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남한산성, 이제 그만 잊을 수는 없겠니?

페이스 북 담벼락에 남한산성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옛날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이면 모두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벌어졌다는 주화론 대 주전론 싸움을 안다. 나는 이 얘기를 어릴 시절,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시절, 백마산성 임경업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최명길과 김상헌 역할을 누가 맡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보면서도 저거 참 답이 없는 논쟁이겠다 싶었던 것은 기억한다. (드라마 시리즈 후반부에 왜 임경업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이건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에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50권 밖에는 워낙 읽을 것이 없던 탓도 있지만 당시 나는 아버지 서재에서 역사 학술서와 논문집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책에서 읽은 얘기를 갖고 마침 역사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에게 수업 후에 찾아가 물어서 그를 당황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어 한사군이 산동 반도나 요동에 있었다는 식의 주장과 교과서가 배치되는데 왜 그런 것이냐는 등.
그때 병자호란 전후 역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병자호란 시기에 주전론이 옳은지 아니면 주화론이 옳은지를 갖고 백날 얘기해봤자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당시 중요 사건의 연대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난 것이 1627년 3월 초다. 침입하자마자 열흘도 안돼 평양을 함락시켰다. 인조는 그 소식을 듣고 그 다음날(3월 12일) 강화도로 도망갔다. 전쟁 시작부터 딱 10일 걸렸다. 강화도를 건널 준비를 하지 않았던 후금군은 입맛을 다시면서 전쟁 두달만에 화평을 맺고 철군했다. 
후금이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 명나라를 치기 전에 배후를 정비하고자 조선을 침략한 것은 9년 후 1636년 12월 28일이다. 정묘호란의 경험을 살려 기병 위주로 구성한 청군은 정묘호란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압록강 도하 사실을 조정이 알게 된 것이 10일이나 지난 1월 7일이었는데 그때 청군은 이미 개성 근처에 도달했었다. 강화도로 도망갈 시간이 없었던 인조는 1월 9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청은 이번에는 수군도 끌고왔다. 강화도 침공 하루만인 1월 22일 함락시키고 봉림대군을 잡았다. 이 소식을 듣고 인조는 1월 30일 항복한다. 단 한달 사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만큼 청은 준비를 하고 왔고 조선은 전혀 준비를 못했다. 
하지만 준비를 했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연 조선이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다음이 핵심이다. 청이 명을 멸망시킨 것이 1644년이다. 병자호란 뒤 겨우 8년만이다. 중학교 때 이것을 알고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만큼 청은 강대했다. 그렇게 융성한 청나라를 상대로 당시 조선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 주전론, 또는 척화론은 정말 무망한 헛소리였다. 조선은 청을 상대로 전쟁을 해나갈 국력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조롱감이다. 그러나 주화론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소중화라고 생각하던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으로서 주화론은 단지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임시적인 변통으로나 내세울 수 있을 뿐,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주장이었다. 명나라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청이 황제를 칭하면서 군신간 관계를 요구하면 명분을 중요시 하는 조선의 지배층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즉 이래저래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낙후되기 짝이 없는 조선 지배계층에게 이 소중화 사고방식이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박지원이 건륭제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사신단에 끼어 북경에 간 것은 1780년이니 병자호란 후 거의 150년이 지났을 때다. 그런데도 그 사신단은 불교에 심취한 건륭황제 자신이 예를 갖추는 티벳의 판첸 라마를 만나라고 굳이 자리를 마련해 주자 처음에는 거부했다. 만난 자리에서도 예를 갖추기를 거부했다. 판체라마가 선물로 불상을 주자 갖고 갈 생각은 커녕 버리다시피 하인들에게 주었다. 요새 말로 진상을 떨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 그들이 청 황제를 속으론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와서 쓴 열하일기에서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를 쓰지 않고 건륭제 연호를 썼다고 박지원은 비난을 받았다. (이건 커서 알게 된 얘기다.)
