것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작년 대출 중 약 반을 차지하는 거치식 대출 중 원리금을 모두 갚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그 때 가면 새로 대출 받아 돌려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국가 재정으로 하는 일이니 더 투명하게 하라고 하니까 기껏 반박보도자료에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하던 얘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치졸한 연막작전이다. 그런데도 순진한 기자들은 그저 받아 적을 뿐이다.


금융위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너무 빨리 늘어나는 적격대출에 경각심이 드는지, 작년 말 부터 자제를 권하고 잇다. 그러나 여전히 신규대출에서 거치식 대출 비중 한도를 30%로 한 것을 보면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이젠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정책 목표로 삼을것이 아니라 거치식 대출 비중을 줄이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

적격대출은 미국의 모기지 유동화 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일시상환 주택다모대출이 무너지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사가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은행으로부터 인수해주는 제도가 발달했다. 그러나 이런 기관이 없는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고정금리 모기지의 비율이 낮다. 그렇다고 최근의 버블 붕괴 전까지는 지금까지 큰 일이 나지 않았다. 그것만을 보아도 모기지 대출의 건전성은 고정금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환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귤이 한국에 와서 탱자가 되었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용: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서평 II

김종인이 지난 11월에 출판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는 사실 평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을 계속 미루어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러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40년간 그가 교수, 국회의원, 장관, 경제수석 등을 거치면서 겪은 것을 회고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가를 정리하고, 또 그에 덧붙여 경제민주화를 위한 주요 정책과제도 분야별로 훑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책을 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완결된 글로서의 촛점을 잃고 책의 각 부분을 단순 요약 서술하는 서평이 되기 쉽다.

그의 전력에 비춰봐서 그의 짧은 회고담은 70~80년대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특히 1977년 의료보험 도입에 관한 부분은 한국에서 복지제도 도입을 추진할 때 부딪치게 마련인 관료들의 현상유지 위주의 저항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약 반을 차지하는 경제민주화에 관한 부분은 아마도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 가장 읽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 글일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경쟁과 평등은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누가 양보해야 하나? 자본주의가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같이 살 수 있다. 누가 할 것인가? 국가가 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해야 한다. 그래야 둘 다 산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생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시장경제는 인간의 탐욕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 탐욕을 그냥 놔두면 필연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초래하게 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국가 뿐이다. 국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그 개입의 대상은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을 해치는 독과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이 필연적으로 낳는 소득 양극화이다. 독과점을 놔두면 경쟁의 효율성을 해치고 소득 양극화를 그냥 놔두면 사회 불안정이 심화되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해친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재벌이 독과점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낳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 안정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시각은 전후 유럽의 신자유주의와 독일 기민당의 정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영미권의 신자유주의다.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라고 하지만 독과점에는 너그럽다. 그에 비해 2차대전 후 유럽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 심지어는 케인지안 정책에도 반기를 들면서 나타난 유럽의 신자유주의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신봉하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독과점을 엄격히 배격한다. 또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사회의 유대감과 안정을 해치는 소득 불균등에 국가가 사회적 기구를 통해 개입해서 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를 인간의 자유를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절대적 선이라고 본 헤겔과 그 이후 독일 철학계의 국가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가 바로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원천이었다. 1948년에서 1963년까지 15년간 아데나워 정부 기간 내내 경제상을 맡아 경제부흥을 이끈 사람이 바로 에르하르트였다. 그 에르하르트가 주창한 것이 이 유럽식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가격 통제나 양적 통제 등 시장경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독과점 역시 엄격히 배척했다. 이 때 그가 세운 독일경제체제는 지금까지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국가가 국가적 기업을 운영하고, 정부가 시장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한국의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는 외국 모델 추종론에 빠져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 독일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가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참여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다. 유럽과 독일의 역사적 전통과 특수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지 유럽 지역이나 국가의 사회경제체제를 한국의 모델로 삼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책가라면 세계적 차원에서 현대 국가가 직면하는 주요 흐름과 모순의 보편성을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살고 있는 특정 사회의 전통과 구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즉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같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행동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재벌 개혁을 주창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당분간은 재벌 개혁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런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한 훌륭한 해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부문별 정책 과제에 대한 논의가 그 중대성에 비해 논의 수준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요 정책과제에 대해 언급한 것들은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한 얘기들이 하나도 없다. 하나 하나가 모두 그것 하나만으로도 온 나라가 들썩일 정책 과제들이다. 또, 이들에 대한 그의 시각 역시 한편으로는 급진적으로 들릴만큼 신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만큼 대단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예를 들면, 그는 교육과 보육을 복지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복지는 소득의 중단을 막기 위한 것인데 교육과 보육은 출산과 생산성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퍼주기 타령을 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또, 노동조합을 기업 밖으로 내보내야한다고 했다. 단순히 산업노조로 가자는 말에 그치는 주장이 아니라 노사관계를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 관계가 되도록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기업 모두 펄쩍 뛸 얘기다.

국민연금제도에 관해서는 적립식과 부과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계층이 1960~70년대 근로자들, 즉 지금의 노년층인데 이들의 생계보장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초노령연금에 관련된 논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그는 국민연금제도가 처음부터 잘못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이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국민연금을 깎는 쪽으로 개악한 것은 참으로 아쉬웠다. 그 당시 진보 진영 학자 중 유일하게 이 바보 같은 짓을 적극 비판한 것이 유종일 뿐이었을 정도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이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유시민을 일 잘한 장관이라고 한단다.

