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8일 목요일

부동산 정책: 언제까지 결핵에 해열제를 쓸 것인가?

그저께 참여연대 강연을 시작했다. 주제는 부동산. 두시간만에 다루기엔 벅찬 주제여서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이 되었다.
두 가지 결정을 했다.
하나는 일방적 강연이 아니라 청중이 더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 그래서 뉴스타파의 짧은 방송을 보면서 각자 머리 속에 떠오른 질문을 같이 칠판에 적어보고, 내게 떠오른 질문도 같이 적어서 이 질문을 갖고 같이 얘기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자기들은 정의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고 만든 방송이 얼마나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 것인지를 얘기하다보면 일반 대중이 얼마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의 뼈대가 드러날 것 같았다.
둘째, 원인 분석과 진단에 그치지 말고 처방도 요약해서 제시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한국 사회가 대안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왜 어떻게 하다가 생겼는지도 잘 모르거나 합의를 만들어 낼 정치적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이 도출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알아야 바꾸지, 알지도 못하면 바꿀 동력도 안 생긴다.
하지만 부동산은 조금이나마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기존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이 감옥에서 벗어날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로 했다.
먼저 진단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가격 규제와 중산층의 내집 마련 지원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6~70년대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1970년대엔 도시 중산층과 도시 빈민층이 동시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주택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1977년, 박정희 정부는 분양가 규제와 청약 자격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나선 군사독재정권의 위력을 이용해 토지를 강제수용해서 아파트 부지로 공급했다. 이렇게 빼앗은 땅 위에 지은 아파트의 공급 가격은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중산층에게 분양권 추첨으로 나누어 주었다. 분양권을 따기만 하면 당장 몇년치 소득에 해당하는 차익을 얻게 되니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 시장에 골몰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주간 단위로 아파트 값 향방을 갖고 뉴스 보도가 쏟아지는 기현상은 일부에서 얘기하듯 한국 사람이 원래 투기 성향이 강하거나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유인에 다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때 마련된 부동산 정책 틀은 박정희 정권 후에도 이어졌다. 모든 정권은 자신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내집 마련을 통한 중산층 확대에 매달렸다. 공공의 목적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하는 강제 수용권을 남발하여 땅을 빼앗아 신도시를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어 개인에게 불하했다. 일종의 집단적 약탈 구조에 전 국민이 참여한 것이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은 주택을 짓기 위한 택지 개발권을 정부가 독점하고 민간의 토지 개발권을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체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부동산 정책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토지 수용권 남용과 가격규제 방식을 유독 한국만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이것 하나에 지탱해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산층 대부분은 노동시장 이분화 과정에서 원청부문에 소속되는데 성공하거나 아파트 분양을 받은데 기초하고 있다. 원청 부문에 떨어져 나오거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대부분의 한국 중산층은 아주 빠른 속도로 중산층에서 탈락할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원청 부문의 고용 비중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계층 유지를 위해선 부동산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마저 떨어지면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크고 엄청난 사회불안이 일어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제도가 40년이 넘도록 유지되면서 자연히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촛점은 부동산 가격 안정에 가게 되었다. 만약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면 청약 당첨으로 떼돈을 번 중산층이 다음 선거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번 8.2 대책 역시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을 다주택자들이 집을 매집하는 탓으로 돌렸고, 들고 나온 정책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요 규제를 통한 집값 잡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시행된 재건축 규제 역시 집값 상승의 주범 중 하나가 무분별한 재건축 때문이라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재건축은 주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이다. 장기적으론 재건축이 활성화되어야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고 가격도 안정화 된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허무는 것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우려해서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다. 민간이 자기 부담으로 자기 집을 새로 짓겠다는데 중앙 정부가 허가를 해주느니 마느니 간섭하겠다는 생각이 잘못이다. 게다가 그 명분은 핑계에 불과하다. 본심은 국토부 관원들이 인위적으로 시장 공급량을 직접 조종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가격 억제라는 점에서 더욱 잘못되었다.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인위적 가격통제에 연연할 것인가?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과 주택은 주거 서비스의 사용가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자산(Asset)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주거 서비스 개선보다 자산 가격 개입에 골몰했다. 그래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뒷전에 두고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을 우선시 했다. 무주택자라곤 하지만 사실은 중산층인 사람들의 내집 마련을 쉽게 하기 위해 가격을 억누르는 대신 막상 빈곤층을 위한 주택 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 사회 정책은 알고 보면 중산층의 이익 위주다. 정치적인 목소리가 낮은 하청 부문과 빈곤층을 위한 정책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처방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기 능력에 지나치지 않은 부담으로 주거 서비스를 누리는데 촛점을 두고 대신 자산 가격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빼놓으면 주택 값이 높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나라는 없다. 정책의 목적이 주거 복지 향상에 있다면 정부는 가격을 자율화하는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주거복지 강화와 부동산 관련 조세를 보다 공정하게 바꾸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맞다.
