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일 목요일

나는 비관주의자인가?

요즘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안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9개월이 되어가는데 새 정부 들어선 후 경기가 좋아진 계층은 부동산과 주식을 가진 사람들 뿐인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자기 아파트 값이 수억 원이 늘었고, 갖고 있는 코스닥이나 장외시장 주식 값이 폭등해서 수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야야 하는 사람은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 
너무 섯부른 것일 수는 있지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론 새정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조금씩 늘고 있다. 현재 언론에선 최저임금 인상을 갖고 논란이 왕성하다. 비록 첫달이어서 그럴지 모른다고 하지만 정부 보조금 신청자가 계획 대비 1.5%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칫하면 얼마나 정부 정책이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정작 폭발력이 큰 것은 부동산이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미적지근한 부동산 정책에 실망하고 있다.
사실 현 정부는 이미 부동산 시장에게 자기 패를 들켰다. 보유세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종부세는 연기만 모락모락 피울 뿐이다. 연간 10%가 넘는 가계 부채 증가율을 자기들 계획으로 겨우 연간 8%로 잡겠다고 했다.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가 부동산 열기는 일부 다주택자 탓이란다. 그 다주택자들은 다들 바보인가 보다. 평당 4천만원 하던 아파트를 평당 6천만원에 사려고 하니 말이다.
느닷없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게 높은 양도소득세율와 낮은 LTV (40%)를 들고 나왔다. 막상 이자만 내는 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60%가 넘게 차지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있다. 나라면 그것부터 손을 볼 것이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커녕 도리어 임대소득자 등록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폼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곳과 내려가는 지역을 각자 별도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거의 화룡점정 수준이다. 한마디로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금 부동산 가격을 현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각 지역별로 모두. 오르는 곳은 오르지 못하게 하고, 내려가는 곳은 내려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가격이 왜 유지되는 것이 좋은지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상유지! 그것만이 살 길이다" 라고 속으로 되새기면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기들도 설명을 못 하고 있다. 너무 뻔하고 남루해서. 지지율과 선거를 의식해서다.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도 민심을 잃고 너무 내려가도 민심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격대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일한 살 길이다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경기가 너무 뜨거워도 안되고 너무 차가워도 안된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간에 모두 부동산 경기로 거시적 경기를 조종하려는 습관을 못 버리는 것은 매 한가지다. 
이걸 굳이 말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부동산 정책의 핵심 타겟이 부동산 가격이 되어서도 안 된다. 더욱이 특정 가격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애초에 그것은 그 어느 나라 어느 정부가 되었든 간에 정부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살 길이 보인다. 부동산 투자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현 제도 정비를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대출 규제와 세제를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임대주택 건설은 중장기 정책이이서 당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버블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 정부가 펀드를 만들어 투자할 것이라는 눈치를 정부가 솔솔 피웠다. 심지어 국민연금에서 수조 원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는 방안까지 거론되었다. 이 얘기를 대통령 선거 전에 처음 들었을 땐 선거를 앞두고 아무 것이나 던져대는 폴리페서들 얘기이거니 했는데 선거 후 다시 등장했다. 경제 부총리까지 여기저기서 말을 하고 다녔다. 
당연히 시장은 반응했다. 정부의 코스닥 펀드 조성 얘기가 언론에 흘러 나오기 몇 주 전부터 코스닥 레버리지 인덱스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코스닥 시장은 폭등 수준으로 올라가 있고 거래량 역시 지난 10년간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전세계적인 저금리에 의한 유동장세라고 하지만 지금 코스닥은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일자리와 부동산이다. 전 세계에서 일자리 늘리겠다는 정권은 많아도 그것을 숫자로 목표를 미리 제시하는 정권은 없었다. 어느 나라나 요즘 일자리가 안 느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원하청으로 분절되고 고용 조정이 경직화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억지로 늘릴 방법은 솔직히 없다. 대통령이 늘리라고 해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 저것 억지로 공공부문에서 조금 늘려봤자 태평양에 물주전자 붓기다. 재벌 기업은 호응하는 시늉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대통령에게 이 얘기를 해 줄 용기가 있는 사람이 그의 주위엔 없는 것 같다. 전형적인 그룹 사고다. 권력자 눈치 보기다. 
대통령이 애가 타든 말든, 늘리겠다는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잡겠다는 부동산 값은 오르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있는 사람은 더욱 좋아지고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느낄 것이다.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란 소리가 조만간 나올 것이다. 
