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선거 하루 전

선거를 하루 앞 둔 오늘이다. 내일 저녁이면 향후 5년간 한국을 이끌어갈 당선자가 결정되고, 한국 사회의 화두는 그가 제시하는 어젠다에 의해 끌려갈 것이다. 그 당선자가 결정되기 전에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12월 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슈들이 너무 많다보니 도리어 그중 무엇을 골라 글을 쓸지 혼란스러웠다. <전환시대> 블로그에서는 되도록 경제와 금융에 관한 얘기만을 하려고 하지만 선거의 열기가 뜨거워진 마당에 객관적 정책 비평만 하는 것은 좀 한가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양 후보가 내놓은 정책안에는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도 많다. 누가 당선이 되든간에 공약 중 적어도 반은 아예 실행으로 옮길 꿈도 안 꾸었으면 한다. 또, 지금까지 한국 선거의 경험 상 두 후보 모두 당선 후 이들 공약을 실천에 옮길 것 같지도 않다. 이런 마당에 각 후보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선거 철이다. 선거란 후보 중 한 사람을 뽑는 것이다. 정책 분석을 아무리 해보았자 결국은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곤혹스러웠다.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없으면서 혼자만 거룩한 안철수, 아무리 봐도 정치적 리더쉽이 안보이는 무뚝남 문재인, 잔뜩 웅크린 독기만 보이는 박근혜.

하긴 언제는 매력적인 후보가 있었나 싶다. 지금까지 내가 매력을 느꼈던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87년 그 짧은 희망과 체념 사이에서도, 96년 귀국 후 처음으로 투표를 하면서도. 엘리트 의식 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이회창,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고도 말 바꾸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김대중,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기 도취가 같이 섞여 불안한 노무현, 거론할 가치도 없는 정동영, 기탄없는 기회주의만 보이는 이명박. (그런데 이명박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누가 그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껏 나에게 대통령 선거는 후보 중 누구를 선택을 해야 하는 고민보다, 참가와 기권 사이에서 갈등이 더 힘든 5년 주기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참가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뽑은 후보가 당선이 안되어도 나름 뿌듯할 것 같다.

이번에 내가 기권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투표할 후보가 있기 때문이다. 음, 말하고보니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미안하다. 어쨋든, 국민들이 후보자를 알기 어렵게 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지금의 선거법 체제 아래에서 내가 투표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은 세번에 걸친 토론을 통해서다. 사실 나는 이 토론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처음 토론은 지루하고 답답해서 중간에 채널을 돌렸고, 둘째 토론은 저녁 약속이 있어 아예 못봤고, 세번째 토론은 아내가 한 후보 얼굴은 아예 보기도 싫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채널을 돌렸다. 그러나 토론 전문은 모두 읽었고 발췌한 비데오 영상도 찾아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선거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결국 후보의 인격과 능력이다. 문재인의 능력은 모르겠지만 인격에는 안도감이 든다. 박근혜는 인격도 능력도 불안하다.

문재인은 토론을 거치면서 취약했던 자기 존재감을 나름 극복했다. 처음에는 무표정하고 과묵한 그의 스타일 때문에 자기 색깔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진지하고 성실한 그의 면모가 부각되었다. 노무현의 분신이라고 하지만 노무현의 분노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 되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노무현처럼 당선되고 우쭐거릴 사람이 아니다.


박근혜는 토론회를 거듭하면서 그의 무능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그저 토론 능력 부족으로 보였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15년간 국회에서 정치를 했다는 사람으로서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에 비해 정치적 계산에 의해 준비해온 발언은 그 독기가 무서울 정도다. 난데 없이 전교조를 들고 나왔다. 박정희의 딸로서 표를 동원하는 능력에만 너무 의존해온 삶이 아니었나 싶다.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문재인을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문재인이 정치 안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과묵한 사람이 어떻게 청와대에서 일을 했는지 신기했고, 그 생활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나서기 싫어하고, 허튼 웃음 하나 없고, 지나칠 정도로 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과거 한국 정치에 대한 나의 다른 예측처럼 이번에도 내 예측은 어긋났다. 문재인이 출마한 것이다. 그 예측이 틀려서 다행이다. 당선이 안되어도 좋다. 한국 사회에서 마음 놓이는 대선 후보 하나 만나기가 쉬웠나?

그런데 그의 정치적 지도력에 대해 의심을 하면서도, 그의 정책 중 상당부분을 반대하면서도, 그 정치인의 인격만을 보고 투표를 하러가는 나도 정상은 아니다.

내 마음, 그 동안 갈 곳을 잃었었지만 내일 하루만은 갈 곳을 찾았다. 고맙다, 문재인.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김종인의 꿈, 헛수고만은 아니었다

지난 주 금요일 박근혜가 자신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언론은 지난 주 내내 주로 박근혜와 김종인이 이끄는 행복추진위가 제안한 방안 사이의 차이에 집중해서 보도했다. 대규모기업집단법,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주요 경영진의 급여보상내역 공시, 재벌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등이 빠졌단다. 금요일 이후 보수진영 신문들은 대체로 박근혜가 행추위안 중 일부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제시한 것을 보도하는 데에만 머무르고 논평은 삼가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외부필진인 윤평중이 비판한 게 고작이다. (언론들은 김종인 안이라고 하고 있으나 김종인 개인이 낸 의견이 아니라는 점에서 행추위안이라고 하겠다.)

예외가 있다면 조선일보에 비해 약간 더 친재벌 성향인 중앙일보가 실은 컬럼과 어제 사설 정도다. 컬럼 필자인 서경호 기자는 김상조와 이헌재를 끌어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박근혜 안을 은근히 밀었고, 어제 사설은 제목, "경제민주화 공약, 현실성으로 판단해야,"에서 보듯이 문재인과 안철수 진영의 개벌개혁안보다 박근혜안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나 경향신문등 진보진영 신문은 알맹이가 빠졌다고 비판을 했다. (한겨레는 여기여기, 경향은 여기) 이들은 행추위안에서 핵심이 기업집단법 제정, 순환출자 기업의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 국민참여재판 도입, 경영진 급여보상내역 공시라고 하면서 이것들이 빠졌기 때문에 핵심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한겨레가 정리한 양자간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이런 진보 진영 언론의 주장은 편파적이다.  박근혜가 받아들인 것만 해도 기존의 재벌규제 방식에 비해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또 박근혜가 행추위안 중에서 수용을 거부한 것들 중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이 있었다. 또 행추위안에는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시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집단법 제정이나 국민참여재판은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더 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박근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하니 편파적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식이라면 문제인과 안철수는 애초부터 알맹이가 없는 것을 내놓았으니까.