공급 측면에선 인위적 가격 개입을 포기하고 대신 민간주택 공급이 더 활성화 되도록 용적률, 건폐율, 재건축, 용도 변경 등 토지 사용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분권화해서 시장 공급 기능이 더 활발히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주거 복지는 직접 공급이나 조세 혜택을 통해 공공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서 민간 임대시장에서 취약계층 안전장치를 갖추는데 진력하면 된다.
수요 측면에선 조세와 금융을 개혁해야 한다. 지금은 재산세가 낮고 취득세가 높아 도시 중심지 재개발이 부진하다. 재산세는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도심 재개발이 촉진된다. 취득세를 인하하면 도심은 놔두고 땅값 싼 외곽에 신도시 개발을 하려는 유인이 작아진다. 따라서 재산세는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취득세는 점차 인하해야 한다.
일가구 일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면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2~3년 살고 팔 경우 일주택자라고 해서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전국민이 투기꾼이 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함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양도세는 폐지해야 한다. 누군가가는 다주택자여야 임대주택도 가능해진다. 대신 임대소득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비용 제하고도 남은 임대소득을 2천만원 까지 세금 면제를 해주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대출의 건전성 역시 강화시켜야 한다. 한국은 원금은 안 갚고 이자만 내는 대출에 의존해서 가계부채를 키워왔다. 정부가 약 5년전부터 개입하기 시작해서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이자만 내는 대출은 현재는 잔고 기준으로 60%, 신규 기준으로 30%로 축소되었다. 앞으로 이 비중을 더욱 줄여야 한다. 한편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을 줄이는데 진력하는 동안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DSR)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DSR)은 올해 가을 처음 도입한다고 하지만 그 적정 비율을 얼마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모두들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하길 원한다. 부동산은 워낙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정책에만 의존하기 보단 경제 환경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기적인 가격 조종을 위해 과거에 쓰던 비합리적인 무기를 다시 들고 나와 쓰면 나중에 바로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왜 과거에 실패한 부동산 정책 수단에 그토록 연연하는지 안타깝다.
결핵 환자에게 해열제를 쓰면 당장은 열이 내릴지 모르지만 병은 더욱 깊어 갈 수 밖에 없다. 가격 개입 정책이 비로 그 해열제다. 결핵도 병이 깊어지면 해열제도 소용 없다. 그때까지 정부는 계속 해열제에 집착할 것인가?

2018년 2월 1일 목요일

나는 비관주의자인가?

요즘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안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9개월이 되어가는데 새 정부 들어선 후 경기가 좋아진 계층은 부동산과 주식을 가진 사람들 뿐인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자기 아파트 값이 수억 원이 늘었고, 갖고 있는 코스닥이나 장외시장 주식 값이 폭등해서 수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야야 하는 사람은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 
너무 섯부른 것일 수는 있지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론 새정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조금씩 늘고 있다. 현재 언론에선 최저임금 인상을 갖고 논란이 왕성하다. 비록 첫달이어서 그럴지 모른다고 하지만 정부 보조금 신청자가 계획 대비 1.5%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칫하면 얼마나 정부 정책이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정작 폭발력이 큰 것은 부동산이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미적지근한 부동산 정책에 실망하고 있다.
사실 현 정부는 이미 부동산 시장에게 자기 패를 들켰다. 보유세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종부세는 연기만 모락모락 피울 뿐이다. 연간 10%가 넘는 가계 부채 증가율을 자기들 계획으로 겨우 연간 8%로 잡겠다고 했다.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가 부동산 열기는 일부 다주택자 탓이란다. 그 다주택자들은 다들 바보인가 보다. 평당 4천만원 하던 아파트를 평당 6천만원에 사려고 하니 말이다.
