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여전히 혼란스러운 재벌개혁과 양극화 관계: 김영욱과 김상조 컬럼을 통해 본다

최근 며칠 사이에 경제민주화에 관해 상반되는 의견이 신문에 실렸다. 지난 금요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영욱의 컬럼과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 김상조의 컬럼이 그것이다.

김영욱은 경제민주화의 목적은 양극화 해소라고 전제한 후, 재벌은 양극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상조는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나누고,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된다고 주장했다. 어디에서 이들 시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들 각각의 주장에 대해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 주장이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내가 얘기해온 것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거니와, 각각의 주장이 갖는 문제점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양극화에 관련된 논쟁의 중요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인식들이 각각의 문제를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김상조의 주장이 갖는 문제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이제 각각의 주장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김영욱은 "재벌이 과연 양극화의 주범일까" 에서 경제민주화의 목적은 양극화 해소라고 전제한 후, 재벌은 양극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재벌개혁 이슈를 상속과 오너 경영의 기업지배구조, 선단식 경영을 통한 경제력 집중,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에 대한 불공정거래 등으로 분류한 후, 지배구조에 관련해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금산분리 및 순환출자 금지는 양극화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양극화 해소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건 불공정거래다. 하지만 그 관계도 그리 명확하지 않다. 재벌의 낙수효과 때문이다. 재벌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의 수익률이 그러지 않는 업체들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굳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재벌개혁을 하겠다면 불공정거래에 집중하는 게 옳다.
첫째, 그처럼 경제민주화의 목적을 양극화 해소 만으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심스럽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 용어가 아니거니와 순수히 경제정책적인 측면에서만 제기된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경제 분야에서도 정의와 평등와 공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다는 정치적인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념이다. 양극화 해소 목적만을 위해서라면 복지나 세금으로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의 목적을 양극화로 국한한 그의 논의 방식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 다음, 금산분리나 순환출자 금지가 양극화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그렇게까지 확정적으로 말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재벌의 지배구조와 양극화 사이에는 분명 관련이 있다. 다만, 그 관계가 여러 단계를 거치고 복잡해서 직접적이지 않고, 단순명쾌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우선 재벌의 지배구조는 그들의 경제력 집중을 가능케 한다. 과연 금산분리를 지키고 순환출자 없이 지금과 같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가능했을까? 바로 이러한 경제력 집중은 공정거래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는데 기여하고, 집중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재벌의 저항 때문에 불공정거래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도 힘을 쓰지 못한다. 대기업 노조의 탐욕과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그로 인한 한국 경제의 질곡도 재벌의 독과점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배구조와 양극화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무리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그는 재벌과 거래하는 협력업체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들어 재벌의 낙수효과 때문에 양극화 해소와 불공정거래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첫째, 재벌기업의 수익률이 협력업체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를 간과한 것이다. 또, 재벌과 하도급관계가 없는 기업의 수익률이 협력업체보다 더 낮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이는 불완전한 주장이다.