행추위안이 처음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상당히 전향적이고 파격적인 내용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가장 놀란 것은 대기업집단법 제정이었다. 기업집단이 실체적으로 있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개별 법인 회사만을 인정하는 한국의 회사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나서 부도를 낸 LIG건설이다. 기업어음을 발행할 때는 마치 그룹에서 지원할 것처럼 하면서 빚 보증을 위해 담보로 제공했던 총수 가족들 지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끝내자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대주주라고 하지만 회사법상 주식회사의 주주는 유한책임만을 지고 최악의 경우 자기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만 손해 보면 그만이라는 계산이었다. 비록 1년 반이 지나서야 검찰이 기소를 하긴 했지만 법정에서 회사법을 들고나오면 무슨 판결이 날지 두고 봐야 한다. 과거 2003년 LG카드 부도사태 때에도 LG 그룹은 자기 지분 이상 책임 질 수 없다고 버텼다. 회사법 상 강제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법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회사법은 물론 상법, 도산법, 경쟁법, 세법, 금융관련법, 노동관련법 등 관련된 법이 한두개가 아니다. 또 어떤 방식으로 고쳐야 할 것인지, 어떤 부작용과 헛점을 챙겨야 할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독일은 자신의 역사상 재벌의 원조에 해당하는 콘체른이 발달했던 나라여서 콘체른법이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이 횡행하는 유럽에서도 독일의 콘체른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나라는 없고, 각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통해 지배회사가 종속회사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재벌규제를 기업집단법을 통해 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 김상조가 이 아이디어를 제기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회사법이 개별 기업 위주의 영미법에 기초하고 있고 재벌 관련 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효과적인 재벌규제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업집단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안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잘못하면 재벌 총수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폐단만 불거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재벌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기업집단법 제정은 장기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작년 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위도 마찬가지였다. 김상조가 안식년 기간을 빌어 준비한 유럽의 기업집단법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이 이번 여름이었는데 그 전까지 유럽의 기업집단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김종인과 박근혜 간의 이견 대립을 보도하는데만 열중했고 막상 행추위 안을 자세히 분석한 기사는 안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서 행추위안을 얻어 읽어 보았다. 행추위안은 대규모기업집단법(가칭)은 재벌집단에 대한 규제를 현재와 같이 공정거래법의 일부로(제3장,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 해놓은 것을 따로 분리하고, 재벌 총수가 계열회사의 이사로 등재하지 않은 채 통제를 하는 것을 막고 대기업집단을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규정하고 그 구조와 행태를 규율하자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익편취행위,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 다중대표소송 등이 모두 그 안에 들어간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일부를 떼어서 일종의 재벌 관련 특별법을 하나 만들자는 안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른 법과 충돌 없이 성립할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 공정거래법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있어서 이러한 안을 냈을 수는 있지만, 관련된 여러 법들과의 조율 문제는 대선캠프의 학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기업집단법 제정에 반대하고 대신 이 중 상당수를 기존의 법 체계 안에서 추진하겠다고 한 박근혜의 결정은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만 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면이 있다.

또, 대기업집단법 안에서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소유는 인정하되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도 그 말만으로는 뜻이 불명확했다. 순환출자 고리에 들어가 있는 모든 의결권을 금지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배회사와 피지배회사를 구분해서 피지배회사가 갖고 있는 지배회사 지분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만약 전자라면 이건 대단한 얘기지만 후자라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물어본 김상조는 아마 후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 "제한"이라는 표현도 모호했다. 의결권 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만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그런데도 언론 중에서 이 의결권 제한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잠재적 위력에 주목한 보도는 없었다. 아마 자기들도 잘 몰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순환출자가 재벌 유지의 핵심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별로 심하지 않았다. 순환출자 없이도 한국의 재벌은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었다. 순환출자 구조가 두드러지게 된 것은 외환위기 후 정부가 일률적으로 재벌들에게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주식시장을 개방해서 외국자본 지분율에 대한 제약을 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비율을 단기간에 줄이려면 대규모 증자를 하거나 계열사를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를 틈타 미국이 IMF를 앞세워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했다는 비난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것으로 꼽을만한 정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최근 미국정부가 GM에 출자한 것 처럼 그 당시 한국정부가 정부자금으로 출자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마도 IMF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대신 정부는 재벌들 사이의 순환출자를 통한 증자를 허용했다. 즉 지금의 순환출자는 상당부분이 외환위기 시 김대중 정부가 장려한 방책의 결과다.

사실 재벌 유지의 핵심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 편취다. 또 이 사익편취 중 상당부분은 경영권 상속을 위한 것이다. 일가족이 여기 저기 조금씩 뜯어먹는 재미에 빠져있는 재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지는 않는다. 또 투명성이 높아지고 법치만 제대로 작동되어도 상당부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만 잘 막아도 큰 문제는 해결된다.

또 순환출자를 불식하려면 대안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순환출자 고리 중 가장 부담이 적은 고리를 끊어서 다단계 출자구조로 가는 것이다. 또는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실익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현재의 지주회사제도는 사실 재벌총수 입장에서 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분 정리하는 중에 양도세 세금 문제만 있을 뿐이다. 물론 순환출자을 금지하면 한국의 기업들이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가깝다.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모호한 풍문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에 가깝다. 순환출자 고리 중 한 기업이 갖고 있는 지분을 다른 계열사에게 팔면서 순환출자구조를 피하는 것은 해당 재벌들의 전체 규모에 비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면 순환출자 금지나 의결권 제한으로 얻는 국민경제적 실익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는다. 민주당은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만약 이를 시행하겠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또, 중요 경제범죄에 대해 피고인의 의사에 관계 없이 배심원 재판을 할 수 있도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판사를 믿지 못해서 양형기준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넘어 아예 판사의 재량권을 없애겠다는 것이어서 약간 우악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은 분명 과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배심원 판결이 대부분인 영미권 재판도 인민재판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모든 분야에서 국민참여재판이 확대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아직 시험단계인 제도를 특정 분야에만 전면 도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확신하기 어렵다.   

주요 경영진의 급여보상내역을 개인별로 공시하겠다는 것을 뺀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것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에 옮긴지 꽤 된 제도로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비용은 적고 효과는 확실한 훌륭한 제도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운운 하는 것은 그야말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부당행위 반복시 내부거래 금지, 해당회사 지분조정명령을 도입하는 것이 빠진 것도 불만스럽다. 불법행위를 반복해도 공정위가 솜방망이 벌금만 때리는 것이 그동안 한국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뺀 것만으로도 박근혜의 재벌개혁 의지를 의심하만 하다.

하나 더 불만을 얘기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는 했지만 그 실속은 의심스럽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등으로부터 불공정행위에 대한 고발 요청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고발조치를 하도록 해 다른 기관들에 사실상 고발권을 부여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국 로비 대상만 늘렸을 뿐 공정거래 고발권을 관원이 독식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핵심은 다른 정부기관의 고발 요청 없이도 검찰이 인지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빠졌다.