도끼 자루가 썩고 있다. 현 상황이 계속되면 정권 초기에 호기롭게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던 더불어 민주당 정권은 1년도 안 되어 자기들 실력의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그랬다. 아니 노무현 정권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원래 그런 것이고 누가 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비관주의자여서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언론 인용 금지)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구름이 끼고 있다



내가 국내에 없었던 기간은 겨우 10일이었으나 그동안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는 북한이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생긴 이런 저런 일들이지만 경제 금융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비트코인. 
출국하기 전에 JTBC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하니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방송에 나가서 토론을 할 정도로 잘 아는 주제가 아니어서 사양했다. 비트코인 열풍이 닥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나도 궁금해서 이것 저것 읽어봤지만 이해가 안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문제는 어느 정도 세부 기술적 사항을 직접 해보지는 않아도 그 구조는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보기엔 내가 그 기술의 핵심을 파악한 것 같지 않았다. 이 정도 읽어 봤는데 모른다면 그건 내 능력 밖이다. 이 정도에서 내 무지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언제 토론을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국내에 없는 기간 도중이었다.) 
L.A.에 도착하니 그새 법무부장관이 금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했다. 청중들 사이에서도 질문지를 통해 비트코인을 물어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잘 아는 분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법무부 장관이 나설 일은 정말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결국 JTBC에서 토론을 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보기에 이건 좀 너무 성급했다.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면 사회를 보는 사람, 토론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 토론을 시청하는 사람이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체는 좀 알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엔 거기에 나온 사람 모두 화폐경제에 관한 경제적 이해와 암호화폐에 대한 기술적 이해를 모두 겸비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유시민씨 의견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사기니까 금지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엔 소비자 보호, 거래 투명성과 실명성 등만 확실하게 하면 되지 않나 싶다. 
다음, 파리바게뜨
문제가 타결을 봤단다. 종래 제빵사들을 고용하던 협력사는 없애고, 본사와 가맹점이 공동 출자(10억 원)한 자회사를 만들어 제빵사들을 고용하기로 했으며, 임금을 16.4% 올리고, 복지는 향후 점차 본사 수준으로 맞추어주도록 한다고 한다. 노동부는 벌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고 파리바게뜨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것 하는데 넉달 걸렸다.
노동부가 설쳐서 무엇이 더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제빵사들은 협력사의 정규직원이었다. 다수의 협력사가 아니라 하나의 자회사로 통합되는 만큼 파리바게뜨 본사에 대한 제빵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아 노동의 안정성이 개선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파리바게뜨는 어쨋든 본사 직접 고용은 회피했다. 반숙련 제빵사를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사업모델엔 변화가 없다. 이 정도면 노동부가 애초에 당장 한달 안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말을 안 들으면 수천억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협박조로 들이댈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은근히 압력을 넣으면서 협상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같은 결과를 이룰 수 있었을 것 같다. 파리바게뜨가 인상된 임금과 강화된 노동 경직성에 따른 수익성 악화을 어떻게 대처할지는 앞으로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퇴직연금.
이건 귀국한 뒤에야 알게 된 것인데, 노동부가 그동안 수년에 걸쳐 추진하던 퇴직연금 제도 개혁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다. 
지금 퇴직연금은 사용자인 회사와 금융회사가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계약식으로 일본에서 베껴 온 것이다. 어느 금융사에게 돈을 맡길지, 어떤 펀드에 투자할지 등에 대해 막상 퇴직할 때 돈을 받을 피고용인들은 통제 권한이 별로 없다. 그래서 대출을 갖고 로비를 할 수 있는 은행이나 보험사가 13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거의 다 석권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노동부도 이를 받아들여 기금식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해왔다. 기금식 방식에선 매달 적립되는 돈을 운영하는 기금을 만들고, 사용자 회사와 직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같이 이사회에 참여해 자산 배분 정책과 펀드 운영사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최종 수혜자인 직원들의 의견이 더 반영될 수 있고 중간 업자의 개입에 따른 문제를 제거할 수 있으니 과거보다는 선진적인 방식이다. 일본만 해도 계약식과 기금식 중에서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한국은 계약식 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부가 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년 동안 노동부가 추진해 온 사안이고, 바로 지난 12월만 해도 노동부 김영주 장관이 기금식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그것도 아무 설명도 없이 앞으로 추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다. 
