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옹색한 법치주의: 양형기준 강화

양형기준 강화
현재로 봐서는 양형기준을 강화해서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가 집행유예로 나오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이 여야 사이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어서 실현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나 역시 지배구조 개혁 보다 우선 총수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처벌 강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창피하고 옹색한 얘기다. 판사가 재벌에게 법 집행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얘기다. 사법체계의 부패를 인정하고 이를 우회할 방안으로 아예 판사의 재량권을 묶자는 말이니까.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개혁조치나마 지금의 한국사회가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다. 사실, 횡령배임 처벌이나 사면 제한은 경제민주화라기보다 법치주의 확립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체제는 정치, 경제, 행정 분야보다 더 낙후된 분야다. 가장 낙후된 부문을 이용해 가장 발달된 부문인 경제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내가 형법 강화를 통한 경제민주화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내심 자신이 없는 이유다.  

법치 대 율치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말로만 법치이지 실제로는 중국 전제국가의 율치에 가깝다. 사회 지배층은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처럼 운영되어 왔다. 유전무죄라는 표현이 널리 받아들여지듯이 화이트 컬러 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다. 재벌 총수만이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도 대부분 사면을 받았다. 이에 비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는 기업가 뿐만이 아니라 정치권 인사도 법 적용을 엄격히 한다. 예를 들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공석이 된 상원의원직을 돈을 받고 팔려다가 잡힌 전 일리노이 주지사 블라고예비치는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사법부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의 양형체제 아래에서도 재벌총수들이나 정치권 인사들도 집행유예로 손쉽게 풀려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조선의 국가체제: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의 사회제체가 과거 조선시대의 전제체제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이중톈(易中天)은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진시황 이후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체제를 유지시켰던 3대 요소로 중앙집권체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를 들었다. 진시황은 춘주 전국시대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6세기 수문제부터 윤리치국을 담당할 관리를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해 국정을 맡겼다. 

한국에서 중앙집권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국보다 1,200년이 지난 10세기, 고려 태조의 넷째 아들인 광종 시대다. 그는 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956년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세력기반인 노비를 양민화시키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다. 한국이 중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한나라 시대부터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에 비해 한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교가 국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체제가 뒤늦게 도입되었기는 하나 14세기 이후 두 나라는 모두 중앙집권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에 기반을 둔 전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 체제가 무너진 연대도 매우 비슷해서 중국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한국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에 없어졌다. 이러한 전제정치체제는 중국은 2천년, 한국은 보기에 따라 천년, 또는 5백년간 유지되었다.

이 세가지 요소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윤리치국이다. 윤리치국 대신 중국은 군벌시대를 거쳐 공산주의로, 한국은 식민시대를 거쳐 헌정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북한은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사실상 세습 전제체제다. 중국 역시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실제로는 세습 대신 선양을 하는 집단 전제체제다. 남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고 민주공화정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승만 독재로 넘어갔다. 4. 19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잠깐이었을 뿐 곧 군사독재체제로 넘어갔다. 박정희가 충, 효를 내세운 것도 한국의 윤리치국 전통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혁명을 거친 후 부터다.  

중앙집권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중앙집권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도, 군, 면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행정구역체제다. 예를 들어, 유럽권의 주소는 나라, 시, 거리 이름으로 끝나지만 한국은 도, 시(군), 면 리(동)을 모두 적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 유명무실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세금제도여서 국세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2010년 전까지는 주민세로 불리던 것인데, 국세인 법인세나 소득세에 10%를 할증해서 부과한다. 국세가 몸통이고 지방세는 꼬리다. 이에 비해 서구 국가에서는 지방소득세가 국세와 동격이거나 아예 지방세액이 일정액 이상일 경우에만 중앙정부가 국세로 소득세를 추가로 받아간다.