그는 또 국민연금기금을 유가증권, 특히 주식 사는데 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재정사업, 그 중에서도 출산율을 올리는데 쓰자고 한다. 이 역시 진작부터 누군가가 제기했어야 하는 문제의식이다. 지금처럼 적립기금이 늘어날 때는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적립기금을 줄어들 때쯤 되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고 기업연금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착오다.

이 책에는 이런 뛰어난 통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가면서 놓치지 쉽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평이하게 쓰여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관해 쓰여진 글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쉽게 읽히는 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점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단점이 될 수 있다. 무겁고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 쉽게 풀어서 쓴다고 해도 일부 독자는 너무 어려운 용어가 횡행해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또 다른 독자층은 도리어 깊이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그가 툭툭 던지듯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얘기 중에는 어지간한 독자가 아니면 그 깊은 의미를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것들이 많다. 또 그런 얘기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은 채 넘어가서 과연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가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어려운 주제와 쉬운 서술이라는 양자간의 긴장을 성공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나라에서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평이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쓰여졌다. 그러나 이 책에는 구체적인 정책과 액션플랜은 없다. 그는 서문에서 이를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바쁜 일정 사이에 단기간에 써낸 책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또 써보았자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짧은 책에서 많은 분야를 모두 다루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개별 정책 분야에서는 수박 겉핥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종인 특유의 주옥 같은 통찰이 여기저기 그냥 널려져 있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정책가로서 인정을 받고 난 후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책을 쓴 적이 없다. 치밀한 글을 쓴 지가 오래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오랜만에, 그것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에 쓴 글이다. 주의를 기울여 읽는 독자만이 그 통찰의 편린을 겨우 엿볼 수 있다. 보일 듯 보일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용 같다. 누군가가 그를 쫒아 다니면서 집요하게 그의 머리 속 생각을 더 끌어내었으면 좋겠다.

정책가는 일종의 교향악 지휘자와 비슷하다. 한 악기에 깊이 천착하는 대신 다양한 악기에서 나는 소리의 화음과 박자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가 지휘자로서 들려주었을 지 모르는 음악의 일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그가 지휘하는 교향악을 들을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김종인을 논한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서평 (I)

한나라당의 변신과 김종인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났다. 1년에 걸친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주제로 부각된 것은 경제민주화였다. 사실 이건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 덕이 크다. 야당이야 원래 그러련 하겠는데 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경제민주화는 모두의 과제가 되었고, 과연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촛점이 쏠리게 되었다.

그 경제민주화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인물은 김종인이었다. 아마도 작년 정치권 보도에서 세 대선 후보를 제외하고 언론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이 김종인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재작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양당은 국민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야당은 단일화 경선에서 시민 운동가 출신 박원순에게 지면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아침에는 민주당이 버스를 대절하여 조직을 동원했지만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시민들에게 밀렸다. 여당도 박원순에게 졌다. 토론과정에서 박원순은 준비가 안된 티나 너무도 났고, 선거 유세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빙을 예상했던 선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보다 큰 차이인 7.2%의 표차로 박원순이 이겼다. 

그 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궤멸했고, 예정보다 빨리 12월 중순부터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구성했을 때 당 외에서 영입한 인물 여섯 중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사람이 김종인이었다. 그는 정책쇄신분과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이끌었다. 그는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서는 이상돈 교수와 함께 인적 쇄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압박했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한나라당 정책의 선두에 올려놓았다. 과거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변화였다. 박근혜 측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과감하기 짝이 없는 변화였다. 박근혜도 과감했고, 김종인도 과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한나라당의 변신에 반신반의했다. 한나라당의 과거 행적이나 새누리당의 이름을 바꾼 후의 행보만을 보면 의심할 만도 했다. 당내에서도 이러한 인적 쇄신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도 막상 이상돈과 김종인의 요구에 비해 인적 쇄신에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새누리당의 변신은 성공했다. 박근혜는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의제 진지에 거침없이 쳐들어와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명박 정권 심판을 외치는 야당의 주장에 김을 뺐다. 야당은 처음에는 차출한 인물 문재인을 내세웠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출몰한 인물 안철수와 단일화에 몰두하다가, 겨우 선거 2주일을 남기고 뒷북 캠페인에 나섰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왜 졌는지 모른단다. 자기들끼리 정리되고 나면 연락 주기를 바란다.)

모호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방안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막상 여당에서 그 경제민주화에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가 선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정책 공약으로 가다듬어진 것은 11월 중순이었다. 일년 내내 가장 중요한 의제라고 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 것이 선거를 겨우 한달 남겨둔 시점이라는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런 새누리당의 혼란에는 김종인의 탓이 크다. 그 동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주장자로 알려져 온 그가 작년 말 박근혜 측에 합류했을 때부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는 대신 주로 경제민주화가 여당 내에서 주요 의제로 채택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만을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줄 곳 지금 자기 생각을 얘기하면 그것 갖고 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무엇을 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박근혜 후보가 빠르면 10월 중으로 대선 공약으로 무엇을 발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정치과정에서 국회보다 집권자의 의지를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한나라당을 통한 혁신에는 큰 기대가 없었고, 그보다는 박근혜를 통한 혁신을 더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의 책 출간

 그런 김종인이 선거 바로 전 11월 중순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을 냈다. 경제민주화를 한나라당의 정책으로 집어넣고 난 후 일 년이 거의 다 지나고 나서야 김종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는 책을 낸 것이다.

출판 날짜가 묘하다. 11월 20일이다. 박근혜가 그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행복추진위원회의 제안 중 일부를 삭제하고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한 것이 11월 16일었다. 그 후 약 20여일 간 그는 새누리당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사이에 책이 나온 것이다. 출판 시기로는 최악이라 할 만하다.