이건 사실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기업 퇴직연금은 지금은 130조 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자산이다. 직장인들의 노년 은퇴 생활은 물론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심대하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짤막히 단순 보도만 했을 뿐 별로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한국 언론은 연금 문제에 둔감하다. 국민연금에 관해선 조금 나아졌지만 기업 퇴직연금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 지에 대해선 거의 까막눈 수준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퇴직연금제도는 문제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퇴직연금 제도의 주무부서가 왜 노동부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퇴직연금 제도의 핵심은 소득세 면세 제도다. 매년 면세로 소득의 몇 퍼센트, 액수론 얼마까지 적립할 수 있는지, 나중에 돈을 꺼내 쓸 때 소득세는 어떻게 부과할지가 핵심이다. 따라서 기재부 조세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노동부가 건드릴 게 하나도 없다. 노동부 입장에서 중요한 분야는 수급자, 즉 나중에 돈을 받을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만 신경쓰면 된다. 
게다가 사실 한국의 퇴직연금제도는 말이 연금이지 기존 퇴직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퇴직 "연금"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겨우 일년에 한달치 돈을 붓는 것이니 30년 일해봤자 30개월 어치 돈만 적립되었을 뿐이다. 그걸 갖고 은퇴 후 연금에 쓰라고? 노후 생활 준비하기엔 택도 없다. 자기들도 이걸 알아서 원청 기업에선 퇴직할 때 명퇴금 명목으로 돈을 두둑히 챙겨준다. 때론 이게 퇴직금 액수에 육박한다. 물론 이것도 원청 부문 얘기이고 하청 부문에선 어림도 없다. 적립한 돈도 대부분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에 넣어 놓고 있어서 장기적 투자 수익률이 낮을 수 밖에 없다. 
2005년 정부안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도대체 왜 이렇게 설계 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노동부는 퇴직금 제도에 있어서 노동자 이익 보다는 사용자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퇴직금을 별도로 쌓지 않고 장부상으로만 인식하도록 하다가 IMF 위기 때 기업이 도산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게 했다. 퇴직연금제도도 기껏 바꾼다는 것이 일본에서도 한참 오래 된 계약형을 들여 왔다. 이미 2001년부터 일본에서 추가로 도입된 기금형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엔 전시행정, 졸속행정, 땜방행정의 전형적인 예였다. 그리고 이게 12년이 지난 지금껏 변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젠 자기들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서 개선책으로 도입하려던 기금형 퇴직연금을 아무 설명도 없이 취소했다. 기금형이 도입되면 시장을 잃을 은행과 보험업계의 로비에 넘어간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언론이나 노동자나 아는 사람이 없어 이슈화도 안 되고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그동안 있었던 일로 세 가지를 들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는 최저임금 시행에 따른 충격이다. 이미 무리수를 두었는데 이를 무마하려고 후속으로 악수를 두고 있다. 처음엔 일년에 그친다던 고용지원금을 이제와선 내년에도 한다고 한다. 그것도 별 효과가 없어서 신청자도 미미하다. 자칫하면 준비한 3조원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 자영업자 계층는 이미 동요하고 있고 청와대도 당황하는 눈치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 생각엔 아마 올해 내내 이 문제와 노동시간 축소, 정규직화 불만, 공무원 증원, 일자리 창출 부진 등으로 한국 사회가 매우 시끄러울 것이다. 
노동은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이 만나면서 생기는 파생 시장이다. 노동은 인간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상품시장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경직적이고 과거 인간관계 상의 역사에 영향을 받는다. 조세와 재정으로 시작해서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변화를 꾀했어야 하는데 그것은 놔두고 노동, 그것도 가격 개입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수순이 꼬였다. 세상을 자본 대 노동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복잡한 현대 경제를 다룰 수 없다.
청와대는 이미 당황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 초조해질 것이고, 추가 조치를 요구할 것이다. 이미 판은 벌어졌으니 공무원들은 이런 저런 대책을 계속 가져올 것이다. 처음 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또다른 탁상행정, 졸속행정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 실력이다.