다시 돌아와서, 중학생 시절 병자호란 8년 후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알고 나는 조금 허전했다. 중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조선은 이러나 저러나 당하게 되어 있었다. 주전론은 국제 정치상 불가능했다. 주화론도 국내 정치상 실행 불가능했다. 
성인이 되어 나는 북쪽 유목민족에 의한 대륙세력이든, 아니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양세력이든, 주위 세력이 강성해지면 한반도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주전론과 주화론을 갖고 지금까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정말 쓸데 없는 얘기다.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찻잔 속 태풍이다. 내가 보기에 그 얘기가 그후에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입에 오르게 된 것은 오로지 당시 조선 지배계층의 우물안 개구리 식 낙후된 사고방식 때문 탓이다. 그들은 자기 주제를 알지 못하고 이불 안에서 활개짓을 너무 오래 했다. 그것 대신 병자호란 이후, 아니 명나라 멸망 이후 중국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은 조선 후기 사회 처럼 나락에 빠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1636년부터 1876년까지 자그마치 240년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미 이 일화는 한국인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나는 이것이 아쉽다. 하등 중요하지도 않은 사건을 갖고 왜 두고두고 울궈먹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이 그후 조선 왕조 내내 회자되고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역사적 기억에 깊이 박히게 된 것은 그후 벌어진 당파싸움에 이것이 이용된 탓인 것 같다. 김상헌이 귀양에서 돌아와 장수를 누리고 안동 김씨 대장 노릇을 하면서 이 사건을 울궈먹은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고루한 조선 사대부들이 이것을 갖고 두고두고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고 정파를 갈랐는지 모르지만 이거 정말 쓸데 없는 얘기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사람 저사람 이 얘기를 반추하고 재해석해서 극적인 순간으로 내놓는다. 요새 같아서는 역사소설과 역사영화가 역사를 뒤흔드는 꼴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극적인 것은 정묘호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조선의 지식인층이고, 정묘호란의 경험을 엉뚱하게 해석해서 농성작전을 짠 조선군이고, 병자호란 때 청의 압록강 도하를 거의 열흘이 지나서야 알 정도로 안보와 외교에 어두운 지배층이고, 수백명의 충청도 수군을 이끌고 와 기껏 도망가지 않고 싸웠지만 1만이 넘는 청 수군의 강화도 침략을 막지 못했다고 나중에 참수 후 효수당한 충청 수사 강진흔이다. 병자호란 갖고 영화나 소설을 만들 거면 이런 것을 갖고 만들면 좋겠다. 
막상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더 큰 교훈은 다른 데 있다. 냉엄한 국제정치에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 자기들끼리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 바깥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 따라 그때 그때 편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것, 그러러면 적어도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 상대방 정파가 싫어도 외교안보에 관해 야당은 정부 비판 시 언동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력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는 것, 그래도 군대는 독사처럼 날을 세우고 건드리면 상대에게도 피해를 줄 태세를 갖고 있어 보여야 한다는 것 등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북한이 그러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이런 분열이 따로 없다. 끙!)
그래서 나는 중학생때부터 앞으로 되도록이면 남한산성, 또는 주전론/주화론 얘기는 사람들이 그만 얘기하길 바랐다. 물론 그 희망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 잊자. 차라리 다른 걸 기억하자.