책을 출판한 시기가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확정되고 난 후였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방안 구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떻게 박근혜 정책 공약으로 귀결될 것인가를 모를 때였다. 이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발표되고 난 후에는 그의 흉중의 생각에 대해 한국 사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한해 한국을 뒤흔든 경제민주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종인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진영 논리를 벗어난 김종인

김종인은 거의 30년에 걸쳐 시종일관 공개적으로 재벌의 탐욕스러운 행태에 대해 비판을 해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노태우 정권 시절까지 경제정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87년 개헌 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남도록 공헌을 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하면서 재벌들로 하여금 업종 전문화를 하도록 압박했고 투기를 위해 매집해 놓은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게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재벌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고 했고, 후배들로 하여금 재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다. 김상조, 전성인, 김우찬 같은 개혁 성향의 젊은 학자가 보이면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서 격려하고 이들의 연구를 후원했다.

이는 보수 정부 직책을 맡거나 정부 정책에 참여했던 경제학자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관변 경제학자들은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도 대부분은 공개적으로 재벌에 대해 각을 세우는 것을 꺼린다. 또, 관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처음에는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소리를 내던 사람도 정부에 들어가거나 사회에서 알아주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목소리가 잦아든다. 다들 한국 주류 사회에서 출세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가 알아서 말조심, 몸조심을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그처럼 일관되게 강한 목소리로 탐욕스러운 재벌과 소득 양극화에 소극적인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이 없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양분화된 한국의 정치 진영 논리를 뛰어 넘나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그의 할아버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잃고 조부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그의 조부 김병로는 의병 운동에 참여했고,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고,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에 대항했고, 박정희 정권 초기 야당 대표를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김병로는 정당 내력 만으로는 야당 인사지만 보통 한국의 보수 야당 인사와는 조금 다르다. 신간회 시절부터 좌우 대화와 타협을 주장했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강화되자 아예 경기도 양주에 내려가 13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타협을 거부했고, 해방 후 처음에는 독자 정권 수립을 반대하고 좌우합작을 주장했고, 무상 토지개혁을 주장하면서 한민당 내에서 충돌했다. 그 험난한 시대에 자기 삶을 통해서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젊은 청년 시절 조부의 비서로 야당 정치를 경험한 그는 조부 사후 독일 유학에 갔다가 돌아온 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정책에 참여했다. 5공 시절 비례대표로 국회의원들 두 번 했으며, 노태우 정권에서 보사부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냈다. 비록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갈라져있던 시절 민주당 전국구 의원을 한번 더 했지만 사회경력 만으로 보면 보수 쪽에 가깝다. 혹시 젊은 나이에 조부를 통해 알게 된 야당인사들의 행태에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의 정책 노선은 지난 30년 간 항상 진보에 가까웠다. 비록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운동권의 급진적 성격 때문에 오염이 된 면이 있으나, 시장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증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진보진영의 주장과 같다. 그는 박정희 정권시절 의료보험과 재형저축을 주장해서 관철시켰고, 기업 노조가 아니라 산업노조를 도입하는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재벌의 탐욕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회통합을 위해 복지체제 강화를 강조해왔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재벌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를 부담스럽게 느껴 그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김종인을 보면서 느끼는 혼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당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진영에서 일했는데 막상 그가 주장하고 추진한 정책은 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이었다. 보수 정권에 있으면서 복지제도 강화를 주장했고 재벌 개혁을 밀어붙였다. 김대중이 구조조정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고, 노무현이 재벌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고,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의 규제완화, 감세, 기업친화정책을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조를 펼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5년 전 줄푸세를 주장하던 박근혜를 돕겠다고 나섰다. 못 말리는 독자행보(도꼬다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돈키호테적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한자리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면서 노욕, 노추라고 깎아 내렸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그가 나이가 들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해 줄 정치가나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진 것은 아니냐고 했다. 언론에서는 그가 말하는 주장 보다는 주로 언제 그가 박근혜와 충돌해서 자발적으로 나가거나 팽을 당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진보 언론은 박근혜과 새누리당이 겉으로만 이미지를 변신하는데 그를 이용하고 있다고 빈정댔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이렇게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고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행보를 계속해왔다. 한국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자신의 정책 경험에 기반을 두어, 재벌 규제와 복지국가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이를 실행에 옮길 대통령감을 찾아왔다.

김종인의 선택

이명박 덕분에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소득 양극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에 합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 노선을 이 정도까지 수정하게 된 것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여기까지 왔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김종인은 한국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쇄신이 되어야 한국 사회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그 쇄신을 위해 박근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 그의 판단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이념적 주장이 횡행하고, 교활한 정치논리가 설치고, 집요한 이익집단의 억지가 버젓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김종인만큼 줏대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의 사고와 경험이 담겨 있는 책을 선거가 끝났다고 그냥 넘겨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계속)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가계부채 해결: 금융권의 손실 분담 없이는 불가능하다

I. 두마리 토끼: 경제민주화와 경기 불황 탈출

대선 최대 이슈로 제기되었던 경제민주화는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소득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불만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만 보면 박근혜는 적어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지금과 같은 소득 양극화가 지속되면 안정적인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소득 양극화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5년 안에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에 의한 국내 산업구조 조정 (또는 그 구조조정의 부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 불공정 거래, 대기업 귀족노조와 비정규직 간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불공평한 세금체계, 취약한 사회 안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박근혜가 제시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모두 시행한다고 해도 그 정책적 효과가 드러나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뿐만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소득 양극화가 만족스러울 만큼 해소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에 비해 차기 정부는 출범을 하자마자 심각한 경제 현안을 직면할 것이다. 당장은 경기 침체와 과중한 가계 대출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금융권 부실채권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또,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들의 배후에 자리잡은 소득 양극화, 출산률 저하의 문제를 그냥 두고 있을 수도 없다. 경제민주화와 경기 불황 모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 현안을 살펴보자. 그 중에서도 이번 글에서는 주로 거시경제 안정에 영향을 주는 금융 관련 이슈에 집중하고, 특히 가계 부채 및 부실채권 대응 방안을 정리하고자 한다.