관원대리 체제 역시 역시 여전히 강고히 남아있다. 아시아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외에도 베트남과 일본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도 헤이안 시대(794-1185)에 과거제도를 실시했지만 하급귀족이 중급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하는데에만 쓰여졌고 그 위 상급귀족층에 의한 지배체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체제와 무사계급이 들어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에서 과거제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고등문관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48년 고등문관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대신 1종 공무원시험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일본의 1종, 2종, 3종 공무원 시험은 한국의 5급,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는 1940년대 외무고시를 추가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제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이 사법부문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독점체제가 바뀐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판검사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도 원래는 검사나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확대되면서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1996년 5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급증했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재자의 충실한 견복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 나라였다면 횡령배임 처벌 강화나 사면 제한 같은 소리가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둥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재벌문제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바꿔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옹색한 얘기다. 중국 전제정치에서 유래한 관원대리 체계가 가장 강고히 남아 있는 곳이 사법부다. 관원대리체계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패한 사법체제가 과연 양형기준 만으로 재벌총수의 불법을 제대로 응징할 지 솔직히 자신하기 어렵다.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세 대선후보 진영 정책 좌장 인터뷰 유감

어제 경향신문이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 경제민주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세 사람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자.

김종인의 인터뷰에서 우선 눈에 띄는 부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공약으로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금지 등에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재벌 개혁’이나 ‘재벌 해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그는 “외부의 힘으로 재벌을 개혁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하던 얘기다. 재벌을 규제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배구조나 출자구조를 손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가 없다. 순환출자도 신규 출자만 금지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경제현실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은 책임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도 하면서 우리 경제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같이 가는 그런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 데서 (박근혜 후보는) 차별성을 찾으려고 한다. 박 후보가 기분대로 ‘재벌 해체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사실 재벌 개혁 하겠다는 것도 헛소리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다.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가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재벌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들이 적응할 것 아닌가.”

김종인은 지금 진보 학자들이 내놓는 재벌 개혁 방안이 너무 이상론에만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각 야당 진영의 경제민주화 방안은 너무 논리적으로 완결된 얘기를 만드는데 빠져서 과연 그것이 현실에서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실행할 수 있는지, 또 실행에 옮겨지려면 추가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표류하는 경제민주화 논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보아 세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첫째는 그것이 지나치게 재벌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도 너무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 두번째 문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득양극화 문제 개선인데 막상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방치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저부담 저복지 체제 및 기형적인 조세체계를 합치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 내놓은 정책방안은 어설프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번째 문제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소수 전문가 사이의 담론 경쟁이 되어 버렸다. 말로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면서 막상 국민의 참여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출총제, 금산분리, 순환출자 등 전문용어는 날아다니는데 국민들은 이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인지 어리둥절하다. 
 
내가 보기에 상황이 이렇게 되버린 데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엘리트 지배구조 탓도 있지만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좁은 시각과 지적 편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박근혜 측에서 대기업과 재벌문제를 공정거래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야당과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은 재벌개혁이 없는 경제민주화는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정거래 개혁과 재벌 지배구조 개혁만 해서도 안된다. 설사 지금 양 진영에서 나온 안들의 대부분이 법안으로 통과된다고 해도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별이 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 설사 양극화 해소에 조금 기별이 와도 그것만으로는 국민들이 자기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횡령을 저지르는 재벌총수를 감옥에 넣고, 단가를 부당하게 후려치거나 일거리를 몰아주지 못하게 해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이런 점을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김기원, 김진방, 김상조 등도 모두 경제민주화를 크게 보아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인식하고 있다. 장하성, 이동걸, 유종일, 전성인 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내놓는 경제민주화 방안이 지나치게 재벌개혁 방안에만 경도되어 있고, 그것도 지나치게 이상론에 치우쳐져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만 얘기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길 것인가는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지배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계약법과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권 국가에서만 보이는 형태이고, 대부분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이라고 다를 수 없다. 또, 국회에서 소수당인 민주당과 무소속인 안철수가 자기들의 주장을 입법화 할 수단은 없다. 결국은 여당이 동의하는 만큼만 가능하다. 또, 출자총액 제한이나 순환출자를 금지 또는 해소하도록 강제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을 추진할 것인지, 또 그 다음은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순환출자의 고리 중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고리를 끊어서 다단계 출자 구조로 만들면 다됐다고 손 털 것인가? 과연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상속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할 경우 횡령과 배임으로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저절로 환골탈태할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막상 소득 양극화에 대해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과 한국 지식사회의 진영화가 겹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상조는 "기업·노동·복지 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그가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꺼리는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일게다. 김상조는 기업지배구조와 금융감독정책 전문가이지 거시경제정책이나 노동 복지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이는 김상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정우, 이동걸, 김진방 처럼 문재인 진영에 가있는 사람들이나, 장하성, 전성인 처럼 안철수 진영에 가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김기원처럼 독립적인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조세, 재정, 복지, 노동 정책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기가 잘 아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들의 지적 편향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한국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연구 수준이 그야말로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를 해야만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각자 자기의 전문 연구분야가 있지만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닌 경제정책에 대해 활발히 발언을 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다룬 미시경제학으로, 크루그만은 국제무역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둘 다 세계화, 소득 불평등, 시장만능주의, 긴축재정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각 분야에서 정리된 연구들이 쌓여있어서 그 지식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여건이 아직 안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소득 양극화에 관련된 연구 자체가 거의 보기 힘들다. 가장 크게는 통계가 없다.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 소득 양극화에 대한 기초 통계 조차 제대로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지니계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소리는 그것이 도시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거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지게 된다. 막상 돈 많은 사업가와 전문직은 빼고 계산했으니 말이다. 납세자 정보 보호라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던 국세청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내는 납세자 기준으로 상위 1%의 평균소득을 밝힌 것도 지난 9월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자료도 소득 공제를 뺀 숫자이니 총급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소득이 많을 수록 공제혜택도 많이 받는다. 또, 총 가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국인의 자산배분 구조상 80%가 부동산이라는데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처럼 한국에서 불투명한 소득은 없다. 마지막으로 소득이 아니라 자산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런 납세소득 기준 통계도 처음이니 그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아예 알길이 없다.