2017년 9월 4일 월요일

지방소멸이 아니라 고령화가 더 문제다



1991년 버블 붕괴후 일본에서는 십여년 동안 버블 붕괴 원인과 대책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구조개혁이 먼저냐, 적극적 재정정책이 먼저냐를 갖고 양 진영으로 나뉘었다. 2000년대 후반에 가면서 이것이 단순한 경기변동이 아니라 인구 변동에 따른 현상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2014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2015년 중앙공론신사 주최 신서대상에 뽑힌 <지방소멸> 역시 그러한 인식에서 나온 책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일본에서의 이러한 흐름을 따른 연구가 시작된 것 같다. 아래 기사는 <지방소멸>에서 제시한 분석 틀을 한국에 적용한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지자체 중 85개가 30년 내에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지방소멸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걱정할 일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 지역에 사는 인구가 미미하다. 또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현대 경제에서 외진 지역의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현상은 아니다.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지방소멸보다 지방소멸의 근본 원인인 고령화가 더 중요하다. 설사 도시지역에 인구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인구 중 노인의 숫자가 계속 커지면 사회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경제 노쇠화에 따른 소비 침체가 제일 중요하다. 원래 인구가 적었던 곳이 더 적어지는 지방소멸보다 인구가 많은 곳에서 소비가 침체되는 것이 실제적으론 더 큰 문제다. 
이미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 즉 소비가능인구 수가 줄기 시작한다. 생산가능인구비중은 이미 2010년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사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절대 수치다. 앞으로 1955년부터 태어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65세에 도달하는 2020년부터 한국에선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전될 것이다. 
한국에선 고령화에 따른 소비 침체가 이미 시작되었다. 확대 재정정책으로 일부 그 침체 속도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 가선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확대 재정정책을 단순히 경기부양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안된다. 고령화와 저출산화를 염두에 둔 장기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고령화를 고령화율의 상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고령화율이 올라가는 것이 저출산의 탓인 것으로 착각한다. 아래 기사에서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거론하고 사진도 신생아 사진을 쓰는 것도 그런 시각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 고령화는 저출산과 상관이 없다. 고령화는 "고령자 절대수치의 급증"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726만 명으로 지난해 11월 676만 명 보다 9개월 사이에 50만 명이 늘었다. 아이 수만 늘린다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한마디 덧 붙이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정부부처 업무계획 보고회에서 저출산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저출산 대책과 별도로 고령화 대책도 세워야 한다. 고령자 인구 수가 곧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정부 부처 논의 어디에서도 그런 인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이든 임금주도성장이든 성장을 말하는 것 자체가 내겐 한가롭게까지 느껴진다. 거듭 말하지만 거기엔 열쇠가 없다! 
인구를 봐야 한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그릴 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이 인구 동태다.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정규직 전환의 열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2004년 우리금융지주회사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당시 내 상사였던 분이 말하길 자기 운전 기사를 바꾸었다고 했다. 자기 출퇴근 길에 운전만 하는 사람의 연봉이 거의 8천만원이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우선 교체했다는 것이었다. 

운전 기사가 어떻게 그런 연봉을 받고 있었을까? 연공서열식 호봉제 때문이었다. 운전 기사로서 하는 일이 나이와 상관 없이 똑같아도 30년이 넘게 일하면 호봉이 그 수준까지 기계적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호봉제의 맹점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최소한 과거 노사협상 때 하급 직의 호봉에 상한을 두어 그 상한이 바로 위 직급의 중간 수준 이상을 가지 못하도록 설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요즘의 정규직/비정규직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우리나라는 호봉급 제도가 강해 생산성에 부합하는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고용, 외주화 확대 압력이 크다. 이를 자본의 착취라고만 여기는 발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더 부합하는 직무급 쪽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깜깜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가로등 아래를 맴돌며 계속 열쇠를 찾는 시늉만 하는 격이죠" 라고 했었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어제 어느 국회의원과 점심을 하면서 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과거에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경험도 있고 민주노총에서 일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자연히 최근 정부 부문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얘기가 흘렀다.  

그는 지금 정부가 너무 졸속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 대안으로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물었다. 비정규직이 겪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일괄해서 급하게 추진하면 단지 지금 공공부문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비 지나치게 높은 임금을 자기들만 누리게 되는 또다른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공공부문 노조가 지금의 불합리한 호봉제를 고집하는 한 이 문제는 해결책이 안 보인다.  

그런데 민간기업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민간기업은 어떻게 대처했나? 생각난 김에 대강 정리해봤다. 

민간에서는 크게 봐서 다섯 가지 방법으로 대처해왔다. 