II.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 현안 

아직 최종 숫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3/4분기의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 대비 1.5%에 그쳤는데 그 중 내수가 공헌한 것은 0.5%에 그쳤고, 대외부문이 공헌한 비율은 1.0%였다. 정부는 세계 경기 둔화를 이유로 둘러대지만 작년 한국의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기 침체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경기 침체는 대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수 침체가 더 큰 원인이다.

지출 항목별 성장기여도



2010
2011
2012(3/4)
총생산
6.3
3.6
1.5
내수
7.0
2.0
0.5
    민간소비
2.4
1.2
0.9
    정부소비
0.5
0.3
0.5
총자본형성
1.7
-0.3
-0.6
재고증감
2.5
0.8
-0.3
순수출
-0.6
1.8
1.0

이러한 내수부진은 지난 5년 동안의 기업부문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전체 근로자 실질 임금이 하락한 것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소비 수요가 정체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미 부동산 경기 하락이 시작되었지만 정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세계적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대마불사가 아니라 전마불사 정책을 써서 거의 전방위적으로 부실채권 처리를 지연했다. 채권단이 부실한 건설기업을 부도처리하지 못하도록 대주단협약을 만들었고, 정부 기금으로 부실대출을 사들였다. (자세한 것은 여기) 가계대출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계 대출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분양된 아파트들의 입주시기가 왔을 때 집단대출이 가계대출로 전환되지 않으면 대규모 미입주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집권 기간 중 문제가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이명박 정권의 이해와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맞아떨어지면서 가계 대출은 계속 늘어만 갔다. 대출은 늘었지만 부동산 값이 계속 떨어지자 결국 하우스 푸어란 소리가 돌게 되었고, 국내 소비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김영삼 정부 때 기업 부실문제를 도외시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지속되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정책을 쓰지 못한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에 이 문제를 방치했기 때문에 정권 후반에 가서 이를 들추어내기가 거북해진 것이다. 남은 일은 그저 자기 정권 기간 중 큰 일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금융권의 잠재적 부실 누적 문제는 더 이상 눈감기 어려운 지경에 왔다. 특히 다중채무자 가계부채, 부동산 PF, 중소형 조선사, 환율하락에 따른 중소기업 도산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성규의 칼럼을 권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관련 선거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입법에 착수하되 이와 동시에 경기 침체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거시 및 금융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통화, 재정정책의 모든 수단을 경기 침체 가속을 막는데 동원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GDP 2~3%에(25~35조원) 해당하는 재정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거론되는 6조원 정도의 추경예산은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 상황은 균형재정에 연연할 때가 아니므로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증세를 연기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금리 역시 추가 하락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비해 환율정책의 역할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과 일본이 모두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책 상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동산 시장과 가계 부채 문제가 경기회복을 저해하고 금융위기로 진화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자고로 이러한 내부자적 시각에 빠져 미봉책으로 대처하는 관료집단의 의견은 신뢰하기 어렵다. 1997년 가을에도 재경원 관료들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다가 IMF 사태 초래했다. 미국의 폴슨 재무장관과 버낸키 연방은행총재는 2008년 봄까지도 모기지 부실에 의한 은행권 손실을 2-3천억불 정도로 과소평가했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위험도 역시 매우 높다. 금감원 발표에 의하면 2012년 6월말 전체 가계대출(870조원)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포함한 부동산 담보대출이 425조원이고 신용대출이 445조원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 모기지 대출(약 50%?) 못지않게 자영업자가 기존 주택을 담보로 빌린 대출이 많다. 이에 반해 외국의 경우 가계대출의 80%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빌린 모기지 대출이다. 이미 있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대출(Home Equity Loan)은 모기지에 비해 위험이 높은데도 아직 한국에서는 대출 목적별 대출 상품의 분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은행권 대출 대비 비은행권 대출비율이 높다. 각각의 대출이 약 50%다. 그러나 비은행권 대출에 대한 이자비용이 월등히 높고 연체율 역시 매우 높다. 신용협동조합이나 저축은행의 가계 대출 연체율은 10%를 넘는다. 그 결과, 동일한 주택에 저당권을 걸어놓은 채권자가 다수 존재한다. 그래서 연체가 발생할 때 적절한 채무 조정 경로를 찾기가 어렵다. 채권자간 이해 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가계 대출은 LTV를 제외하면 외국에서는 대부분 서브프라임으로 분류할 만한 대출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 약 80%가 이자만 내는 대출이고 이는 다른 대출도 마찬가지다. DTI 규제가 있지만 실제로 DTI 규제 대상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주택담보 대출의 20%에 불과하며 그 DTI 한도비율도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

한국의 가계 대출 구조가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금융당국의 상호모순된 정책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정책으로 경기 조정을 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권 부실을 우려해서 담보가치 대비 대출 한도를 낮게 규제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정책 조합이 현재와 같은 한국 특유의 가계대출구조를 낳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에 참여하도록 조장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의 대출 비율을 눌러놓았으니 자연스럽게 풍선효과처럼 그 대출수요가 신용대출과 비은행권 대출로 흘러간 것이다.