통계가 없으면 경제학자는 전문가로서 기여를 하기가 어렵다. 분명히 소득 양극화는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기제에 의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일반 식자층 수준의 얘기 밖에 할 수가 없게 된다. 단지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 아니다. 일반 시민의 의식과 여론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일반적이고 모호한 불만으로만 남는다. 문제의 우선 순위를 잡기도 어려워서 정책화 하기도 어렵다. 온갖가지 연막술과 어거지 반론을 상대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업, 노동, 복지 관련 연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책연구소들이 중소기업 분야에 대한 연구를 안한 것도 아니고,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대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 실업보험에 사각지대가 많고, 보험금이 쥐꼬리만하다는 문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정책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거의 모두 기존의 정책환경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계층이 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정치적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굳이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자신의 정치자본을 쓰려는 대통령은 없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진영 양극화가 겹치면 문제는 더더욱 꼬이게 된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에 대한 꿈이 체현된 것이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40%의 박근혜 지지율이다. 이에 대한 반대세력은 호남세력과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운동권 출신 인사로 채워진 민주당과, 귀족노조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과거 운동권 시절 익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이 추진한 FTA에 대한 정신분열적 대응 태도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과 환멸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지만 준비가 덜 된 채 뛰어들어서 출마하자마자 단일화 논의에 함몰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처럼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증세를 얘기하는 것 자체를 겁내는 나라가 되었다. 각종 세금 감면을 줄인다고 하지만 바로 그게 증세다. 그러나 증세란 표현은 극구 피한다. 마치 세율 조정만이 증세인 양 한다. 보편적 증세를 언급했던 안철수도 이제와서는 말을 흐린다. 비록 발언 후 하루만에 후퇴를 했지만 정치권에서 부가세 증세를 처음 거론한 것이 여당의 김종인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뒤틀린 정치구도를 반영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진영에 참여한 학자들은 어느덧 학자가 아니라 정책기술자가 되어서 뭐 화끈한 것 없냐고 물어보러 다닌다.

도대체 GDP에서 조세부담율이 19%에 불과하고,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다시피 하고, 사회보장에 쓰는 예산이 GDP의 9% 밖에 안되는 나라가 무슨 수로 소득 양극화를 막겠다는 것인가?  자기 나라 국민의 교육을 사교육과 입시지옥에 몰면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주택 값이 지금처럼 높고 아이를 낳아보았자 제대로 기를 수 없는데 어떻게 출산률을 높일 수 있나? 한국의 정치인과 정책가들은 신이 내려준 비법이라도 갖고 있는가?