첫째 방법은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호봉제를 조금씩 수정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임금 인상을 하더라도 고직급 호봉에 대한 인상 폭을 하직급 보다 낮게 하여 연공에 따른 임금 배율의 폭을 낮추도록 노력해왔다. 대신 직급이 올라갈수록 총지급액에서 정액급 대비 변동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도록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하던 성과연봉제의 방향이 바로 이것이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기업 부문에서는 점진적으로 꾸준히 추진한 것과 달리 정권기간 달성하려는 욕심에 졸속으로 추진해서 불법 논란에 휘말리다가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되었다.

둘째 방법은 모회사 안에 저숙련 노동자 용 직군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증권사에 선호하는 방법이다. 기존 정규직 직원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직무급 도입을 정규직 노조의 저항 때문에 추진하지 못하자 일부 저숙련직에만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 지점에서 현금 출납등을 담당하는 창구직 직원을 옛날에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다가 무기계약직으로 1차 전환했다가 다시 이들을 별도의 직군인 정규직으로 2차 전환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것 역시 거의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다. 

셋째 방법은 자회사를 만들어서 고숙련 노동이 아닌 직원들을 자회사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청소, 빌딩 관리 등 업무가 많은 경우에 사용한 방식이다. 이들 자회사는 모회사에 비해 임금수준이 전체적으로 낮게 설계되었다. 현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등에서 추진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거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숫자가 많지 않으면 관리 편의를 위해 외주 하청을 주었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는 정규직 직원이 2천명이 안되는 반면 외주 하청 비정규직 인원이 8천명이 이른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은 어느 정도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었고 지금처럼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식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인다. 

넷째 방법은 기존의 비정규직을 그냥 기존의 정규직 호봉제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경영진이라면 가장 꺼리는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기존 정규직 노조에서도 떨떠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원들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자기들이 누리던 특권의 달콤한 맛이 덜해진다. 자기들만의 임금 상승 요구를 관철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상대적 숫자가 바뀌어 노조 선거구도에도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다섯번째, 본격적인 직무급제로 가는 중간 단계로서 연봉제를 일부 도입하거나 사업본부 별로 직급체제를 설계하기도 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도입되었다는 연봉제는 사실 본격적인 연봉제가 아니라 이름만 연봉제인 경우가 많았다. 직급이 올라가면 연봉이 껑충 뛰는 기존의 계단식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게 기존 한국 대기업에서 최대한 노력한 결과다. 그것도 거의 20년에 걸쳐 진화한 모습이다.