이러한 대출이 지속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주었기 때문이다. 대출 시 담보비율만 지키면 소득이나 상환능력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정체 및 하락하면 지금처럼 순식간에 전체 구조의 취약성이 노출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과 관료들은 LTV 비율이 낮고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높아서 한국의 가계 부채가 시스템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이는 책임 회피성 또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홍보성 발언에 불과하다. 관료들의 이런 행태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2009년 은행의 대출은 예금 대비 130%에 달했었다. 이 예대비율에 대한 우려로 한국만 환율이 급등했을 때 정부는 CD 조달금액을 예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변했다.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장이었던 서울대 교수 출신 이창용은 아시아판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와 같은 취지로 기고를 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금융위 관료들은 앞으로는 이런 억지를 부리면서도 뒤로는 슬그머니 CD를 제외한 예금만을 인정하는 예대비율 기준으로 바꾸었다.

가계부채 문제는 일단 발생하고 나면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원금 상환 유예, 장기대출전환 등 구조적 취약성을 경감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이는 애초부터 부분적인 성과 밖에 기대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개인회생절차를 통한 채무탕감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 추궁과 금융시장 불안 증가를 두려워하여 근본적 수술에 착수할 용기를 관료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또,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지 않을 방안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박근혜가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 방안은 실현 가능성도 낮고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이 계획에 의하면 1,000만원 한도로 비은행권 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은행대출로 전환해주겠다고 한다. 금융권의 연체채권을 매입하여 채무감면을 해주겠다는 것은 매입가격 결정 과정에서의 논란은 물론 대출자들의 연체 유발 등 도덕적 해이 위험이 매우 높다. 또, 도리어 은행권 밖 시스템적 위험을 은행권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8조 기금을 기반으로 국채를 통한 18조 자금 조달 계획 역시 설사 실현된다 해도 900조원에 달하는 전체 대출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가 앞으로 5년에 걸친 집권 기간 중 대규모 부실 발생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기간 중 처리를 지연시켜왔지만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지연시 일본식 장기침체의 위험만 높아진다. 정권 초기에 과감하게 가계 부채 관련 부실채권을 도려내어야 통화 및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회복도 가능해진다.

III. 가계대출 부실채권 대책 

이러한 인식과 각오 아래 향후 정부는 두 방향에서 가계대출 부실채권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Two Track Approach)

첫째, 가계의 주택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권의 부실은 그 다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개인회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개인파산, 회생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기) 다중채무자의 빚에는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빌려준 금융회사의 책임도 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 채무자가 빚을 갚기 어려울 때 차압 압류 및 경매 보다 금융권이 손실을 더 부담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연체가 없는 채무자에게는 은행권 LTV 조건을 완화하여 이자거치기간이 없을 경우 최대 80%까지 재대출을 허용하되 대신 DTI 규제는 현행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가. 강제 채무 재조정


다중채무자들이 연체를 하게 되면 비은행 대출부터 연체를 할 것이다.

그 경우 후순위 채권자들은 비록 채무액이 작아도 원금회수를 위해 채무자의 주택을 차압 압류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채무자는 집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런 가구가 늘수록 경매시장에 나오는 주택도 늘게 된다. 이는 다시 주택가격의 하락을 초래한다. 이는 담보액 대비 부채의 비율을 올리게 된다. 이자만을 내다가 원리금을 모두 내야 할 시기가 되어서 다시 거치기간이 있는 재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경우 재대출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채무액 대비 집값이 담보비율을 못맞추기 때문이다.  

다중 채무자의 채권기관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앞다투어 차압 압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채무 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중채무자가 기존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채권 금융기관들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채권자들 사이의 이해 관계를 교통정리 할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다중채무자의 부채를 한곳에 몰아 관리하는 것부터 해야한다. 이런 면에서 오늘 매경기사는 반가운 얘기다. (다중채무자 빚 1곳 몰아 관리) 한 곳에 몰아 빚 잔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워크아웃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손실을 분담하게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기존의 신용조정 경험이 있는 신용회복위원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저항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싫어하더라도 쓴 약을 억지로 목구멍에 쑤셔 넣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어로는 이를 cramdown이라고 한다.)

정부는 연체 발생 다중채무자에 대한 금융회사 간 채권 순위별 손실 분담과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퇴임을 앞둔 김석동이 행복기금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말하듯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일이라는 그냥 놔두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비은행권 채권자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채권 회수를 들어가 서로 먼저 차압 압류 경쟁에 들어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연체발생 부채에 대해 대출조건을 변경하여(대출만기 연장, 이자 감면, 원금 일부 탕감 등)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손해액에 비례해서 정부가 금융회사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출조건 변경 후 더 이상 연체를 하지 않으면 채무자에게 추가로 원금의 일부를 탕감하는 금전적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나. 재대출 조건 개선

지금부터라도 한시 바삐 모기지 대출의 담보비율은 올리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은 낮추어야 한다.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는 소비자 보호를 무시한 금융권의 대출 관행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지금 같이 LTV 조건은 엄격하고 DTI 조건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채무상환능력을 무시하고 채권자의 채권회수만을 추구하는 나쁜 대출 관행의 결과다.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 뿐만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개선이 시급하다. 거치기간 없는 모기지 대출의 경우 LTV비율을 최대 80%까지 상향하고 사업자금을 위한 일반 주택담보대출 LTV도 상향조정해서 비은행권 대출과 신용대출을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DTI를 40% 아래로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담보비율 한도를 올려도 DTI 기준 때문에 재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양 기준의 조정은 점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금융자산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적격 모기지를 신청할 유인을 주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DTI 비율이 일정 기준보다 낮은 모기지 대출의 경우, 소득세에서 이자비용을 일정 한도내 공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본인이 거주하는 주택과 장기 고정금리 대출에게만 추가로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도 재대출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위에서 말한 강제 채무 재조정으로 넘겨야 한다.