정작 알맹이가 빠진 것은 노동부분 공약이다. 행추위안과 박근혜 안 공약 모두 실제적인 내용이 없다.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 권익 보호 역시 모호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행추위안 자체에 복수 노동조합에 대한 개별 협상권을 주겠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복수노조를 만들어보았자 독자적인 단협을 할 수 없다면 그 효과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것은 대기업노조 눈치를 보는 민주당에서는 하지 못하는 얘기인만큼 만약 여당 후보가 이를 제시했다면 획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전혀 거론도 안된 채 지나갔고 이를 지적하는 언론도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받아들인 경제민주화 방안이 전혀 알맹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추위안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의 단계적 도입 등을 채택했다. 또, 금산분리 강화와 관련해선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의결권 한도를 10%로 설정한 뒤 5년간 1% 포인트씩 내려 5%로 인하) 또,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 축소하고, 금융계열사가 일정 요건 이상일 때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도 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이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준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공약으로 약속했다. 어쨋든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가 있을 경우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횡령 등에 대해선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정도면 여당 입장에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만약 박근혜가 당선되고 자기가 공약으로 제시한 방안들을 집권기간 중 실행에 옮긴다면 그것만으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보다 더 많은 개혁을 실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솔직히 대선 공약을 선거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한국의 정치 풍토 상 그가 이것들을 실행에 옮길 지 믿기 어렵기는 하다. 다른 분야에서 그가 내놓는 공약 중에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헛공약성 발언이 많은 것을 보면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당 후보가 이런 안을 약속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중 일부라도 대선 전에 법안으로 통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말자. 일단 말을 꺼냈으니 만약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야당 안 중 일부나마 따라가지 않기가 부담스럽다. 적어도 3년 후 국회선거에서 여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박근혜가 당선 된다면 적어도 일부나마 시행에 옮길 것이다.

사대부는 황제의 스승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황제는 사대부를 그저 신민 중 하나로 본다. 중국문명권에서 학자들이 갖는 숙명적인 갈등이고 모순이다. 중국 역사가 그랬고, 조선 역사가 그랬다. 김종인의 꿈은 비록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은 아니다.

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졸속은 나의 것: 대선 캠프 학자들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지난 화요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금융 소비자 보호 시각에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사회자는 김상조, 발표자는 명지대 원승연과 동국대 강경훈이었는데, 원승연은 며칠 전 안철수 캠프에서 발표한 금융개혁안 중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준비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원승연의 발표에 쏠렸다. 원승연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같이 담당하고 있는 지금의 금융위원회를 분리해서 금융정책은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정책은 건전성 감독기구와 금융 소비자보호 기구로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금융감독을 둘로 나누는 것을 낙타의 혹에 비유해서 쌍봉체계라고 부른다.

이 정도 얘기했는데도 아직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읽고 있나? 훌륭하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더 지루해진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금융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미국이 저렇게 된 것과 전 세계가 아직도 불황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것도 이 문제를 소홀히 해서 생긴 문제니까.

쌍봉체계에서는 금융체제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별개의 정책 목적을 각각 다른 조직에게 맡겨서 달성하려는 체제다. 금융체제 안정은 건전성 감독기구가 담당하고, 소비자 보호는 행위규제 전담기구가 담당하게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쌍봉체계가 나름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선 정국에 공약으로 나온 것은 걱정스럽다. 이렇게 공약으로 등장하면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경우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자고 할 공산이 높다. 나는 이렇게 정부조직을 급격히 바꾸는 것, 그것도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급히 바꾸는 것에 대해서 저항을 느낀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는데, 대신 좀더 시간을 두고 더 많은 논의를 거쳐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이런 식의 어정쩡한 얘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밍밍한 의견을 개진한 이유는 기업 부문에서 많은 개혁을 시도해 본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어서다. 간단히 말해, 작전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짜야 한다. 또 기초 동작을 배우는 것 (프로세스 설계를 하는 것)이 셋트 플레이를 그리는 것(조직도 그리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같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기업에서도 이 간단한 원리를 놓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어설픈 컨설턴트들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논리적으로 멋있는 전략 짜는데 몰두한다. 업무 프로세스를 어떻게 수정할 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조직 개편을 제안한다. 쌍봉체계 도입도 그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를 내년부터 실시하자는 것은 조직원들의 실력은 무시하고 프로세스 설계도 생략한 채 우선 조직도 박스 부터 그리자는 것으로 들린다.

쌍봉체계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실시한 방식인데 1997년 왈리스 보고서(Wallis Report)에서 쌍봉체계를 제안했고, 이것이 시행에 옮겨진 것은 2년 후인 1998년이었다. 영국 역시 90년대 당시 이미 쌍봉체계의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구조를 쌍봉으로는 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1997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하자 그해 10월 8개로 흩어져 있던 감독기구를 통합한 조직(FSA: Financial Services Authority)을 출범시켰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시너지를 감안해 FSA 안에서 통합 운영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FSA가 개별 금융기관의 미시 건전성에만 치우치고 거시 건전성에는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늘었다. 그래서 2010년 봄, 쌍봉체계 계획이 발표되었고, 2년 후 2012년 5월부터 쌍봉체계를 운영 중이다. 거시 건전성 감독 소홀이 문제였지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전문성이 다르다는 것을 들어 개편하는 김에 분리한 것이다. 미국은 쌍봉체계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쌍봉체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이들 나라와 약간  다르다. 한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금융을 국가에 의한 자원 배분 기능과 경기 부양 수단으로서의 기능에만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건전성 감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정작 경기부양과 건전성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경기부양이 우선시되었다. 게다가 금융소비자 보호는 아예 건전성 감독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아서, 양자간 충돌이 생기면 항상 건전성 감독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원승연은 금융정책 기능을 떼어서 기재부로 넘기고, 금융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도 분리하자는 것이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분리하자는 것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한걸음 더나가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가장 큰 우려는 과연 이렇게 감독기관을 분리했을 때 서로간에 원활히 조정이 가능하겠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명박정권 인수위원회에서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경부의 금융정책실을 합쳤던 것도 재경부와 금감위원회 사이의 정책 조정 실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통합시키면 무슨 문제가 있을지, 그리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과의 업무 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졸속이었다.

그러면 김대중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 역시 졸속이었다. 아니, 졸속의 극치였다. IMF의 압력으로 1998년 영국의 FSA를 베껴 급하게 만들었다. 1998년 금감위가 출범할 때 금감위는 형식적으로는 회사의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위원회 안건을 의결하는 기구였다. 일반적인 행정조직과 달리 합의제 행정위원회 조직으로 만들어 위원장 외에 여러 위원을 두어 독립성과 전문성을 도모했다. 또 금감위 사무국이라는 소규모 조직을 만들어 금감위원회 회의체 운영을 보조하도록 했다. 실질적인 금융감독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하고 양자간 조정은 금감위원회 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해서 조정하도록 했다.

이 체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출발하자마자 드러났다. 말만 위원회였을 뿐 위원회의 상임위원 자리는 모두 재경부 관료들이 차지했다. 각 정권 초기 1년간만 부위원장으로 외부인사 출신인 윤원배, 이동걸, 이창용이 각각 재직했을 뿐이다. 조그맣게 출발한 사무국은 곧 비대화하기 시작했다. 시장과 산업 관련 법규는 재경부에서 만들고 금융감독정책 의결은 금감위원회에서 실시하고, 집행은 금감원이 한다는 것은 혼란만 일으킬 뿐이었다. 기껏 정부 부서를 분리했지만 재경부 공무원과 금감위 공무원은 인사 철마다 양 부서를 오갔다. 몇달 전까지 금융정책을 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감독정책을 맡고, 감독정책을 맡던 사람이 금융정책을 맡을 것이면 무엇하러 부서를 분리했단 말인가? 일을 하던 공무원들도 불평이 많았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는 협조가 잘 되었는데 부처가 다르다보니 서로 협조가 안되어서 비효율성이 막심하다고 했다. 5년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 부서가 통합된 이유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세스를 개선하지 못하니까 조직 박스를 합친 것이다.