나는 이런 논란들이 가라앉기는 커녕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회의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미 헤매기 시작한 부동산 문제와 가계부채 문제가 겹치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일년만에 경제정책에서 궤도 수정을 요구받게 된다. 그것이 지방선거 전일지 아니면 후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러나 국회에 또아리를 치고 있는 야당이 저러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출신 지방 자치 단체장이 몇명 더 뽑힌다고 해서 국정 개혁에 도움 될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구름이 끼고 있다. 지지율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이유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으로 보이는 이유가 공공복지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평시 내가 갖고 있던 이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외 언론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4차 산업혁명에 훨씬 더 유난스럽게 예민하다. 식자층 쳐놓고 이것에 대해 한마디 안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 정부는 4차혁명 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나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잠재성을 인정하지만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쉽게 달아오르는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 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한국 사회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더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사회적 요인이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공공복지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도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원청과 하청으로 나뉜 사회에서 원청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다 한번 원청에서 떨어져 나가면 받쳐주는 안전망이 없다. 그래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예측에 이토록 모두들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래 뉴욕 타임즈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공포가 스웨덴에선 별로 없다고 한다. 기자는 그 이유가 사회복지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고 노사간에 신뢰 관계가 있어서 그렇다고 진단하고 있다. 
영어 기사라서 읽지 않을 사람들에겐 기사 중간에 있는 그림이라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엔 공공복지 지출 비중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간에 비교한 그림이 있다. 아마 모두들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찾아볼 것이다. 미리 얘기하면 제일 끝에서 두번째다. GDP 대비 10.4%로 미국의 반 수준이고 일본의 23.1% 에 비해서도 반도 안 된다. 스웨덴은 27%다. 꼴찌는 멕시코다. 한국과 멕시코는 노동시간이 제일 많은 나라 순서도 같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다. 사람의 꿈과 절망과 땀과 눈물과 핏물이다.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도 어린이 집부터 시작하는 교육비와 집 값에 허덕인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한국처럼 거의 사립에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만약 건강이 한번 나빠지면 60% 밖에 보장하지 않는 건강보험도 문제지만, 그전에 직장을 잃어 금방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더 크다. 실업보험이 유명무실하니 다른 직장을 적극적으로 찾으러 나서기도 어렵다. 원청에 속해서 가파른 연공급과 후한 기업 복지제도 덕분에 당장은 편한 것 같지만 50대 중반이면 대다수가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한다. 공적 연금과 기업 연금 모두 미비해서 대다수는 노후 생활을 할 소득이 막막하다. 원청이 그러니 하청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속한 한국의 기성 세대는 경제 체제를 결혼, 양육, 교육, 건강, 실업, 은퇴 등, 인생 사이클 상 모든 단계를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만들어 놨다. 그들은 세금과 국가 재정을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 놓았다. 고속성장과 부동산 값 상승만 되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말하고 살았다. 
이젠 안 통한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평소에 불안하니, 그것이 로봇이든 인공지능이든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4차 산업혁명 타령에 모두들 민감하다. 
이건 우리 탓이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해서 그렇다. 아니, 몰라서 그렇게 했다. 미국 것과 일본 것을 베껴왔는데, 어설프게, 잘못 베껴왔다. 스웨덴? 좋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나라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하고 싶다. 한국형 프랑켄슈타인 경제체제의 원형을 제공한 미국과 일본도 우리 처럼은 안 한다.
4차 산업혁명? 잊어버리자. 흥분하지도 말고, 걱정하지 말고, 닥치면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그게 아니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한국의 관혼상제, 이대로 괜찮은가?



11월이다. 아버님 제사날이 가까워졌지만 며칠이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아내에게 물었다가 그날 내가 다른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을 미리미리 기억해놓지 않고 날이 임박해서야 떠올리는 내 습관 탓이다. 부리나케 약속을 조정했다.
그런데 사실 언제를 제사날로 잡아야 하는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기일이 되면 돌아가신 분 제사부터 먼저 지내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그 전날 밤에 미리 준비했다가 자정이 지나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친지들이 모여서 자정까지 있다가 제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점점 제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앞당겨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저녁 8~9시에 하고 헤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제사는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점이다. 기일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기일 하루 전에 지내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니 말이다. 내 생각엔 그럴 바에야 기일날 저녁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번 기회에 형제들과 상의해서 제사날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확정할까 싶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가정 의례가 엉망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원래 가정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은 것이다. 이중 갓을 쓰는 성인식인 관례(冠禮)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婚禮)는 개신교 목사가 집전하는 기독교 혼례 방식이 교묘하게 섞이더니 이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같은 집안 안에서도 형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는 박정희가 만든 가정의례준칙 때문에 가장 해괴망칙하게 되어버렸다. 국가가 가정 의례를 획일적으로 정하고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강제성은 없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안에 대통령령인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남아있다. 