IV. 마치면서

이러한 정책은 비은행권에 대규모 부실 채권 및 도산을 발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무슨 정책을 쓰던 간에 피할 수 없다. 전체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만이 남았다.

우선 예금보험 대상이 아닌 금융기관에 대해 공적자금을 이용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적기시정조치와 증자, 및 인수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혹시라도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물론 은행도 저항할 것이다. 아직도 은행은 낮은 LTV와 채권순위상의 우위 덕분에 자신에게 돌아올 1차적 부실부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 다중 채무자에 대한 비은행권 채권이 급격하게 부실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은행권에도 부동산 부실채권에 따른 대규모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은행의 대형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가 경제적인 피해는 막심할 수 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다가오는 거시경제정책 최후의 심판, 어떻게 피할 수 있나 (II)

그러면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경기 조절을 했나?

신용정책, 부동산 정책, 그리고 환율정책으로 했다. 금융권의 대출 관련 규제를 주물러서 대출량 조종을 통해 경기조절을 했다. 그러다가 부실채권이 쌓이면 정부기관이 나서서 부실채권을 사주었다. 또 조금만 경기가 나빠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모두들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부동산 관련 세제를 수시로 바꾼다. 또 다른 수단은 우리는 수출 밖에 없다고 하면서 외환 시장에 개입해 환율 절하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돌아온 노병 강만수가 들고 나온 것이 환율절하에 의한 수출경기 진작이었다. 한국의 관료는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권의 요구에 이 세가지를 번갈아쓰면서 살아왔다. 

각 정권 별로 들여다보자. 외환위기를 졸업했다고 선언하자마자 김대중은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 분양가를 자율화 했고 당첨된 아파트 전매를 허용했다. 제발 투기해달라고 초청하는 꼴이었다. 노무현 시절 달아올른 부동산 투기 열풍에는 김대중 정권 시절 풀어준 부동산 정책이 한 몫을 했다. 환율은 외환위기로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져 있어서 굳이 대규모로 조작에 나설 필요도 별로 없었다. 김대중정권 기간 중 시작된 외환시장 안정용 국가채무는 2002년 말 20.7조원에 불과했다. 이 돈으로 달라를 사들여서 이자율이 낮는 미국국채에 투자했다. 대신 벤처 붐을 일으키고 신용카드 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 2003년 카드사태가 터지기 전 카드대출 액수가 250조원에 달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정권이 물려준 카드 사태가 잦아지자 2003년 말부터 이헌재가 건설경기 활성화를 들고 나왔다. 균형국토개발을 한다는 핑계로 토지보상금을 100조원 가깝게 뿌렸다. 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달라를 사들여 환율시장에 대규모로 개입했다. 2002년 말 20.7조였던 외환기금용 국가채무가 2007년 말에는 89.7조로 69조가 늘었다. 5년간 국가채무가 총 165.4조원이 늘었는데 그 중 42%를 차지한다. (133.8조에서 299.2조로 증가) 총 165.4조 늘은 것 중 예보채권을 국채로 전환하면서 생긴 국가채무가 52.7조(증가액의 31%)이니, 이를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 기간 중 늘어난 국가채무의 2/3가 외환기금용 채무인 셈이다. (69/112.7=62%) 노무현정권 기간 중 재정적자가 평균해서 연간 GDP의 0.4%에 불과했는데도 국가채무가 많이 늘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토지보상금은 토지공사 부채로 잡혀 국가채무에는 안 잡힌다. 땅을 팔아서 원금 환수가 얼마나 되는가가 관건이다.)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환율절하를 추진했고, 꺾이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온갖가지 애를 다 썼다. 외환채무는 2007년말 89.7조에서 2012년말 155.7조로 66조가 늘었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증가액 69조와 비슷하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랍시고 스무가지가 넘는 몸부림을 쳤다. 가계대풀도 계속 늘도록 방치했다. 아니 미소금융이니 하면서 더 조장했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가계 채무 증가액은 더 크다. 2008년 중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2009년 추가 경정예산을 짜서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조금 잠잠해지자 금방 다시 균형재정기조로 돌아갔다.

이렇게 정통적인 거시정책 수단은 무시하고 불건전한 경기조절 정책을 쓰면 후유증이 남는다. 작금의 한국경제가 바로 그 증거다. 침체하는 내수경기를 빚을 늘려 지탱하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빚을 내서 산 땅과 아파트의 값이 계속 올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비싸져서 새로 살 사람이 없다. 부동산 값이 내려가면서 이제는 빚 갚을 일만 남았다.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환율을 높혀 수출로 경기 부양을 꾀헀다. 대기업 수출 채산성은 늘었지만,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들은 그 덕분에 구조조정을 피하고 버텼다. 이제 환율이 다시 내려가면 또 다른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지금부터는 과거의 비정통적인 거시정책의 후유증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가계부채 문제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신용팽창 정책을 쓰기 어렵다. 부동산 경기는 장기 침체만 남았다. 활성화는 꿈도 못꾼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있다. 시장개입으로 절하를 추진하려면 흐르는 강물에 거슬러 헤엄치기는 것처럼 힘만 들고 중간에 익사하기 쉽다. 그동안 미루어온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생겼다.

정통으로 돌아가자. 아무러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밖에 남은 게 없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거꾸러지는 와중엔 통화정책이 별 힘을 못쓴다. 그러니 재정정책 밖에 남은 게 없다. 다행히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좋다. 금융성채무를 제외하면 GDP의 17%에 불과하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재정적자 걱정하지 말고 과감히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야당은 그런다고 비난하지도 말아야 한다. 배운 것 좀 써먹어보자.