소위 시대 정신이라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렇게 다시 한번 일부 전문 지식인들이 자기의 지적 능력을 뽐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각 캠프에 갈려서 내는 방안이니 서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재벌개혁에 몰두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복지는 마치 경제민주화와 상관 없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성장 동력 찾기, 선거용 사업 거리 찾기, 중소기업 퍼주기 공약하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재산세도 낮고, 재산소득세도 낮고 부가가치세도 OECD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조세체계 개혁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세계에서 소득 대비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는 공교육 체계을 개혁하자는 논의도 들을 수가 없다. 성장률이 2%로 내려가고, 부동산 시장은 붕괴하는데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도 없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표류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더 나빠져야 좋아질 것 같다. 부동산 붕괴 후에야 희망이 있을까?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정규직 노동의 경직성 해소 방향

귀국한 후 직장에 다니면서 느낀 한국의 특이 현상 중 하나가 사오정이었다. 왜 회사가 기껏 기른 중간 간부 인력을 다른 나라 같으면 한참 일할 나이인 40대 중반에 조기 퇴직을 시키는 것일까? 이 의문은 회사를 몇 달 다녀보니 금방 풀렸다. 한국 기업의 보수체계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설명해보자.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아서: 시대착오적인 보수과 맹목적인 진보 사이에서 새길 찾기


안철수 진영에서 며칠 전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재벌개혁과 공정경쟁에 모두 방점이 가있다. 민주통합당 안과 대동소이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출자총액제가 빠졌고, 재벌개혁 위원회와 계열분리 명령이 들어갔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으므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장하성이나 전성인처럼 참여한 사람들 자체가 민주당과 평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안보다 조금 더 정직하다. (민주당이 출자총액제를 고집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 관성과 허세에 의한 것이다.) 안철수가 맥빠진 정치비전을 발표하면서 같이 내놓은 엉성한 중소기업 정책보다는 완성도가 높다는 것 정도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안철수진영은 경제정책 보다는 어떤 정치 개혁을 원하는지부터 얘기하는게 나을 것 같다.

러나 그런 정책으로 어떻게 국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과도 차별화가 안된다. 또 아무러나 국회는 앞으로 4년간 새누리당이 지배한다. 경제민주화 방안을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새누리당이 하지 않겠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 중 그 어느 것도 법으로 통과시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 진영이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의 틀이다. 정치적으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공유하지만 양 당은 아직 속내 생각이 다르다. 가장 큰 간극을 보일 것은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각이다. 야당은 개방과 시장을 불신한다. 노무현이 시작한 FTA를 부정한다. 여당은 경제문야에서 국가와 규제를 불신한다. 재벌개혁에 소극적이고,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적대적 공생관계이긴 하지만 정책분야에서는 학과 조개 처럼 서로 물고 버티고 있어 해결이 안난다.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통행세 장사 (II): 댓글을 보고.

어찌 알고 찾아와 읽는 사람이 늘은 것은 고맙지만 아직까지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이 블로그의 특성인 것 같다. 사실 블로그 댓글에 답을 다는 수고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유독 통행세에 대한 글에는 댓글이 여럿 올라왔다.  아마도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들은 글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이성규가 전하는 기업부실 처리 군상: 이번 주 꼭 읽을 컬럼

한국에서 부실기업 처리 분야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서근우와 이성규일 것이다. 이 두사람은 이헌재가 한신평 사장으로 있을 때 같이 일했던 인연으로 이헌재가 금감위원장 시절 부실기업 처리 업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요즈음 서근우는 금융연구원에 있지만 이성규는 여전히 부실채권 처리 일을 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부실채권 관리를 위해 공동으로 출자해서 설립한 연합자산관리의 사장을 맡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부실채권을 헐값에 팔아 넘겨 외국인 투자가 좋은 일만 시켜준 쓰라린 경험을 되살려 은행들이 만들었다. 들리는 말로는 잘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 이성규가 지난 여름부터 조선일보에 컬럼을 써왔는데, 지난 수요일에는 기업 갱생에 확실히 실패하는 방법을 썼다. 지난 주에 쓴 반복되는 금융위기: 부실을 부실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를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지난 주 이성규의 글만이 아니라 과거에 쓴  워크아웃이 왜 잘 작동하지 않을까부동산 PF는 어쩌다 망가졌을까를 꼭 같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조선일보 같은 일간지가 부실기업 처리 같이 전문적인 주제로 컬럼을 연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통행세 장사: 대기업에서 시골 마을까지 퍼진 독버섯

30여년 전 이맘때 여동생 및 친구와 함께 설악산에 갔었다. 서울을 떠나 인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백담사 입구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가난한 강원도 벽촌이었다. 유일하게 있던 마을 가게는 침침한 전구가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었고 바닥은 다져진 흙이었다. 가게이자 우체국이기도 해서 바깥 벽에는 주황색 공중전화가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민박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쌀쌀한 공기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어올라간 백담계곡의 가을 경치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그 백담계곡을 한참 올라가다보면 옆으로 백담사가 보인다. 그때는 단지 한용운이 머물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한적한 절이었다.