만약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다시 분리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정책 조정 실패를 이번에는 어떻게 극복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준비 안 한채, 거기에 덧붙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도 분리하자고 하면 장차 그것이 초래할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분리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선거 공약으로 내놓다니? 아니 이게 왜 선거 공약이어야 하나? 국민들 중 누가 이것에 관심이 있고, 누가 이해한다는 말인가?

하나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월요일 토론회에 1998년 당시 이런 졸속안을 주도한 서강대 명예교수 김병주가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 토론 기회를 빌려, 개혁은 천천히 깔끔하게 하는 방식(Slow and Clean)과 빠르지만 엉성하게 하는 방식(Quick and Dirty)이 있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후자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감안한 얘기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다. 저항이 있다는 것이 꼭 급격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각에 그는 자신의 과오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금융감독체계 설계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다. 금융 건전성 감독과 금융 소비자 보호 업무를 해보지도 않았고, 대규모 조직 혁신을 이끌어 본 적도 없는 학자들이 하는 말에 의거해 몇달 만에 금융감독체계 조직도를 다시 그린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몇천명 밖에 안되는 회사에서도 변혁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초기에는 윗사람 말대로 바뀌는 것 같지만, 얼마 안가 다시 보면 제자리로 돌아가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물며 회사도 그런데, 공공기관 변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까?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의 혼선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나라인데?

지금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분리하는 대신 다시 원래대로 분리할 때 과거에 겪었던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의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법으로 금감원은 금융위원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금감원장 권혁세가 김석동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로 지난 주 일요일 김석동이 금융위와 금감원 부원장들을 소집해서 하우스푸어 정책 관련 혼선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는 학자들이 정부 조직안 갖고 얘기할 때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중국 나라 시대 왕안석이 신법이라고 들고 나왔었다. 이중톈의 <제국의 슬픔>에 의하면 왕안석의 정책안은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기대한 효과를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관원대리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놔둔 채였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기존 체계의 얽힌 문제점을 놔둔채 한두가지 묘수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가뜩이나 선거 공약에 묘수를 끼워넣는 것은 더욱 삼가야 한다.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불필요한 압력을 후보가 만들 뿐이다. 정책을 담당할 사람은 책임을 지지 못할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15년에 걸친 졸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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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담당할 부서를 분리하는 안을 반대하는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었으나 이는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어서 수정했다. 왕안석은 당나라 시대 사람이 아니라 송나라 시대 사람이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세금 논의가 실종된 정치권과 언론을 보면서

항상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정치에는 세금에 관한 논쟁이 없다. 세금이 선거에서 관심사였던 유일한 경우는 5년전 대통령 선거 때였다. 한국 정치에서 세금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나는 이것이 한국 민주정치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보니 그것은 나만의 착각인 것 같다.

사실 그때 선거도 조금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명박이 뜬금 없이 감세를 들고 나왔지만 그것 때문에 이명박을 뽑은 사람은 별로 없다. 이에 비해 징수 금액으로는 훨씬 규모가 적은 종부세 폐지는 도리어 더 관심을 받았다. 종부세 때문에 부동산 값이 내려갈까봐 속으로 걱정하는 계층의 이해를 반영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에 반기를 들고 추가적 감세를 막은 것 역시 한나라당이었다. 이제는 새누리당에서 개인소득세율 최고 구간을 3억원 이상에서 2억원 이상으로 낮추자고 한단다. 이렇게 정당이 3년 만에 세금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은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세금 관련 정책이 정치 진영을 가르는데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국민이 그만큼 자기 삶과 세금 사이의 관계에 대해 둔감하다는 말도 된다.

이번 선거 역시 과거 전철을 밟고 있다. 선거일이 50일 후로 다가왔는데도 세금 정책에 관한 논의는 실종상태다. 대신 모두들 복지 증대를 외친다. 국민이 국가와 갖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금이다. 정치나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자기를 상대방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도 세금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금에 관해서는 모두들 딴 청을 피우고 있는 것은 거의 미스터리 수준이다. 솔직히 국민들이 세 후보 사이에 복지 정책 공약이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복지 증대를 주장하는 것이 대통령 후보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진보계열 신문은 물론이고, 보수적 신문들도 이제는 한국 사회에 복지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어제 조선일보 사설을 보자.

올해 한국의 복지 예산은 GDP의 9.5%로 OECD 평균(19.5%)의 절반 수준이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된 복지 욕구를 충족하려면 복지 예산을 계속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전 국민에게 소득과 관계없이 일정 한도의 복지 혜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급한 건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다.
사실 이 사설의 의도는 그냥 복지 증대를 주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 이전에 급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 부터 내놓으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박근혜의 복지정책을 지지한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보편 복지 공약을 완성하기까지 이행 기간 동안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그 고통에서 구해줄 것인지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국민도 복지 상품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화려한 복지 진열장 차리는 데만 정신이 팔린 후보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치밀한 복지 청사진을 내놓는 후보가 누군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복지 증대 자체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목소리는 요새 와서 듣기 힘들다.

정작 더 흥미로운 것은 세금에 대해 말이 없는 것이 정치인만이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보수 언론이 증세에 대해 떨떠름한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증세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기 보다는 이명박의 감세 정책에 대해 찬동했던 과거 전력이 있어서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가 거북할 것이다. 그저 정치인들이 복지만 외치고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는 비판 정도다.

한겨레신문도 증세가 필요하다는 외부 필자의 컬럼은 실으면서도 막상 자기들 사설을 통해 증세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증세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어벙벙한 사설 정도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허구헌날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진보 진영 언론이 막상 증세방안에 대해서 딴청을 피우는 것은 약간 희극적이다.

평소 한국의 언론은 의견 과잉이다. 객관적인 보도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일방적 기사를 쓰는 데 익숙하다. 그런 한국의 언론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진영 논리 상 자기들이 증세안을 구체적으로 들고 나와서 자기 진영 후보를 압박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아니면 자기들도 잘 모르기 때문인가? 정치인과 유명 지식인의 말을 나르는 것으로 지면을 채우다 보니 막상 자신들도 생각을 안해보았나? 하긴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부동산 값 오른다고 노무현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정책안을 내놓은 언론은 없었다.

이렇게 정치권이나 언론 모두 정작 제일 중요한 세금 문제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 시늉을 하는 것을 보면 온갖가지 서구의 개념을 수입해서 정치와 경제를 개혁하자는 지식인들의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실감하게 된다. 서양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우리가 서양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입해와서 겉을 싸발랐지만 한국 사회의 내면은 여전히 전통사회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 전통사회에서 세금이란 나랏님이 일방적으로 정해서 징수하는 것이었다. 그 나랏님을 선거로 뽑는 정도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다.