느닷없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게 높은 양도소득세율와 낮은 LTV (40%)를 들고 나왔다. 막상 이자만 내는 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60%가 넘게 차지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있다. 나라면 그것부터 손을 볼 것이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커녕 도리어 임대소득자 등록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폼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곳과 내려가는 지역을 각자 별도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거의 화룡점정 수준이다. 한마디로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금 부동산 가격을 현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각 지역별로 모두. 오르는 곳은 오르지 못하게 하고, 내려가는 곳은 내려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가격이 왜 유지되는 것이 좋은지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상유지! 그것만이 살 길이다" 라고 속으로 되새기면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기들도 설명을 못 하고 있다. 너무 뻔하고 남루해서. 지지율과 선거를 의식해서다.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도 민심을 잃고 너무 내려가도 민심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격대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일한 살 길이다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경기가 너무 뜨거워도 안되고 너무 차가워도 안된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간에 모두 부동산 경기로 거시적 경기를 조종하려는 습관을 못 버리는 것은 매 한가지다. 
이걸 굳이 말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부동산 정책의 핵심 타겟이 부동산 가격이 되어서도 안 된다. 더욱이 특정 가격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애초에 그것은 그 어느 나라 어느 정부가 되었든 간에 정부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살 길이 보인다. 부동산 투자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현 제도 정비를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대출 규제와 세제를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임대주택 건설은 중장기 정책이이서 당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버블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 정부가 펀드를 만들어 투자할 것이라는 눈치를 정부가 솔솔 피웠다. 심지어 국민연금에서 수조 원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는 방안까지 거론되었다. 이 얘기를 대통령 선거 전에 처음 들었을 땐 선거를 앞두고 아무 것이나 던져대는 폴리페서들 얘기이거니 했는데 선거 후 다시 등장했다. 경제 부총리까지 여기저기서 말을 하고 다녔다. 
당연히 시장은 반응했다. 정부의 코스닥 펀드 조성 얘기가 언론에 흘러 나오기 몇 주 전부터 코스닥 레버리지 인덱스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코스닥 시장은 폭등 수준으로 올라가 있고 거래량 역시 지난 10년간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전세계적인 저금리에 의한 유동장세라고 하지만 지금 코스닥은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일자리와 부동산이다. 전 세계에서 일자리 늘리겠다는 정권은 많아도 그것을 숫자로 목표를 미리 제시하는 정권은 없었다. 어느 나라나 요즘 일자리가 안 느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원하청으로 분절되고 고용 조정이 경직화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억지로 늘릴 방법은 솔직히 없다. 대통령이 늘리라고 해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 저것 억지로 공공부문에서 조금 늘려봤자 태평양에 물주전자 붓기다. 재벌 기업은 호응하는 시늉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대통령에게 이 얘기를 해 줄 용기가 있는 사람이 그의 주위엔 없는 것 같다. 전형적인 그룹 사고다. 권력자 눈치 보기다. 
대통령이 애가 타든 말든, 늘리겠다는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잡겠다는 부동산 값은 오르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있는 사람은 더욱 좋아지고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느낄 것이다.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란 소리가 조만간 나올 것이다. 
도끼 자루가 썩고 있다. 현 상황이 계속되면 정권 초기에 호기롭게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던 더불어 민주당 정권은 1년도 안 되어 자기들 실력의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그랬다. 아니 노무현 정권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원래 그런 것이고 누가 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비관주의자여서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언론 인용 금지)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구름이 끼고 있다



내가 국내에 없었던 기간은 겨우 10일이었으나 그동안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는 북한이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생긴 이런 저런 일들이지만 경제 금융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비트코인. 
출국하기 전에 JTBC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하니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방송에 나가서 토론을 할 정도로 잘 아는 주제가 아니어서 사양했다. 비트코인 열풍이 닥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나도 궁금해서 이것 저것 읽어봤지만 이해가 안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문제는 어느 정도 세부 기술적 사항을 직접 해보지는 않아도 그 구조는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보기엔 내가 그 기술의 핵심을 파악한 것 같지 않았다. 이 정도 읽어 봤는데 모른다면 그건 내 능력 밖이다. 이 정도에서 내 무지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언제 토론을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국내에 없는 기간 도중이었다.) 