장례에서 내가 가장 불만인 것은 망인이 돌아가시자 마자 사흘안에 후다닥 장례를 끝내는 3일장이다. 돌아가신 분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한 예식 치고는 너무 어수선하고 급박하다. 이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며칠 시간을 두고 준비한 후 장례식 날자를 따로 잡아 그 시간에 방문해서 애도를 같이 표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을 불러서 시체 안치실 옆에서 염을 하는 장면을 보도록 하는 것도 나는 약간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이 화장을 하는데 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대형병원 구석에 마련한 장소에서 사나흘 만에 장례를 치르는 한국의 장례 문화가 나에겐 거의 야만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부모님 장례식 방법을 형제간에 미리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 역시 막상 일이 닥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엔 부모님 장례를 이렇게 치른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돌아가신 분에게 우리는 좀 다른 방법으로 예의를 표시할 수는 없을까? 
제례(祭禮) 때를 맞이해서 제사를 언제 지내는 것이 적절한지를 갖고 얘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가정의례가 국적불명, 취지불명인 채 살고 있다. 차례 하나를 지내면서도 어떻게 할지를 확실히 몰라 서로 눈치를 보면서 치룬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정해지지 않아 자기들도 확실하지 않은 방식을 굳이 흉내내는 시늉을 할 필요가 있을까? 
관혼상제를 겪을 때마다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얼마나 우리의 삶이 뿌리까지 흔들렸는지를 새삼 절감한다.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남한산성, 이제 그만 잊을 수는 없겠니?

페이스 북 담벼락에 남한산성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옛날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이면 모두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벌어졌다는 주화론 대 주전론 싸움을 안다. 나는 이 얘기를 어릴 시절,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시절, 백마산성 임경업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최명길과 김상헌 역할을 누가 맡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보면서도 저거 참 답이 없는 논쟁이겠다 싶었던 것은 기억한다. (드라마 시리즈 후반부에 왜 임경업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이건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에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50권 밖에는 워낙 읽을 것이 없던 탓도 있지만 당시 나는 아버지 서재에서 역사 학술서와 논문집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책에서 읽은 얘기를 갖고 마침 역사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에게 수업 후에 찾아가 물어서 그를 당황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어 한사군이 산동 반도나 요동에 있었다는 식의 주장과 교과서가 배치되는데 왜 그런 것이냐는 등.
그때 병자호란 전후 역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병자호란 시기에 주전론이 옳은지 아니면 주화론이 옳은지를 갖고 백날 얘기해봤자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당시 중요 사건의 연대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난 것이 1627년 3월 초다. 침입하자마자 열흘도 안돼 평양을 함락시켰다. 인조는 그 소식을 듣고 그 다음날(3월 12일) 강화도로 도망갔다. 전쟁 시작부터 딱 10일 걸렸다. 강화도를 건널 준비를 하지 않았던 후금군은 입맛을 다시면서 전쟁 두달만에 화평을 맺고 철군했다. 
후금이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 명나라를 치기 전에 배후를 정비하고자 조선을 침략한 것은 9년 후 1636년 12월 28일이다. 정묘호란의 경험을 살려 기병 위주로 구성한 청군은 정묘호란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압록강 도하 사실을 조정이 알게 된 것이 10일이나 지난 1월 7일이었는데 그때 청군은 이미 개성 근처에 도달했었다. 강화도로 도망갈 시간이 없었던 인조는 1월 9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청은 이번에는 수군도 끌고왔다. 강화도 침공 하루만인 1월 22일 함락시키고 봉림대군을 잡았다. 이 소식을 듣고 인조는 1월 30일 항복한다. 단 한달 사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만큼 청은 준비를 하고 왔고 조선은 전혀 준비를 못했다. 