민간기업들은 이런 방법들을 통해 기존의 노동제도가 갖고 있는 경직성에 대처해왔다. 물론 이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여전히 신규 직원 대비 장기 근속자의 임금 배율이 너무 높다. 그래서 사오정이란 현상도 생겼다. 우리가 만든 우리만의 지옥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인사제도 역시 그러하다. 민간 기업이 이런 변화를 지난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추진해온 것과 달리 한국의 공무원과 공사 부문은 과거의 호봉제가 제공하는 특권을 고수해왔다. 김대중 정권때 4대 개혁으로 내건 공공부문 개혁과 노동개혁은 모두 이 연공 호봉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을 몇년에 걸쳐 응시하면서 젊은 날을 보내는 공시족이 IMF 위기 이후 대거 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서 당하던 억울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기존의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누리던 특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평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민간기업이 그동안 진화해온 과정을 잘 되살펴서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점진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제일 경계할 것은 물론 졸속 일괄 시행이다. 이번 정권 기간 안에 다 해결하려고 하면 될 일도 안된다. 그게 박근혜 정권이 남긴 교훈이다. 이런 건 좀 배우자.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좋은 적자와 나쁜 적자 : 적자 재정,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정책에 따른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에 관해 보수 세력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앞으로 국회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각 언론들도 많은 기사를 써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시민들로서는 누가 맞는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내 생각에 한국인들이 경제 문제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재정 적자와 국민연금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한국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늘 주장해왔다. 예를 들어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는 1.7% 였다. GDP 대비 2% 정도의 재정 적자를 갖고 시비를 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 이는 과거 정부 관료들이 균형재정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생각하도록 세뇌를 해 놓은 결과다. 근래에 들어서는 보수 정치세력이 복지국가와 이를 위한 증세를 막기 위한 근거로 재정적자를 갖고 국민들을 협박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내가 장기 재정 수지를 어떻게 보는지를 간략히 설명해보았다. 비록 숫자가 나와서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요점을 깨치고 나면 머리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다. 시작하자.
장기 재정 수지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 대비 부채의 비율이 얼마인가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만 되면 아무 상관이 없다. 갚을 능력은 세금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세금 수입은 GDP에 비례한다. 따라서 재정 적자가 나도 그 덕분에 경제 성장이 얼마나 촉진되는가가 중요하다. 이게 핵심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지금 한국처럼 경상 GDP가 5% 증가하는데 재정적자가 2~3%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과 같이 부채비율이 40%이고 경상 GDP가 5% 증가하는 국가에서 재정 적자가 40년 동안 매년 GDP 대비 2%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40년 후 2057년 부채비율은 38%로 도리어 약간 감소한다. 재정적자가 매년 3% 난다고 해도 40년 후 부채비율은 57%일 뿐이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단순한 셈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계산의 정치경제적 의미다. 4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재정적자가 2~3% 발생한 시나리오인데도 이렇다. 그러니 재정적자가 몇년 발생하면 뭐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소란을 부릴 일이 아니다. 
장기 국가 부채비율 분석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분모인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경상 GDP 성장률이 위에서 말한 5%가 아니라 4% 라면 재정적자 2%와 3% 시나리오에 따른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46%와 68%로 증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만 해도 감당할 만하다. 만약 성장율이 3%로 떨어지면? 재정적자 2%와 3% 경우에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59%와 82%로 상승한다. 일본의 국가 채무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해 발생한 재정적자 탓도 있지만 경상 GDP가 실질 성장율 하락과 디플레이션으로 제자리 걸음을 한 탓도 크다. 
그러면 한국의 장기 경제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큰 위협은 이미 진행 중인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다. 이건 단순한 양의 문제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경제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 다음 위협은 각 국민들의 생산능력이다. 이것은 질의 문제다. 현재 한국은 진즉 지식경제로 전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우기 경쟁에 따른 상대평가와 원청/하청 소속에 따라서 보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 양성 시스템과 원청/하청 시스템은 각 개인의 생산성과 보상 사이에 괴리를 낳게 한다. 생산력과 상관 없는 보상 시스템을 고집하는 경제체제로는 각 개인의 생산능력을 효과적으로 높이기가 어렵다. 
그러면, 재정 확대 정책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 잣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위에서 장기 재정 수지 분석에서 중요한 것이 국가부채 비율이고, 또 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경제성장률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잣대는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이 경제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이어야 한다. 같은 재정 확대, 같은 재정 적자라고 해도 그것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그 적자는 결국 나중에 생산력 증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 거꾸로 만약 그 재정 확대가 생산력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부담도 더 커진다. 
일본이 오랫동안 대규모 적자 재정을 지속했는데도 경제성장이 침체되고 국가부채비율이 200%가 넘게 올라간 이유도 그 재정 확대가 고령화를 해소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좋은 재정 적자와 나쁜 재정 적자를 구별해야 한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장기적 경제 성장률 상승에 도움이 되는 재정을 확대하느라 생기는 적자는 '좋은 적자'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는 재정이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건강보험제도 개선, 아동수당 제도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앞으로 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더 구체화 되길 기대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경제적 보상체제의 왜곡을 해소하여 국민들의 생산력 증진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교육 재정을 쓰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공교육 부담을 늘리고 사림 학교에 지원하는 재원을 줄여야 한다. 이것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에 반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원청 부문인 국가 공무원 인원 수 대폭 확대 같은 정책은 우려스럽다. 지금과 같은 보상 시스템을 놔두고 추진하면 도리어 원청 부문의 보상체제 왜곡을 증폭시키고 이에 따라 경제 전체적인 생산성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첨부한 기사는 전슬기 (Seulgi Juhn)기자가 쓴 기사다. 약간 길지만 기초적인 숫자를 한 곳에 잘 정리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적자성 부채와 자산성 부채를 구별하지 않은 점이다. 제대로 하려면 적자성 부채만 갖고 얘기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첨부한 표에선 이 둘을 구별해 보여주면서 기사 글 안에서는 이에 상응한 언급이 없다. 이 문제는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된다.