L.A.에 도착하니 그새 법무부장관이 금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했다. 청중들 사이에서도 질문지를 통해 비트코인을 물어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잘 아는 분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법무부 장관이 나설 일은 정말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결국 JTBC에서 토론을 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보기에 이건 좀 너무 성급했다.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면 사회를 보는 사람, 토론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 토론을 시청하는 사람이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체는 좀 알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엔 거기에 나온 사람 모두 화폐경제에 관한 경제적 이해와 암호화폐에 대한 기술적 이해를 모두 겸비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유시민씨 의견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사기니까 금지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엔 소비자 보호, 거래 투명성과 실명성 등만 확실하게 하면 되지 않나 싶다. 
다음, 파리바게뜨
문제가 타결을 봤단다. 종래 제빵사들을 고용하던 협력사는 없애고, 본사와 가맹점이 공동 출자(10억 원)한 자회사를 만들어 제빵사들을 고용하기로 했으며, 임금을 16.4% 올리고, 복지는 향후 점차 본사 수준으로 맞추어주도록 한다고 한다. 노동부는 벌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고 파리바게뜨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것 하는데 넉달 걸렸다.
노동부가 설쳐서 무엇이 더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제빵사들은 협력사의 정규직원이었다. 다수의 협력사가 아니라 하나의 자회사로 통합되는 만큼 파리바게뜨 본사에 대한 제빵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아 노동의 안정성이 개선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파리바게뜨는 어쨋든 본사 직접 고용은 회피했다. 반숙련 제빵사를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사업모델엔 변화가 없다. 이 정도면 노동부가 애초에 당장 한달 안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말을 안 들으면 수천억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협박조로 들이댈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은근히 압력을 넣으면서 협상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같은 결과를 이룰 수 있었을 것 같다. 파리바게뜨가 인상된 임금과 강화된 노동 경직성에 따른 수익성 악화을 어떻게 대처할지는 앞으로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퇴직연금.
이건 귀국한 뒤에야 알게 된 것인데, 노동부가 그동안 수년에 걸쳐 추진하던 퇴직연금 제도 개혁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다. 
지금 퇴직연금은 사용자인 회사와 금융회사가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계약식으로 일본에서 베껴 온 것이다. 어느 금융사에게 돈을 맡길지, 어떤 펀드에 투자할지 등에 대해 막상 퇴직할 때 돈을 받을 피고용인들은 통제 권한이 별로 없다. 그래서 대출을 갖고 로비를 할 수 있는 은행이나 보험사가 13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거의 다 석권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노동부도 이를 받아들여 기금식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해왔다. 기금식 방식에선 매달 적립되는 돈을 운영하는 기금을 만들고, 사용자 회사와 직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같이 이사회에 참여해 자산 배분 정책과 펀드 운영사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최종 수혜자인 직원들의 의견이 더 반영될 수 있고 중간 업자의 개입에 따른 문제를 제거할 수 있으니 과거보다는 선진적인 방식이다. 일본만 해도 계약식과 기금식 중에서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한국은 계약식 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부가 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년 동안 노동부가 추진해 온 사안이고, 바로 지난 12월만 해도 노동부 김영주 장관이 기금식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그것도 아무 설명도 없이 앞으로 추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다. 
이건 사실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기업 퇴직연금은 지금은 130조 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자산이다. 직장인들의 노년 은퇴 생활은 물론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심대하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짤막히 단순 보도만 했을 뿐 별로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한국 언론은 연금 문제에 둔감하다. 국민연금에 관해선 조금 나아졌지만 기업 퇴직연금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 지에 대해선 거의 까막눈 수준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퇴직연금제도는 문제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퇴직연금 제도의 주무부서가 왜 노동부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퇴직연금 제도의 핵심은 소득세 면세 제도다. 매년 면세로 소득의 몇 퍼센트, 액수론 얼마까지 적립할 수 있는지, 나중에 돈을 꺼내 쓸 때 소득세는 어떻게 부과할지가 핵심이다. 따라서 기재부 조세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노동부가 건드릴 게 하나도 없다. 노동부 입장에서 중요한 분야는 수급자, 즉 나중에 돈을 받을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만 신경쓰면 된다. 
게다가 사실 한국의 퇴직연금제도는 말이 연금이지 기존 퇴직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퇴직 "연금"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겨우 일년에 한달치 돈을 붓는 것이니 30년 일해봤자 30개월 어치 돈만 적립되었을 뿐이다. 그걸 갖고 은퇴 후 연금에 쓰라고? 노후 생활 준비하기엔 택도 없다. 자기들도 이걸 알아서 원청 기업에선 퇴직할 때 명퇴금 명목으로 돈을 두둑히 챙겨준다. 때론 이게 퇴직금 액수에 육박한다. 물론 이것도 원청 부문 얘기이고 하청 부문에선 어림도 없다. 적립한 돈도 대부분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에 넣어 놓고 있어서 장기적 투자 수익률이 낮을 수 밖에 없다. 