다가오는 거시경제정책 최후의 심판, 어떻게 피할 수 있나? (I)

한국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에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른 특징이 있다. 거시 경제정책의 실종이다. 특히 재정정책의 실종이다. 경기조절을 위해 현대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정책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 정책이다. 그런데 한국은 재정정책은 완전 실종상태에 가깝고, 그나마 통화정책이 아주 약한 숨을 쉬고 있다. 대신 신용정책, 부동산정책, 환율정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은 당연히 후유증을 남긴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겪는 고통, 즉 가계부채, 부동산 버블 붕괴, 내수경기침체 등이 바로 그 후유증이다. 더 이상 옛날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경기 조절을 재정정책으로 하기 시작해야 한다.


개별 시장의 움직임을 다루는 미시 경제학에 비해 거시 경제학은 국가 경제의 생산, 실업, 물가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경기 호황과 불황, 일자리와 실업, 물가, 이자율, 환율 같은 문제는 일반 시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굳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도 자연스럽게 거시경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시경제학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막상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경기조절 수단으로 갖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전부다. 재정정책은 경기가 나빠질 때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낮추어서 투자나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통화정책은 주로 인플레를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해서 소비와 투자를 조정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보통은 환율정책을 거시정책의 수단으로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율은 상대방 국가와 자국 통화 사이의 상대적 교환가치 비율이어서 한 나라의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서구 국가들은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다. 금리정책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금리정책에 부수되는 결과일 뿐이다.경기 조절을 위해 직접 외환시장에 뛰어드는 나라는 드물다.

이와 같이 경기와 실업 및 인플레 등의 거시 경제 이슈가 일반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거시 경제 조절 수단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기 때문에, 서구국가들에서는 정치권 뿐만이 아니라 언론에서도 항상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한 논쟁이 주요 주제다. 증세와 감세, 재정적자와 흑자, 이자율 상승과 하락이 허구헌 날 신문의 주요 기사다. 그 중에서도 선거 철이 오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 조세와 재정정책 기조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에게 독립성을 주었기 때문에, 정부 교체를 통해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 조세와 재정지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세나 재정정책이 선거에서 논란 거리가 안된다. 조세정책이 대통령 선거 이슈로 처음 등장한 것이 2007년 선거였다. 종부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부세가 부동산 경기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다. 조세 수입으로는 미미한 액수(2~3조)에 불과하다. 전반적인 조세정책에 대한 논쟁은 전혀 없었다. 재정지출에 관한 논쟁은 아예 없었다. 감세를 하겠다는 이명박의 공약도 선거 이슈로는 부각되지도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그때까지 감세가 중요 이슈로 제기된 적도 없고, 그 당시 유권자들 사이에서 감세정책을 보고 이명박을 뽑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는 바닥을 헤메는데 아무도 현재와 같은 재정정책 기조가 적절한지에 대해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두 후보 모두 주장했지만 증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 재정적자를 일으켜서라도 복지를 늘리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 말도 안했다. 아예 2012년 경기 불황과 2013년 경기에 대한 대책이 아예 거론도 안되고 선거가 끝났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왜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정책이 선거 기간 중에도 이슈가 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한가지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가 모두 균형재정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예 얘기 시작 단계부터 적자재정을 일으키면 크게 잘못인 것처럼 생각한다.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을 "인위적 경기부양"이라고 하여 여야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보수는 물론 진보 언론도 같은 생각이다. 노무현도 인위적 경기부양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헐! 아니, 인위적 경기부양 말고 다른 경기부양이 있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정치권은 그것을 핑게로 눈을 부리리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최근 박근혜 6조 국채 운운하고 야당이 시비를 걸자 전격적으로 다른 예산을 깎는 것으로 마무리진 것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 경기 조절을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하지 않아온 과거 습관 탓도 크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재정정책을 거시 경기 조절에 동원하지 않고 살아왔다.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재정정책 실종 국가: 경제 불황기에 왠 균형재정?


작년 한국의 GDP 성장률은 2%에 그쳤다. 그런데도 재정 적자가 겨우 GDP 대비 1.6%였다.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인데도 이명박 정부은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았다. 여당 역시 재정지출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없다. 지금처럼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현 상황은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지난번 글 <넌 누구냐?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비율>에서는 주로 대차대조표 상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만 부각시키는 것의 오류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한국의 재정적자에 관한 실제 데이터를 보자. 그러면 한국에서 재정정책이 정치적 이슈로 제기되지 않는 것이 왜 이상한지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아래 표를 보기 전에 말해둘 것이 있는데, 낯선 용어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는 재정적자를 얘기할 때 통합재정 수지와 관리재정 수지로 나누어 본다. 대다수 사람들은 통합재정과 관리재정이 무슨 뜻인지 모를텐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관리재정 수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여전히 더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부언하면, 통합재정은 정부기관의 모든 세입과 세출의 차이다. 지방재정, 공공성 공기업이 모두 포함되었다는 뜻에서 통합재정이라고 부른다. 관리재정은 여기에서 사회보장성기금 흑자와 공적자금 상환액을 제외한 수지이다. 정부차원에서 관리 대상인 수지란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사회보장성기금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기금 등을 뜻하는데 이것은 연간 재정예산계획 대상이 아니어서 관리대상도 아니다. 최근 들어 고용보험기금에서 약 2조 정도 적자를 보지만 국민연금 등의 흑자가 워낙 커서 이를 빼고나면 항상 관리대상수지가 통합재정수지보다 적자 규모가 더 크다.)