하지만 준비를 했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연 조선이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다음이 핵심이다. 청이 명을 멸망시킨 것이 1644년이다. 병자호란 뒤 겨우 8년만이다. 중학교 때 이것을 알고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만큼 청은 강대했다. 그렇게 융성한 청나라를 상대로 당시 조선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 주전론, 또는 척화론은 정말 무망한 헛소리였다. 조선은 청을 상대로 전쟁을 해나갈 국력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조롱감이다. 그러나 주화론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소중화라고 생각하던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으로서 주화론은 단지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임시적인 변통으로나 내세울 수 있을 뿐,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주장이었다. 명나라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청이 황제를 칭하면서 군신간 관계를 요구하면 명분을 중요시 하는 조선의 지배층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즉 이래저래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낙후되기 짝이 없는 조선 지배계층에게 이 소중화 사고방식이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박지원이 건륭제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사신단에 끼어 북경에 간 것은 1780년이니 병자호란 후 거의 150년이 지났을 때다. 그런데도 그 사신단은 불교에 심취한 건륭황제 자신이 예를 갖추는 티벳의 판첸 라마를 만나라고 굳이 자리를 마련해 주자 처음에는 거부했다. 만난 자리에서도 예를 갖추기를 거부했다. 판체라마가 선물로 불상을 주자 갖고 갈 생각은 커녕 버리다시피 하인들에게 주었다. 요새 말로 진상을 떨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 그들이 청 황제를 속으론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와서 쓴 열하일기에서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를 쓰지 않고 건륭제 연호를 썼다고 박지원은 비난을 받았다. (이건 커서 알게 된 얘기다.)
다시 돌아와서, 중학생 시절 병자호란 8년 후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알고 나는 조금 허전했다. 중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조선은 이러나 저러나 당하게 되어 있었다. 주전론은 국제 정치상 불가능했다. 주화론도 국내 정치상 실행 불가능했다. 
성인이 되어 나는 북쪽 유목민족에 의한 대륙세력이든, 아니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양세력이든, 주위 세력이 강성해지면 한반도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주전론과 주화론을 갖고 지금까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정말 쓸데 없는 얘기다.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찻잔 속 태풍이다. 내가 보기에 그 얘기가 그후에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입에 오르게 된 것은 오로지 당시 조선 지배계층의 우물안 개구리 식 낙후된 사고방식 때문 탓이다. 그들은 자기 주제를 알지 못하고 이불 안에서 활개짓을 너무 오래 했다. 그것 대신 병자호란 이후, 아니 명나라 멸망 이후 중국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은 조선 후기 사회 처럼 나락에 빠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1636년부터 1876년까지 자그마치 240년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미 이 일화는 한국인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나는 이것이 아쉽다. 하등 중요하지도 않은 사건을 갖고 왜 두고두고 울궈먹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이 그후 조선 왕조 내내 회자되고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역사적 기억에 깊이 박히게 된 것은 그후 벌어진 당파싸움에 이것이 이용된 탓인 것 같다. 김상헌이 귀양에서 돌아와 장수를 누리고 안동 김씨 대장 노릇을 하면서 이 사건을 울궈먹은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고루한 조선 사대부들이 이것을 갖고 두고두고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고 정파를 갈랐는지 모르지만 이거 정말 쓸데 없는 얘기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사람 저사람 이 얘기를 반추하고 재해석해서 극적인 순간으로 내놓는다. 요새 같아서는 역사소설과 역사영화가 역사를 뒤흔드는 꼴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극적인 것은 정묘호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조선의 지식인층이고, 정묘호란의 경험을 엉뚱하게 해석해서 농성작전을 짠 조선군이고, 병자호란 때 청의 압록강 도하를 거의 열흘이 지나서야 알 정도로 안보와 외교에 어두운 지배층이고, 수백명의 충청도 수군을 이끌고 와 기껏 도망가지 않고 싸웠지만 1만이 넘는 청 수군의 강화도 침략을 막지 못했다고 나중에 참수 후 효수당한 충청 수사 강진흔이다. 병자호란 갖고 영화나 소설을 만들 거면 이런 것을 갖고 만들면 좋겠다. 
막상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더 큰 교훈은 다른 데 있다. 냉엄한 국제정치에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 자기들끼리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 바깥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 따라 그때 그때 편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것, 그러러면 적어도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 상대방 정파가 싫어도 외교안보에 관해 야당은 정부 비판 시 언동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력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는 것, 그래도 군대는 독사처럼 날을 세우고 건드리면 상대에게도 피해를 줄 태세를 갖고 있어 보여야 한다는 것 등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북한이 그러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이런 분열이 따로 없다. 끙!)
그래서 나는 중학생때부터 앞으로 되도록이면 남한산성, 또는 주전론/주화론 얘기는 사람들이 그만 얘기하길 바랐다. 물론 그 희망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 잊자. 차라리 다른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