2005년 정부안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도대체 왜 이렇게 설계 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노동부는 퇴직금 제도에 있어서 노동자 이익 보다는 사용자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퇴직금을 별도로 쌓지 않고 장부상으로만 인식하도록 하다가 IMF 위기 때 기업이 도산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게 했다. 퇴직연금제도도 기껏 바꾼다는 것이 일본에서도 한참 오래 된 계약형을 들여 왔다. 이미 2001년부터 일본에서 추가로 도입된 기금형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엔 전시행정, 졸속행정, 땜방행정의 전형적인 예였다. 그리고 이게 12년이 지난 지금껏 변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젠 자기들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서 개선책으로 도입하려던 기금형 퇴직연금을 아무 설명도 없이 취소했다. 기금형이 도입되면 시장을 잃을 은행과 보험업계의 로비에 넘어간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언론이나 노동자나 아는 사람이 없어 이슈화도 안 되고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그동안 있었던 일로 세 가지를 들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는 최저임금 시행에 따른 충격이다. 이미 무리수를 두었는데 이를 무마하려고 후속으로 악수를 두고 있다. 처음엔 일년에 그친다던 고용지원금을 이제와선 내년에도 한다고 한다. 그것도 별 효과가 없어서 신청자도 미미하다. 자칫하면 준비한 3조원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 자영업자 계층는 이미 동요하고 있고 청와대도 당황하는 눈치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 생각엔 아마 올해 내내 이 문제와 노동시간 축소, 정규직화 불만, 공무원 증원, 일자리 창출 부진 등으로 한국 사회가 매우 시끄러울 것이다. 
노동은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이 만나면서 생기는 파생 시장이다. 노동은 인간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상품시장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경직적이고 과거 인간관계 상의 역사에 영향을 받는다. 조세와 재정으로 시작해서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변화를 꾀했어야 하는데 그것은 놔두고 노동, 그것도 가격 개입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수순이 꼬였다. 세상을 자본 대 노동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복잡한 현대 경제를 다룰 수 없다.
청와대는 이미 당황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 초조해질 것이고, 추가 조치를 요구할 것이다. 이미 판은 벌어졌으니 공무원들은 이런 저런 대책을 계속 가져올 것이다. 처음 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또다른 탁상행정, 졸속행정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 실력이다.
나는 이런 논란들이 가라앉기는 커녕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회의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미 헤매기 시작한 부동산 문제와 가계부채 문제가 겹치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일년만에 경제정책에서 궤도 수정을 요구받게 된다. 그것이 지방선거 전일지 아니면 후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러나 국회에 또아리를 치고 있는 야당이 저러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출신 지방 자치 단체장이 몇명 더 뽑힌다고 해서 국정 개혁에 도움 될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구름이 끼고 있다. 지지율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이유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으로 보이는 이유가 공공복지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평시 내가 갖고 있던 이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외 언론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4차 산업혁명에 훨씬 더 유난스럽게 예민하다. 식자층 쳐놓고 이것에 대해 한마디 안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 정부는 4차혁명 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나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잠재성을 인정하지만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쉽게 달아오르는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 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한국 사회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더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사회적 요인이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공공복지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도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원청과 하청으로 나뉜 사회에서 원청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다 한번 원청에서 떨어져 나가면 받쳐주는 안전망이 없다. 그래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예측에 이토록 모두들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래 뉴욕 타임즈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공포가 스웨덴에선 별로 없다고 한다. 기자는 그 이유가 사회복지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고 노사간에 신뢰 관계가 있어서 그렇다고 진단하고 있다. 