정책 선거? 아직 한국에서는 먼 얘기다.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옹색한 법치주의: 양형기준 강화

양형기준 강화
현재로 봐서는 양형기준을 강화해서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가 집행유예로 나오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이 여야 사이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어서 실현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나 역시 지배구조 개혁 보다 우선 총수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처벌 강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창피하고 옹색한 얘기다. 판사가 재벌에게 법 집행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얘기다. 사법체계의 부패를 인정하고 이를 우회할 방안으로 아예 판사의 재량권을 묶자는 말이니까.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개혁조치나마 지금의 한국사회가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다. 사실, 횡령배임 처벌이나 사면 제한은 경제민주화라기보다 법치주의 확립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체제는 정치, 경제, 행정 분야보다 더 낙후된 분야다. 가장 낙후된 부문을 이용해 가장 발달된 부문인 경제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내가 형법 강화를 통한 경제민주화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내심 자신이 없는 이유다.  

법치 대 율치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말로만 법치이지 실제로는 중국 전제국가의 율치에 가깝다. 사회 지배층은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처럼 운영되어 왔다. 유전무죄라는 표현이 널리 받아들여지듯이 화이트 컬러 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다. 재벌 총수만이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도 대부분 사면을 받았다. 이에 비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는 기업가 뿐만이 아니라 정치권 인사도 법 적용을 엄격히 한다. 예를 들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공석이 된 상원의원직을 돈을 받고 팔려다가 잡힌 전 일리노이 주지사 블라고예비치는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사법부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의 양형체제 아래에서도 재벌총수들이나 정치권 인사들도 집행유예로 손쉽게 풀려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조선의 국가체제: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의 사회제체가 과거 조선시대의 전제체제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이중톈(易中天)은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진시황 이후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체제를 유지시켰던 3대 요소로 중앙집권체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를 들었다. 진시황은 춘주 전국시대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6세기 수문제부터 윤리치국을 담당할 관리를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해 국정을 맡겼다. 

한국에서 중앙집권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국보다 1,200년이 지난 10세기, 고려 태조의 넷째 아들인 광종 시대다. 그는 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956년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세력기반인 노비를 양민화시키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다. 한국이 중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한나라 시대부터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에 비해 한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교가 국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체제가 뒤늦게 도입되었기는 하나 14세기 이후 두 나라는 모두 중앙집권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에 기반을 둔 전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 체제가 무너진 연대도 매우 비슷해서 중국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한국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에 없어졌다. 이러한 전제정치체제는 중국은 2천년, 한국은 보기에 따라 천년, 또는 5백년간 유지되었다.

이 세가지 요소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윤리치국이다. 윤리치국 대신 중국은 군벌시대를 거쳐 공산주의로, 한국은 식민시대를 거쳐 헌정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북한은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사실상 세습 전제체제다. 중국 역시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실제로는 세습 대신 선양을 하는 집단 전제체제다. 남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고 민주공화정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승만 독재로 넘어갔다. 4. 19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잠깐이었을 뿐 곧 군사독재체제로 넘어갔다. 박정희가 충, 효를 내세운 것도 한국의 윤리치국 전통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혁명을 거친 후 부터다.  

중앙집권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중앙집권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도, 군, 면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행정구역체제다. 예를 들어, 유럽권의 주소는 나라, 시, 거리 이름으로 끝나지만 한국은 도, 시(군), 면 리(동)을 모두 적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 유명무실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세금제도여서 국세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2010년 전까지는 주민세로 불리던 것인데, 국세인 법인세나 소득세에 10%를 할증해서 부과한다. 국세가 몸통이고 지방세는 꼬리다. 이에 비해 서구 국가에서는 지방소득세가 국세와 동격이거나 아예 지방세액이 일정액 이상일 경우에만 중앙정부가 국세로 소득세를 추가로 받아간다.

관원대리 체제 역시 역시 여전히 강고히 남아있다. 아시아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외에도 베트남과 일본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도 헤이안 시대(794-1185)에 과거제도를 실시했지만 하급귀족이 중급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하는데에만 쓰여졌고 그 위 상급귀족층에 의한 지배체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체제와 무사계급이 들어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에서 과거제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고등문관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48년 고등문관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대신 1종 공무원시험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일본의 1종, 2종, 3종 공무원 시험은 한국의 5급,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는 1940년대 외무고시를 추가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제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이 사법부문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독점체제가 바뀐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판검사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도 원래는 검사나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확대되면서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1996년 5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급증했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재자의 충실한 견복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 나라였다면 횡령배임 처벌 강화나 사면 제한 같은 소리가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둥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재벌문제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바꿔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옹색한 얘기다. 중국 전제정치에서 유래한 관원대리 체계가 가장 강고히 남아 있는 곳이 사법부다. 관원대리체계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패한 사법체제가 과연 양형기준 만으로 재벌총수의 불법을 제대로 응징할 지 솔직히 자신하기 어렵다.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세 대선후보 진영 정책 좌장 인터뷰 유감

어제 경향신문이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 경제민주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세 사람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자.

김종인의 인터뷰에서 우선 눈에 띄는 부분은 이것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공약으로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금지 등에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재벌 개혁’이나 ‘재벌 해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그는 “외부의 힘으로 재벌을 개혁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하던 얘기다. 재벌을 규제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배구조나 출자구조를 손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가 없다. 순환출자도 신규 출자만 금지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경제현실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은 책임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도 하면서 우리 경제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같이 가는 그런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 데서 (박근혜 후보는) 차별성을 찾으려고 한다. 박 후보가 기분대로 ‘재벌 해체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사실 재벌 개혁 하겠다는 것도 헛소리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다.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가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재벌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들이 적응할 것 아닌가.”

김종인은 지금 진보 학자들이 내놓는 재벌 개혁 방안이 너무 이상론에만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각 야당 진영의 경제민주화 방안은 너무 논리적으로 완결된 얘기를 만드는데 빠져서 과연 그것이 현실에서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실행할 수 있는지, 또 실행에 옮겨지려면 추가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표류하는 경제민주화 논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보아 세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첫째는 그것이 지나치게 재벌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도 너무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 두번째 문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득양극화 문제 개선인데 막상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방치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저부담 저복지 체제 및 기형적인 조세체계를 합치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 내놓은 정책방안은 어설프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번째 문제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소수 전문가 사이의 담론 경쟁이 되어 버렸다. 말로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면서 막상 국민의 참여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출총제, 금산분리, 순환출자 등 전문용어는 날아다니는데 국민들은 이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인지 어리둥절하다. 
 