이제 김상조의 주장으로 가보자. 김상조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총제나 순환출자가 우선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서 상장회사 이사들의 보수를 개별로 공개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경제범죄 처벌 강화도 시급하다.
...
지금 경제민주화가 갈피를 잘 못 잡는 이유는 재벌이나 금융개혁보다 더 중요한 하도급, 자영업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번째 인용부분은 작년 내가 민주당 특위에 참여했을 때 가지고 있던 재벌개혁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다. 즉, 전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 즉 법치주의와 공정거래 확립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집중화된 재벌을 축소시키기는 어렵지만, 대신 나쁜 짓하다 걸리면 확실히 벌 주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 '양극화 해소'다"라는 컬럼에서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나눌 수 있다. 재벌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칭찬해 마지않을 일이지만 문제는 재벌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에까지 흘러넘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재벌기업이 경제력을 오·남용하고 총수 일가가 사익(私益)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들이 사회 협력의 틀 안으로 들어오도록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재벌 개혁이고, 이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김상조의 주장의 그가 최근 발간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주장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낙수효과 실종에서 찾고, 그 실종 이유를 주로 재벌기업의 경제력 오남용과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로 돌리고, 이 오남용과 사익 추구를 막기 위해 재벌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재벌개혁을 통해 오남용과 사익추구를 막으면 낙수효과가 다시 작동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그의 재벌개혁 촛점은 하도급 업체와의 공정거래에 가 있는 듯하다. 권력 집중이 오남용의 확대를 가져온다고 보지만 권력 집중 자체를 막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현실적이므로 출총제나 순환출자 보다는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통해 권력 오·남용을 줄이자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재벌이 잘되면 모두 잘살게 된다는 낙수효과의 실종을 주로 권력 오남용에서 찾는 그의 시각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권력 집중과 오남용은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이유의 일부일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한 설명이다. 예를 들어, 재벌의 권력 남용과 사익 추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도리어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했다. 적어도 경제력 집중도는 지금이 더 심하지만, 그에 기반을 둔 권력 오남용과 사익 추구는 과거에 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낙수효과 실종의 원인을 재벌기업의 권력 오남용 및 총수의 사익 추구에서만 찾는 것은 일편적인 분석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한정된 지면을 감안해서 다른 요인을 거론할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쓴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도 재벌의 낙수효과 실종 원인을 주로 하도급기업과의 불공정 거래에서만 찾았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그 의견이 중소기업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다수의견이라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그것이 다수의견이라면 중소기업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협소한 시각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낙수효과 실종과 그 원인 분석이 그 책의 핵심 주장인 것을 감안하면, 그 핵심 주장을 다수설이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것은 그 주장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너무 빈약한 증거 제시다. 물론 김상조는 책에서 기술변화나 세계화가 낙수효과 실종의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은 일부 요인일 뿐 주요 원인은 아니고, 그보다는 하도급기업과의 불공정거래가 압도적으로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이들 요인들의 상대적 비중에 대한 분석을 그가 소홀히 하고 있다고 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 비중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가 대기업 노조가 한국의 양극화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기업 노조의 배타적 이익 추구 행태는 이러한 불공정 거래의 심화나 악화를 조장한다. 대기업의 경영진과 노조는 하도급 착취에서 생기는 경제적 잉여를 나눠 먹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하도급 업체의 가격을 깍아야 자기들의 높은 월급이 보장되기 때문에 대기업 직원들이 불공정 거래에 더 열심일 수 밖에 없다. 옛날에는 이런 현상을 지주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고 했다. 또, 대기업노조의 이해 관계가 노동시장 관련 이슈를 장악하면서 한국 사회의 나머지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기가 더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해졌다. 기껏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정리해고 금지하자, 최저임금을 근로자 평균 임금 수준으로 올리자, 등의 엉터리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지금 근로자 일부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이 받는 임금이 한국 경제의 소득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데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이 노동개혁의 주종목으로 단골처럼 등장한다.  

또, 대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수입 기술 및  부품을 이용해서 나머지 한국 경제와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섬을 만들면서 생긴 한국 경제의 이중 구조화에는 대기업 노조의 노동시장 개혁 저항과 임금 인상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 재벌기업들은 87년 이후 경제 전체적인 균형을 무시한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과 고용보장, 연공서열제 유지 등의 요구에 대응하여, 공정의 분리와 하청생산 확대 만이 아니라, 자체 공장 자동화 및 생산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설비 투자, 사오정 퇴직에 나섰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 노조 문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와 낙수효과 실종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논의하겠다.)