영어 기사라서 읽지 않을 사람들에겐 기사 중간에 있는 그림이라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엔 공공복지 지출 비중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간에 비교한 그림이 있다. 아마 모두들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찾아볼 것이다. 미리 얘기하면 제일 끝에서 두번째다. GDP 대비 10.4%로 미국의 반 수준이고 일본의 23.1% 에 비해서도 반도 안 된다. 스웨덴은 27%다. 꼴찌는 멕시코다. 한국과 멕시코는 노동시간이 제일 많은 나라 순서도 같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다. 사람의 꿈과 절망과 땀과 눈물과 핏물이다.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도 어린이 집부터 시작하는 교육비와 집 값에 허덕인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한국처럼 거의 사립에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만약 건강이 한번 나빠지면 60% 밖에 보장하지 않는 건강보험도 문제지만, 그전에 직장을 잃어 금방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더 크다. 실업보험이 유명무실하니 다른 직장을 적극적으로 찾으러 나서기도 어렵다. 원청에 속해서 가파른 연공급과 후한 기업 복지제도 덕분에 당장은 편한 것 같지만 50대 중반이면 대다수가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한다. 공적 연금과 기업 연금 모두 미비해서 대다수는 노후 생활을 할 소득이 막막하다. 원청이 그러니 하청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속한 한국의 기성 세대는 경제 체제를 결혼, 양육, 교육, 건강, 실업, 은퇴 등, 인생 사이클 상 모든 단계를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만들어 놨다. 그들은 세금과 국가 재정을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 놓았다. 고속성장과 부동산 값 상승만 되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말하고 살았다. 
이젠 안 통한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평소에 불안하니, 그것이 로봇이든 인공지능이든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4차 산업혁명 타령에 모두들 민감하다. 
이건 우리 탓이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해서 그렇다. 아니, 몰라서 그렇게 했다. 미국 것과 일본 것을 베껴왔는데, 어설프게, 잘못 베껴왔다. 스웨덴? 좋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나라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하고 싶다. 한국형 프랑켄슈타인 경제체제의 원형을 제공한 미국과 일본도 우리 처럼은 안 한다.
4차 산업혁명? 잊어버리자. 흥분하지도 말고, 걱정하지 말고, 닥치면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그게 아니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한국의 관혼상제, 이대로 괜찮은가?



11월이다. 아버님 제사날이 가까워졌지만 며칠이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아내에게 물었다가 그날 내가 다른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을 미리미리 기억해놓지 않고 날이 임박해서야 떠올리는 내 습관 탓이다. 부리나케 약속을 조정했다.
그런데 사실 언제를 제사날로 잡아야 하는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기일이 되면 돌아가신 분 제사부터 먼저 지내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그 전날 밤에 미리 준비했다가 자정이 지나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친지들이 모여서 자정까지 있다가 제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점점 제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앞당겨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저녁 8~9시에 하고 헤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제사는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점이다. 기일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기일 하루 전에 지내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니 말이다. 내 생각엔 그럴 바에야 기일날 저녁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번 기회에 형제들과 상의해서 제사날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확정할까 싶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가정 의례가 엉망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원래 가정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은 것이다. 이중 갓을 쓰는 성인식인 관례(冠禮)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婚禮)는 개신교 목사가 집전하는 기독교 혼례 방식이 교묘하게 섞이더니 이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같은 집안 안에서도 형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는 박정희가 만든 가정의례준칙 때문에 가장 해괴망칙하게 되어버렸다. 국가가 가정 의례를 획일적으로 정하고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강제성은 없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안에 대통령령인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남아있다. 
장례에서 내가 가장 불만인 것은 망인이 돌아가시자 마자 사흘안에 후다닥 장례를 끝내는 3일장이다. 돌아가신 분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한 예식 치고는 너무 어수선하고 급박하다. 이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며칠 시간을 두고 준비한 후 장례식 날자를 따로 잡아 그 시간에 방문해서 애도를 같이 표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을 불러서 시체 안치실 옆에서 염을 하는 장면을 보도록 하는 것도 나는 약간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이 화장을 하는데 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대형병원 구석에 마련한 장소에서 사나흘 만에 장례를 치르는 한국의 장례 문화가 나에겐 거의 야만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부모님 장례식 방법을 형제간에 미리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 역시 막상 일이 닥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엔 부모님 장례를 이렇게 치른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돌아가신 분에게 우리는 좀 다른 방법으로 예의를 표시할 수는 없을까? 
제례(祭禮) 때를 맞이해서 제사를 언제 지내는 것이 적절한지를 갖고 얘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가정의례가 국적불명, 취지불명인 채 살고 있다. 차례 하나를 지내면서도 어떻게 할지를 확실히 몰라 서로 눈치를 보면서 치룬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정해지지 않아 자기들도 확실하지 않은 방식을 굳이 흉내내는 시늉을 할 필요가 있을까? 
관혼상제를 겪을 때마다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얼마나 우리의 삶이 뿌리까지 흔들렸는지를 새삼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