내가 보기에 상황이 이렇게 되버린 데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엘리트 지배구조 탓도 있지만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좁은 시각과 지적 편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박근혜 측에서 대기업과 재벌문제를 공정거래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야당과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은 재벌개혁이 없는 경제민주화는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정거래 개혁과 재벌 지배구조 개혁만 해서도 안된다. 설사 지금 양 진영에서 나온 안들의 대부분이 법안으로 통과된다고 해도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별이 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 설사 양극화 해소에 조금 기별이 와도 그것만으로는 국민들이 자기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횡령을 저지르는 재벌총수를 감옥에 넣고, 단가를 부당하게 후려치거나 일거리를 몰아주지 못하게 해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이런 점을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김기원, 김진방, 김상조 등도 모두 경제민주화를 크게 보아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인식하고 있다. 장하성, 이동걸, 유종일, 전성인 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내놓는 경제민주화 방안이 지나치게 재벌개혁 방안에만 경도되어 있고, 그것도 지나치게 이상론에 치우쳐져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만 얘기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길 것인가는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지배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계약법과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권 국가에서만 보이는 형태이고, 대부분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이라고 다를 수 없다. 또, 국회에서 소수당인 민주당과 무소속인 안철수가 자기들의 주장을 입법화 할 수단은 없다. 결국은 여당이 동의하는 만큼만 가능하다. 또, 출자총액 제한이나 순환출자를 금지 또는 해소하도록 강제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을 추진할 것인지, 또 그 다음은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순환출자의 고리 중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고리를 끊어서 다단계 출자 구조로 만들면 다됐다고 손 털 것인가? 과연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상속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할 경우 횡령과 배임으로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저절로 환골탈태할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막상 소득 양극화에 대해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과 한국 지식사회의 진영화가 겹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상조는 "기업·노동·복지 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그가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꺼리는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일게다. 김상조는 기업지배구조와 금융감독정책 전문가이지 거시경제정책이나 노동 복지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이는 김상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정우, 이동걸, 김진방 처럼 문재인 진영에 가있는 사람들이나, 장하성, 전성인 처럼 안철수 진영에 가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김기원처럼 독립적인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조세, 재정, 복지, 노동 정책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기가 잘 아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들의 지적 편향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한국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연구 수준이 그야말로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를 해야만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각자 자기의 전문 연구분야가 있지만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닌 경제정책에 대해 활발히 발언을 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다룬 미시경제학으로, 크루그만은 국제무역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둘 다 세계화, 소득 불평등, 시장만능주의, 긴축재정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각 분야에서 정리된 연구들이 쌓여있어서 그 지식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여건이 아직 안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소득 양극화에 관련된 연구 자체가 거의 보기 힘들다. 가장 크게는 통계가 없다. 양극화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 소득 양극화에 대한 기초 통계 조차 제대로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지니계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소리는 그것이 도시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거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지게 된다. 막상 돈 많은 사업가와 전문직은 빼고 계산했으니 말이다. 납세자 정보 보호라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던 국세청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내는 납세자 기준으로 상위 1%의 평균소득을 밝힌 것도 지난 9월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자료도 소득 공제를 뺀 숫자이니 총급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소득이 많을 수록 공제혜택도 많이 받는다. 또, 총 가구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국인의 자산배분 구조상 80%가 부동산이라는데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처럼 한국에서 불투명한 소득은 없다. 마지막으로 소득이 아니라 자산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런 납세소득 기준 통계도 처음이니 그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아예 알길이 없다.

통계가 없으면 경제학자는 전문가로서 기여를 하기가 어렵다. 분명히 소득 양극화는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기제에 의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일반 식자층 수준의 얘기 밖에 할 수가 없게 된다. 단지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 아니다. 일반 시민의 의식과 여론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일반적이고 모호한 불만으로만 남는다. 문제의 우선 순위를 잡기도 어려워서 정책화 하기도 어렵다. 온갖가지 연막술과 어거지 반론을 상대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업, 노동, 복지 관련 연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책연구소들이 중소기업 분야에 대한 연구를 안한 것도 아니고,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대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 실업보험에 사각지대가 많고, 보험금이 쥐꼬리만하다는 문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정책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거의 모두 기존의 정책환경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계층이 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정치적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굳이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자신의 정치자본을 쓰려는 대통령은 없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진영 양극화가 겹치면 문제는 더더욱 꼬이게 된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에 대한 꿈이 체현된 것이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40%의 박근혜 지지율이다. 이에 대한 반대세력은 호남세력과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운동권 출신 인사로 채워진 민주당과, 귀족노조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과거 운동권 시절 익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이 추진한 FTA에 대한 정신분열적 대응 태도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과 환멸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지만 준비가 덜 된 채 뛰어들어서 출마하자마자 단일화 논의에 함몰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처럼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증세를 얘기하는 것 자체를 겁내는 나라가 되었다. 각종 세금 감면을 줄인다고 하지만 바로 그게 증세다. 그러나 증세란 표현은 극구 피한다. 마치 세율 조정만이 증세인 양 한다. 보편적 증세를 언급했던 안철수도 이제와서는 말을 흐린다. 비록 발언 후 하루만에 후퇴를 했지만 정치권에서 부가세 증세를 처음 거론한 것이 여당의 김종인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뒤틀린 정치구도를 반영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진영에 참여한 학자들은 어느덧 학자가 아니라 정책기술자가 되어서 뭐 화끈한 것 없냐고 물어보러 다닌다.

도대체 GDP에서 조세부담율이 19%에 불과하고,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다시피 하고, 사회보장에 쓰는 예산이 GDP의 9% 밖에 안되는 나라가 무슨 수로 소득 양극화를 막겠다는 것인가?  자기 나라 국민의 교육을 사교육과 입시지옥에 몰면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주택 값이 지금처럼 높고 아이를 낳아보았자 제대로 기를 수 없는데 어떻게 출산률을 높일 수 있나? 한국의 정치인과 정책가들은 신이 내려준 비법이라도 갖고 있는가?

소위 시대 정신이라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렇게 다시 한번 일부 전문 지식인들이 자기의 지적 능력을 뽐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각 캠프에 갈려서 내는 방안이니 서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재벌개혁에 몰두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복지는 마치 경제민주화와 상관 없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성장 동력 찾기, 선거용 사업 거리 찾기, 중소기업 퍼주기 공약하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재산세도 낮고, 재산소득세도 낮고 부가가치세도 OECD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조세체계 개혁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세계에서 소득 대비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는 공교육 체계을 개혁하자는 논의도 들을 수가 없다. 성장률이 2%로 내려가고, 부동산 시장은 붕괴하는데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도 없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표류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더 나빠져야 좋아질 것 같다. 부동산 붕괴 후에야 희망이 있을까?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정규직 노동의 경직성 해소 방향

귀국한 후 직장에 다니면서 느낀 한국의 특이 현상 중 하나가 사오정이었다. 왜 회사가 기껏 기른 중간 간부 인력을 다른 나라 같으면 한참 일할 나이인 40대 중반에 조기 퇴직을 시키는 것일까? 이 의문은 회사를 몇 달 다녀보니 금방 풀렸다. 한국 기업의 보수체계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설명해보자.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아서: 시대착오적인 보수과 맹목적인 진보 사이에서 새길 찾기


안철수 진영에서 며칠 전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재벌개혁과 공정경쟁에 모두 방점이 가있다. 민주통합당 안과 대동소이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출자총액제가 빠졌고, 재벌개혁 위원회와 계열분리 명령이 들어갔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으므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장하성이나 전성인처럼 참여한 사람들 자체가 민주당과 평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안보다 조금 더 정직하다. (민주당이 출자총액제를 고집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 관성과 허세에 의한 것이다.) 안철수가 맥빠진 정치비전을 발표하면서 같이 내놓은 엉성한 중소기업 정책보다는 완성도가 높다는 것 정도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안철수진영은 경제정책 보다는 어떤 정치 개혁을 원하는지부터 얘기하는게 나을 것 같다.