정부지표를 설명하는 사이트에서 통합재정수지에 관한 페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2002년 이전 데이터는 내가 추가한 것이다.)   




통합재정수지 통합재정수지/ 관리대상수지 관리대상수지/
  (조원)  GDP(%) (조원)  GDP(%)
1997 -7.0 -1.4 -12.8 -2.5
1998 -18.8 -3.8 -24.9 -5.0
1999 -13.1 -2.4 -20.4 -3.7
2000 6.5 1.1 -6.0 -1.0
2001 7.3 1.1 -8.2 -1.3
2002 22.7 3.2 5.1 0.7
2003 7.6 1.0 1.0 0.1
2004 5.2 0.6 -4.0 -0.5
2005 3.5 0.4 -8.1 -0.9
2006 3.6 0.4 -10.8 -1.2
2007 33.8 3.5 3.6 0.4
2008 11.9 1.2 -15.6 -1.5
2009 -17.6 -1.7 -43.2 -4.1
2010 16.7 1.4 -13.0 -1.1
2011 18.6 1.5 -13.5 -1.1
201218.51.3-17.4-1.3

































           2013                    14.2                      1.0                  -21.1                     -1.5           2014                      8.5                      0.6                  -29.5                     -2.0
           2015                     -0.2                      0.0                  -38.0                     -2.4


한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2003년에서 2007년, 즉 노무현 정권 도중 국가 재정 기조가 줄곳 흑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기간 중, 정부가 제시한 예산은 항상 나중에 결산을 해보면 예상보다 수지가 호전되었다. 예상 세수보다 항상 더 많이 걷혔고 예상 지출보다 덜 썼다. 한두해도 아니고 매년 그런 것을 보면 복지지출을 늘이고 싶어하는 정권에 대항해서 일부러 세입을 비관적으로 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 만하다. 이러한 보수적 재정 추정치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2010년과 2011년 정부 예산에 의한 관리수지 적자는 GDP대비 각각 -2.7%와 -2.0%였는데 실제로는 두해 모두 -1.1%에 그쳤다. 이렇게 관료들은 항상 예상 수입을 과소 추정하고 지출은 과대 추정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 재정 적자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일면 기사로 자주 등장한다. 당연히 그 규모에 대한 언급이나 GDP 대비 비율도 자주 회자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재정적자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취급받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번 글에서 말했듯이 정부관료는 물론 여야 정당 및 언론 마저 모두 균형재정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장기에 걸친 균형재정이 아니라 매 해마다 균형재정을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지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약하다. 재정 적자 규모가 항상 미미하고, 따라서 재정 적자 자체가 이슈로 등장하기 어렵다.

한국의 재정 적자가 얼마나 국가 경제에 비해 미미한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위 정부지표 사이트에서 가져온 표를 보자. 



<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재정수지 개선 폭  >
(단위: GDP 대비, %)        

한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선진국평균
통합재정
관리대상
’10년
1.4
△1.1
△10.5
△9.4
△4.3
△7.1
△9.9
△7.7
’11년
1.5
△1.1
△9.6
△10.1
△1.0
△5.3
△8.7
△6.6
개선폭
0.1
-
0.9
△0.7
△3.3
△1.8
1.2
1.1
 * IMF Fiscal Monitor('12.4월),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 결산치('11년은 결산 잠정치)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모두들 균형재정 도착증에 빠져 있어서 재정정책의 역할이 거의 없다. 심지어 세계적 금융위기가 가장 심각할 때 추가로 재정지출을 늘린 2009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겨우 -4.1%였다. 한국이 균형재정 도착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도 재정 적자가 미미한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기가 하락하면 세수가 감소하고 세출이 증가한다. 세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소득이 떨어지면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 수입이 줄기 때문인데, 개인 소득세에 누진성향이 강할 수록 세입 감소가 더 두드러진다. 세출이 느는 이유는 경기가 나빠질수록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출이 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 잘 구비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평시에 재정이 균형재정에 가깝던 나라도 경기가 나빠지면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또 그런 덕분에 경기 회복이 그만큼 빨라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GDP에서 개인소득세와 법인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서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도 세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사회보장제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지출의 증가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추가 경정으로 회계기간 중 지출을 추가로 늘리지 않는 한 경기가 하락해도 재정적자가 별로 늘지 않는다.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1.6%에 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도면 국제 기준으로 보아 균형재정이 가깝다.

그래도 어쨋거나 GDP 대비 -1.6%이니 균형재정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재정적자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감세정책을 반영한 숫자다. 약간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흑자재정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전에는 세수가 GDP의 21%였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이것이 19%로 떨어졌다. 세수를 GDP대비 2% 감소시키고 난 결과가 1.6%의 재정적자로 나타났으니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재정흑자가 나왔을 것이다. 감세를 하지 않는 대신 그만큼 재정지출을 늘렸어도 재정지출확대에 의한 승수효과로 재정적자가 -1.6%보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재정부 장관 박재완은 지난 9월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적정 채무비율이 30%라고 주장했다. 2016년까지 채무비율을 30%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란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소리다. 지금 한국이 국가채무비율 감축 목표를 운운할 나라인가? 실제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17%이고, 잠재 성장률 대비 실제 성장률의 격차가 GDP 대비 약 3%에 이르도록 인력과 설비가 놀고 있는 나라에서 국가채무비율을 왜 2016년까지 30%로 줄여야 하나? 정 줄이고 싶으면 금융성 채무를 줄이면 된다.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택지 조조성, 아파트 건설, 주택자금대출을 줄이면 된다.

균형재정 도그마,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