그 다음, 김상조는 이러한 재벌기업 노조에 의한 구조적 질곡 외에도, 한국 경제가 과거의 양 위주 경제발전체제에서 기술혁신과 지식경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 지연됨에 따라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 확대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기업 부문에서 항시적인 경쟁과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영업이익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데도 버티는 좀비 중소기업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부동산 버블, 인수합병에 의한 중소기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할 구조조정 지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 부문 자체의 역동성 부족은 그 부문의 생산성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는 재벌 개혁으로만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또, 저임금에 의존한 생산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인적 자본 형성에 한국이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얘기가 없다. 한국의 인적 자본 형성 체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한다. 질은 낮고 값은 비싼 사립대학에 거의 80%를 의존하고 있는 고등교육 시스템,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보다는 순위경쟁에 치우친 교육투자의 낭비, 한번 탈락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으로 돌아야하는 신분 고착을 피하기 위한 대규모 청년층 실업, 이로 인해 직장 경험을 통한 인적 자본 형성(human capaital accumulation by learning-by-doing) 부족, 연공서열 인사에 따른 사오정이 낳는 인적자본의 조기 폐기 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자들은 이러한 문제가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효율적인 인적 자본 형성 체제하에서도 재벌 대기업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또, 그에 비해 중소기업 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이 정체되고 있다. 이는 한국 교육체계의 비효율성의 부담을 중소기업이 대부분 지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을까? 엄밀히 말하면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낙수효과 실종을 공정거래 문제에서만 찾는 김상조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주장 역시 가설이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비효율적인 인적 자본 형성 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 확대와 상호간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기업의 정규직 보호 및 고임금이 과도한 대학진학률, 학벌 경쟁 등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지금 논의상 더 중요한 점은 대기업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인적자본 개발 체계 아래어서도 자기 독자적인 능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단을 갖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수출입 비중 증가, 고용창출 지수 저하, 부가가치율 하락, 낙수효과 실종, 생산성 격차 확대 등 이 제반 현상은 한편으로는 대기업이 수입기술과 설비 투자 및 고급인력 독식과 이에 기생하는 대기업 노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한 유능한 인력 양성 및 제공 실패가 공동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물론 하도급 거래의 불평등 때문에 중소기업이 기술투자와 고임금을 지불할 여력이 부족해서 생산성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인력 양성 시스템이 대기업에 비해 근로자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중소기업의 생산성 낙후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가능성을 배제하기란 어려워보인다. 

정리하면, 중소기업 부문의 역동성 부족 및 구조조정 부진,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 행태에 의한 경제 전체적인 보상시스템의 불평등, 비효율적인 교육 훈련 체계의 피해가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부문에 집중되는 문제 등이 재벌의 권력 오남용과 총수의 사리 추구에 의한 공정거래질서 훼손에 못지 않게 중소기업의 생산성 낙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화와 기술혁신을 더하면 공정거래 질서확립의 영향력은 더욱 축소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양대 과제 중 하나로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것의 타당성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노동개혁, 그것도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타파할 방안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주요 과제, 즉 양대과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재벌개혁 못지 않은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않을까? 노조와는 말이 안 통하니 현실적인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 재벌과는 말이 통해서 재벌개혁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 나는 경제 민주화에서 대기업 노조의 문제를 회피하는 진보 진영의 주장이 미덥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립교육기관에 의존하는 교육체제를 타파할 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양당의 경제민주화 방안 역시 공허하게 들린다. 생산성 격차 확대에서도 중소기업 부문의 구조조정 미흡 문제를 다른 문제 못지 않게 중요시하지 않는 논의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김상조가 경제민주화의 두 주제로 재벌개혁과 양극화를 꼽으면서 재벌개혁의 이유로 이러한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낙수효과 실종만을 들고, 다시 그 실종의 원인을 재벌의 권력 남용과 불공정 거래에서만 찾는 것은 실망스럽다.

게다가 양극화에 대한 그의 논의 더욱 아쉽다.
양극화 해소는 하도급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대다수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으로, 경제 민주화의 본령이 여기다. 이게 없으면 경제 민주화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냉소만 팽배한다. 문제는 이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기업·노동·복지 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고, 일회성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문단은 무슨 얘기인지도 불확실하지만, 설사 그의 뜻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해도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앞에서처럼 재벌개혁에 대한 논리도 흡족하지 않지만, 그 논의가 양극화 해소로 넘어가면 더욱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양극화를 대기업, 하도급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정규직이라는 차원에서만 보고 있다. 교육, 의료, 노령자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고, 세제에 대한 언급도 없다. 아무리 지면의 한계를 인정해도 한국경제를 갖고  "종횡무진"한 김상조가 이럴 정도면 양극화 해소는 그의 말대로 정말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 틀림 없다. 김상조가 자신이 이들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은 학자로서는 미덕일 지 모르나,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겠다고 나온 사람치고는 싱겁다고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김상조 개인에 대한 나의 불만이 아니다. 차라리 그가 말했듯이 양극화 문제가 간단치 않기만 하면 좋겠다. 그보다는 양극화 해소에 관한 학계의 논의나, 양당 후보가 내건 정책 모두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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