오늘 한겨레에 백담사 앞에 있는 그 마을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백담마을 주민출자 버스사업…급여 월 2백 넘어) 용대2리 마을부터 백담사까지 가는 7.2km 구간을 왕복 운영하는 마을버스기업에 관한 기사다. 1996년 출자금 7,500만원으로 시작한 기업이 작년 버스 10대, 매출 16억원, 직원 수 16명, 작년 마을발전기금 출연액이 4억원인 "알짜 공동체 기업"이 되었단다.

조금 이상했다. 뭐 대단한 사업이라고 그렇게 이익이 많이 날까? 읽다 보니 곧 의문이 풀렸다.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전환시대: 잃어버릴 10년

진중권이 몇년 전 말하기를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박이를 키고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자기들이 힘든 이유가 좌측 깜박이 때문인 줄로 착각한다고 했었다. 그 식으로 말하면, 이명박은 확실하게 우측 깜박이와 우회전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자기가 힘든 이유가 실제로는 우회전 때문인 줄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여당의 일부도 깨달은 것 같다. 이명박 정권 덕분에 그것을 깨닫는 시기가 앞당겨졌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한국에 남기고 가는 유일한 선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고속성장이 남기고 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워낙 강하다. 그 추억에 매달리는 지금의 한국 정치와 경제체제는 우리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짊어진 업보다. 한국은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25년간 독재정권에 의한 경제개발 기간을 거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개발 독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 전의 경제개발 모델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데 또 다른 25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지난 50년의 경제발전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출산율 저하와 사회 양극화다. 성장률이 지금보다 1~2% 더 올라본들 아이를 못 낳고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근래에 들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대두된 것도 그 25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게 된 이 깨달음 덕분이다.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한국은 그 동안 쌓인 부동산 버블과 세계적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인한 불황을 맞아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힘든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환의 시대가 왔다. 50년 간에 걸쳐 누적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다시 만들고 다시 세워야 한다. 당분간 우리는 고통과 눈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환이 이루어지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전환시대를 거쳐야 산다. 

일본 역시 방황하고 있다. 1991년 후 겪었던 장기 불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지만 실지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일본은 자기들의 경제성장모델이 더 이상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일본 모델을 모방하여 고속성장을 해온 한국 역시 90년대 이후 마찬가지 이유로 방황하고 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장기불황을 간략히 들여다 본 후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전망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면 이 블로그의 이름을 전환시대라고 한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반복되는 금융위기: 부실을 부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라

흔히 알려진대로 한국 언론의 전문성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특히 경제, 금융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체적으로 기사를 취재할 능력이 떨어지니 정부나 기업이 주는 보도자료를 약간만 수정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도산 문제는 금융와 법이 만나는 분야라서 기자들이 다루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서는 비교적 발빠르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9월 26일 법정관리 신청 당일 극동건설만이 아니라 극동건설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도 같이 신청을 한 것이 예상 밖이었고, 웅진홀딩스 지분 약 79%를 가진 윤석금이 신청 당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끈 것 같다. 아니, 회장님이라 불리던 사람이 지주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었어? 그러나 한국의 기업 부실과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사실 웅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부실 규모도 2조가 안된다.(수정: 웅진 도산으로 금융권이 입을 손실이 2조 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문제는 그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현행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고,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처리하는 워크아웃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보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기업이 훨씬 많다. 금호아시아나 등 수많은 기업이 워크아웃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 워크아웃 문제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2012년 10월 4일 목요일

허약한 정당 정치: 대기업 노조의 긴 그림자


민주당은 누구를 대표하나? 민주당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기반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당 내부로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힘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최장집)

많은 사람들이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책임정치, 정당정치, 정책정치의 실종을 든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제도적으로는 단임제 대통령제, 결선투표제 결핍 등을 들기도 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건너뛰는 정치인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정당정치의 실종 뒤에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도 큰 역할을 한다. 즉 대기업 노조의 탐욕은 양극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적 구도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단지 그 연결고리가 잘 안보일 뿐이다

위에서 인용한 최장집의 말은 민주통합당이 허약한 원인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