러나 그런 정책으로 어떻게 국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과도 차별화가 안된다. 또 아무러나 국회는 앞으로 4년간 새누리당이 지배한다. 경제민주화 방안을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새누리당이 하지 않겠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 중 그 어느 것도 법으로 통과시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 진영이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의 틀이다. 정치적으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공유하지만 양 당은 아직 속내 생각이 다르다. 가장 큰 간극을 보일 것은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각이다. 야당은 개방과 시장을 불신한다. 노무현이 시작한 FTA를 부정한다. 여당은 경제문야에서 국가와 규제를 불신한다. 재벌개혁에 소극적이고,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적대적 공생관계이긴 하지만 정책분야에서는 학과 조개 처럼 서로 물고 버티고 있어 해결이 안난다.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통행세 장사 (II): 댓글을 보고.

어찌 알고 찾아와 읽는 사람이 늘은 것은 고맙지만 아직까지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이 블로그의 특성인 것 같다. 사실 블로그 댓글에 답을 다는 수고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유독 통행세에 대한 글에는 댓글이 여럿 올라왔다.  아마도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들은 글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이성규가 전하는 기업부실 처리 군상: 이번 주 꼭 읽을 컬럼

한국에서 부실기업 처리 분야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서근우와 이성규일 것이다. 이 두사람은 이헌재가 한신평 사장으로 있을 때 같이 일했던 인연으로 이헌재가 금감위원장 시절 부실기업 처리 업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요즈음 서근우는 금융연구원에 있지만 이성규는 여전히 부실채권 처리 일을 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부실채권 관리를 위해 공동으로 출자해서 설립한 연합자산관리의 사장을 맡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부실채권을 헐값에 팔아 넘겨 외국인 투자가 좋은 일만 시켜준 쓰라린 경험을 되살려 은행들이 만들었다. 들리는 말로는 잘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 이성규가 지난 여름부터 조선일보에 컬럼을 써왔는데, 지난 수요일에는 기업 갱생에 확실히 실패하는 방법을 썼다. 지난 주에 쓴 반복되는 금융위기: 부실을 부실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를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지난 주 이성규의 글만이 아니라 과거에 쓴  워크아웃이 왜 잘 작동하지 않을까부동산 PF는 어쩌다 망가졌을까를 꼭 같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조선일보 같은 일간지가 부실기업 처리 같이 전문적인 주제로 컬럼을 연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통행세 장사: 대기업에서 시골 마을까지 퍼진 독버섯

30여년 전 이맘때 여동생 및 친구와 함께 설악산에 갔었다. 서울을 떠나 인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백담사 입구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가난한 강원도 벽촌이었다. 유일하게 있던 마을 가게는 침침한 전구가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었고 바닥은 다져진 흙이었다. 가게이자 우체국이기도 해서 바깥 벽에는 주황색 공중전화가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민박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쌀쌀한 공기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어올라간 백담계곡의 가을 경치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그 백담계곡을 한참 올라가다보면 옆으로 백담사가 보인다. 그때는 단지 한용운이 머물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한적한 절이었다.

오늘 한겨레에 백담사 앞에 있는 그 마을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백담마을 주민출자 버스사업…급여 월 2백 넘어) 용대2리 마을부터 백담사까지 가는 7.2km 구간을 왕복 운영하는 마을버스기업에 관한 기사다. 1996년 출자금 7,500만원으로 시작한 기업이 작년 버스 10대, 매출 16억원, 직원 수 16명, 작년 마을발전기금 출연액이 4억원인 "알짜 공동체 기업"이 되었단다.

조금 이상했다. 뭐 대단한 사업이라고 그렇게 이익이 많이 날까? 읽다 보니 곧 의문이 풀렸다.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전환시대: 잃어버릴 10년

진중권이 몇년 전 말하기를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박이를 키고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자기들이 힘든 이유가 좌측 깜박이 때문인 줄로 착각한다고 했었다. 그 식으로 말하면, 이명박은 확실하게 우측 깜박이와 우회전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자기가 힘든 이유가 실제로는 우회전 때문인 줄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여당의 일부도 깨달은 것 같다. 이명박 정권 덕분에 그것을 깨닫는 시기가 앞당겨졌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한국에 남기고 가는 유일한 선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고속성장이 남기고 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워낙 강하다. 그 추억에 매달리는 지금의 한국 정치와 경제체제는 우리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짊어진 업보다. 한국은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25년간 독재정권에 의한 경제개발 기간을 거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개발 독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 전의 경제개발 모델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데 또 다른 25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지난 50년의 경제발전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출산율 저하와 사회 양극화다. 성장률이 지금보다 1~2% 더 올라본들 아이를 못 낳고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근래에 들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대두된 것도 그 25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게 된 이 깨달음 덕분이다.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한국은 그 동안 쌓인 부동산 버블과 세계적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인한 불황을 맞아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힘든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환의 시대가 왔다. 50년 간에 걸쳐 누적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다시 만들고 다시 세워야 한다. 당분간 우리는 고통과 눈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환이 이루어지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전환시대를 거쳐야 산다. 

일본 역시 방황하고 있다. 1991년 후 겪었던 장기 불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지만 실지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일본은 자기들의 경제성장모델이 더 이상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일본 모델을 모방하여 고속성장을 해온 한국 역시 90년대 이후 마찬가지 이유로 방황하고 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장기불황을 간략히 들여다 본 후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전망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면 이 블로그의 이름을 전환시대라고 한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반복되는 금융위기: 부실을 부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라

흔히 알려진대로 한국 언론의 전문성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특히 경제, 금융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체적으로 기사를 취재할 능력이 떨어지니 정부나 기업이 주는 보도자료를 약간만 수정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도산 문제는 금융와 법이 만나는 분야라서 기자들이 다루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서는 비교적 발빠르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9월 26일 법정관리 신청 당일 극동건설만이 아니라 극동건설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도 같이 신청을 한 것이 예상 밖이었고, 웅진홀딩스 지분 약 79%를 가진 윤석금이 신청 당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끈 것 같다. 아니, 회장님이라 불리던 사람이 지주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었어? 그러나 한국의 기업 부실과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사실 웅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부실 규모도 2조가 안된다.(수정: 웅진 도산으로 금융권이 입을 손실이 2조 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문제는 그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현행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고,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처리하는 워크아웃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보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기업이 훨씬 많다. 금호아시아나 등 수많은 기업이 워크아웃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 워크아웃 문제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2012년 10월 4일 목요일

허약한 정당 정치: 대기업 노조의 긴 그림자


민주당은 누구를 대표하나? 민주당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기반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당 내부로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힘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최장집)

많은 사람들이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책임정치, 정당정치, 정책정치의 실종을 든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제도적으로는 단임제 대통령제, 결선투표제 결핍 등을 들기도 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건너뛰는 정치인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정당정치의 실종 뒤에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도 큰 역할을 한다. 즉 대기업 노조의 탐욕은 양극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적 구도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단지 그 연결고리가 잘 안보일 뿐이다

위에서 인용한 최장집의 말은 민주통합당이 허약한 원인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대기업 살찌우는 중소기업 지원정책


I. 생태계적 시각에서 본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난번에는 경쟁에서 도태되어야 할 중소기업들이 살아남아서 중소기업 부문 전체의 역동성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를 얘기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일종의 묵계에 의해 중소기업 분야의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재임기간 중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고, 관료와 은행 역시 이에 편승해서 보신주의에 급급할 뿐이다. 관변 학자들은 관료가 불편해 할 이야기를 삼가고, 개혁 학자들은 자기 진영과 노조 눈치를 살핀다.