2017년 7월 23일 일요일

부모 없는 자식: 최저임금 만원

요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활발하다.
그런데 몇가지 이상한 일이 있다.
첫째. 누가 이것을 주창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그저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에 있었다는 말만 나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만든 공약인가? 캠프 내에서 누가 이것을 주창했는가? 누가 이 정책의 산파 역할을 했고, 누가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는가? 아무도 '이것은 내가 적극 밀은 정책이다. 이것이 잘되면 내 공이고 잘못되면 내 탓이다' 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작년에 있었던 총선 때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때는 누가 어떻게 만든 정책 공약인가? 이것도 불분명하다.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로 임명된 홍장표씨등이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할 때 이를 구현할 정책 수단의 예시로 최저소득 인상을 거론한 적은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론 그도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을 정책 수단 중 하나로 들었을 뿐 2020년까지 만원으로 인상하자고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둘째, 이것의 취지도 모호하다. 소득주도성장론에서 주장했다고?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론에서 주요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예시에 불과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정책 수단이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무슨 수로 경제 전체적인 임금소득을 올리겠다는 것인가? 그러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나 통신요금 인하, 사회적 일자리 확충 등이 거론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예로 든 것이지 몸통은 아니었다.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이것들은 새발의 피다. 이것들을 다 한다고 해서 임금주도 성장이 되지는 않는다. 피고용자 총 보상(total compensation)이 약 650조 원이다. 이중 임금소득이 약 550조 원이 될텐데 5%만 증대시키려해도 일년에 30조 원을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자에게 1천원씩 더주고 통신비 조금 내려봤자 10조 원 근처에도 못간다. 
묻고 싶다. 최저임금 만원은 소득주도성장론의 몸통인가, 아니면 예시인가? 김상조처럼 마중물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퍼 올릴 지하수는 어디서 나오나?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오나?
셋째, 근거도 없다. 최저임금을 어느 정도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기준을 무엇을 할지에 대한 논의를 제안한 사람이 없다. 국제적으로 최저임금을 얘기할 때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보다 더 많은가 아닌가를 우선 본다. 한국은? 이미 거의 45%에 달한다. 조금만 올려도 금방 50%를 넘어버린다. 만원이면 중위소득 50%를 훨씬 넘어버린다.
넷째, 이것을 실시하면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정부 측 예상 시나리오 조차도 없다. 이 정도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정책이면 이것을 실시할 경우 예상 효과가 무엇인지가 나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상대로 정책 효과가 나는지를 나중에 챙겨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아직까지도 언론에 의한 논란과 국회예산정책처 등이 만든 회계적 자료만 있을 뿐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인상 결정 다음날 예상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자기들이 일은 저지르고 나서 그 다음날 이를 옹호하는 대신 부작용 경감 대책을 늘어놓는 것은 세상에 처음 본다. 이 정도 되는 사안이면 정부 내 누군가가 이것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가 주창한 것이고,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과 정책 담당자가 동의한 것이고 이러이러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누군가가 나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가? 
요약하자. 아이는 태어났는데 내가 그 아이 부모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일은 벌어졌는데 내가 했다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누가 주장한 것인지도, 취지도, 근거도, 예상 효과 분석도 모호하게 여기까지 왔다. 대기업노조의 선무당 소리를 당론이라고 받은 김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어제 문대통령이 일단 해보고 내년에 가서 다시 보겠다고 했단다. 자기들도 덜컥수를 둔 것을 두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말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