이런 불편한 문제를 덮으려다 보니 나오게 된 것이 온갖가지 중소기업 지원책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많고, 보조금 제도가 널려있는데도 한국의 중소기업 부문은 시들어만 간다. 이 정도 되면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볼만도 한데, 한국의 정책집단은 마냥 옛날 레코드를 음량만 늘려 틀어댄다. 그러니 성과가 날 리도 없다.

게다가 그런 정책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모두가 외면하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종횡무진 한국경제> 비틀어 읽기

지난 글에서는 김상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 원인을 주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서 찾는 것에 대해 내가 평시에 느끼던 불편함을 토로했다.

사실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보기 드물게 잘 쓴 책이다. 한국에는 학문적 훈련이나 깊이도 없는 사람들이 복잡할 수 밖에 없는 경제문제를 단순화해서 자기가 다 아는 척하는 글과 책이 난무한다. 경제학을 공부한 후 여러 나라의 경제정책 분석에 관련된 일을 했고, 귀국 후 제조업체과 금융업체에서 일을 하면서 현장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경험한 나로서도 가닥을 잡기가 어렵게 얽히고 설킨 것이 한국경제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것은 그렇다치고, 수십년을 한국경제에 대해 공부한 우수한 학자들도 벅차게 느낀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한국 경제체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다.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내가 실명 비평을 하는 이유

블로그를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그런데 글을 본 친구들이 하나 같이 걱정을 한다. 그렇게 남이 쓴 글을 갖고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남들이 다 보는 블로그에서 비평을 하면 그들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겠느냐고. 오늘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글에서 이름을 언급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여전히 혼란스러운 재벌개혁과 양극화 관계: 김영욱과 김상조 컬럼을 통해 본다

최근 며칠 사이에 경제민주화에 관해 상반되는 의견이 신문에 실렸다. 지난 금요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영욱의 컬럼과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 김상조의 컬럼이 그것이다.

김영욱은 경제민주화의 목적은 양극화 해소라고 전제한 후, 재벌은 양극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상조는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로 나누고,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된다고 주장했다. 어디에서 이들 시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들 각각의 주장에 대해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 주장이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내가 얘기해온 것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거니와, 각각의 주장이 갖는 문제점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양극화에 관련된 논쟁의 중요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인식들이 각각의 문제를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김상조의 주장이 갖는 문제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이제 각각의 주장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눈 뜨고 보고만 있는 부자 세습


한국의 양극화에는 뾰족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도 있지만 의지만 있으면 대책을 마련하기 쉬운 것도 있다.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 증여를 통한 부의 세습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증세를 주장하는 진보층도 별 관심이 없다.

연합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성년자 보유 주식이 지난 해 말 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정부 권한 남용

지난 이틀 간 몇 가지 눈에 띄는 경제 뉴스가 있었다. 정부가 소규모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고, 분양가 상한제를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번 경기 부양책에 대한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아마 정책 당국자라고 해서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추경예산을 짜야 한다는 여당의 요구에 밀려 뭔가 하는 흉내를 내야 하는 공무원들도 죽을 맛일 것이다. 발표를 맡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최상목의 에서 속 마음이 드러난다.

“마른 수건을 짜니까 안 나와서 여러 가지 모아서 수건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기자가 연내에 추가로 할 계획은 없느냐라고 질문하자 "생각하기도 싫다."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이 드러난다.  바로 행정부에게 과도하게 위임된 재량권이다.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경제민주화의 뜻은 여당이 정하기 나름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문왕과 무왕의 훌륭한 정치는 목판이나 간책에 널브러지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는 흥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쇠락할 것입니다."

哀公問政. 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 其人亡 則其政息
(중용 20장 哀公問政章: 중용역주, 김용옥)
경제민주화는 그 개념의 추상성 때문에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포함해야 하는 가에 대한 논란은 공허한 말싸움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되었든 낱말풀이를 해보았자 잘하기가 어렵다. 그것 보다는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 각각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번 주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회를 계획 중이라고 한다. 여당 내부에서의 논의가 이번 주 더 구체화될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그 추상적 논리 구조가 무엇이든 새누리당이 구체화하는 만큼만, 그것도 대통령 선거 전에 입법화되는 만큼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주 새누리 당 논의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2012년 9월 7일 금요일

김기원의 경제민주화 낱말풀이 실패

어제, 김기원이 경제민주화의 뜻을 정리하고자 컬럼을 썼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의미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한 후 한국에서의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과 노동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이상하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관계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무슨 관계인지 좀더 들여다보자.

실제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밝힌 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외적으로 유종일의 <진보경제학>, 김기원의 토마토TV 인터뷰 정도가 있을 뿐이다.) 

재벌개혁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김기원, 김진방, 김상조 3인을 들 수 있다. 김기원은 토마토TV 인터뷰에서 재벌 문제를 첫째, 재벌총수와 기업 사이의 이해 불일치, 둘째, 재벌그룹과 국민경제의 이해 불일치, 셋째, 재벌그룹과 국가 이해 불일치 문제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중 양극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두번째, 재벌그룹과 국민경제의 이해불일치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하청기업의 격차 문제다. 그러나 그 해소방안으로는 주로 실질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보장을 통해 실질임금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에게  집단 협상권을 주자고 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흔히 불공정 하도급을 해결하면 될 것 같이 얘기하는 일반 언론과는 조금 보는 시각이 다르다.

김진방도 재벌개혁,특히 지배구조 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한국 정치의 블랙 코메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


지난 번에는 현재 경제민주화에 대해 정치권에서 오가는 논의를 보면서 드는 의구심을 제기했었다.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전의 특징은 양쪽 모두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를 들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거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작 경제민주화를 위한 방책으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재벌개혁 관련된 이슈들뿐이고, 그것이 어떻게 양극화 내지 경제민주화와 연결되는지 양쪽 모두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여당이 말하는 재벌개혁은 진심인지가 의심스럽고, 야당은 재벌개혁 외에도 뭔가 더 있어야 하는데 빠진 것 같다.

나는 단순한 의구심을 벗어나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양 정당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한국 정치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금부터 왜 그러한지 들여다보자.
(나는 작년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특위의 일원으로 출발 초기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한 의심

요새 사람들을 만나면 경제민주화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 기업인들은 물론, 심지어는 경제학자들도 물을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생소한 용어이고 주제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가장 큰 화두다. 지금 전개되는 경제민주화 논의의 중심에는 재벌개혁이 있다.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 수준도 1년 사이에 급속도로 변했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김종인 박사와 인터뷰를 한 김상조 교수가 말하기를 “1 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는 제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돌아와보니 중간밖에 안되더라”고 말했다. 2011년 초만 하더라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용어인 경제민주화가 갑자기 가장 중요한 사회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경제민주화 관련 제기된 재벌개혁 주제들이 현재 한국 시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 및 고통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를 감옥에 몇년 처박는다고 해서 일반인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막연하다. 재벌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가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중에 재벌개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재벌개혁을 하면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경제민주화가 되면 양극화도 개선되는 것일까?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별개의 주제로 놓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