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1일 월요일

좋은 적자와 나쁜 적자 : 적자 재정,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정책에 따른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에 관해 보수 세력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앞으로 국회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각 언론들도 많은 기사를 써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시민들로서는 누가 맞는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내 생각에 한국인들이 경제 문제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재정 적자와 국민연금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한국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늘 주장해왔다. 예를 들어 작년 한국의 재정적자는 1.7% 였다. GDP 대비 2% 정도의 재정 적자를 갖고 시비를 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 이는 과거 정부 관료들이 균형재정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생각하도록 세뇌를 해 놓은 결과다. 근래에 들어서는 보수 정치세력이 복지국가와 이를 위한 증세를 막기 위한 근거로 재정적자를 갖고 국민들을 협박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내가 장기 재정 수지를 어떻게 보는지를 간략히 설명해보았다. 비록 숫자가 나와서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요점을 깨치고 나면 머리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다. 시작하자.
장기 재정 수지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 대비 부채의 비율이 얼마인가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만 되면 아무 상관이 없다. 갚을 능력은 세금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세금 수입은 GDP에 비례한다. 따라서 재정 적자가 나도 그 덕분에 경제 성장이 얼마나 촉진되는가가 중요하다. 이게 핵심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지금 한국처럼 경상 GDP가 5% 증가하는데 재정적자가 2~3%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과 같이 부채비율이 40%이고 경상 GDP가 5% 증가하는 국가에서 재정 적자가 40년 동안 매년 GDP 대비 2%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40년 후 2057년 부채비율은 38%로 도리어 약간 감소한다. 재정적자가 매년 3% 난다고 해도 40년 후 부채비율은 57%일 뿐이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단순한 셈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계산의 정치경제적 의미다. 4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재정적자가 2~3% 발생한 시나리오인데도 이렇다. 그러니 재정적자가 몇년 발생하면 뭐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소란을 부릴 일이 아니다. 
장기 국가 부채비율 분석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분모인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경상 GDP 성장률이 위에서 말한 5%가 아니라 4% 라면 재정적자 2%와 3% 시나리오에 따른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46%와 68%로 증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만 해도 감당할 만하다. 만약 성장율이 3%로 떨어지면? 재정적자 2%와 3% 경우에 국가 부채비율은 각각 59%와 82%로 상승한다. 일본의 국가 채무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해 발생한 재정적자 탓도 있지만 경상 GDP가 실질 성장율 하락과 디플레이션으로 제자리 걸음을 한 탓도 크다. 
그러면 한국의 장기 경제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큰 위협은 이미 진행 중인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다. 이건 단순한 양의 문제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경제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 다음 위협은 각 국민들의 생산능력이다. 이것은 질의 문제다. 현재 한국은 진즉 지식경제로 전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우기 경쟁에 따른 상대평가와 원청/하청 소속에 따라서 보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 양성 시스템과 원청/하청 시스템은 각 개인의 생산성과 보상 사이에 괴리를 낳게 한다. 생산력과 상관 없는 보상 시스템을 고집하는 경제체제로는 각 개인의 생산능력을 효과적으로 높이기가 어렵다. 
그러면, 재정 확대 정책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 잣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위에서 장기 재정 수지 분석에서 중요한 것이 국가부채 비율이고, 또 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경제성장률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잣대는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이 경제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이어야 한다. 같은 재정 확대, 같은 재정 적자라고 해도 그것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그 적자는 결국 나중에 생산력 증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 거꾸로 만약 그 재정 확대가 생산력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부담도 더 커진다. 
일본이 오랫동안 대규모 적자 재정을 지속했는데도 경제성장이 침체되고 국가부채비율이 200%가 넘게 올라간 이유도 그 재정 확대가 고령화를 해소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좋은 재정 적자와 나쁜 재정 적자를 구별해야 한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장기적 경제 성장률 상승에 도움이 되는 재정을 확대하느라 생기는 적자는 '좋은 적자'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는 재정이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건강보험제도 개선, 아동수당 제도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앞으로 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더 구체화 되길 기대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경제적 보상체제의 왜곡을 해소하여 국민들의 생산력 증진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교육 재정을 쓰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공교육 부담을 늘리고 사림 학교에 지원하는 재원을 줄여야 한다. 이것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에 반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원청 부문인 국가 공무원 인원 수 대폭 확대 같은 정책은 우려스럽다. 지금과 같은 보상 시스템을 놔두고 추진하면 도리어 원청 부문의 보상체제 왜곡을 증폭시키고 이에 따라 경제 전체적인 생산성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첨부한 기사는 전슬기 (Seulgi Juhn)기자가 쓴 기사다. 약간 길지만 기초적인 숫자를 한 곳에 잘 정리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적자성 부채와 자산성 부채를 구별하지 않은 점이다. 제대로 하려면 적자성 부채만 갖고 얘기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첨부한 표에선 이 둘을 구별해 보여주면서 기사 글 안에서는 이에 상응한 언급이 없다. 이 문제는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된다.

2017년 7월 23일 일요일

부모 없는 자식: 최저임금 만원

요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활발하다.
그런데 몇가지 이상한 일이 있다.
첫째. 누가 이것을 주창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그저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에 있었다는 말만 나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만든 공약인가? 캠프 내에서 누가 이것을 주창했는가? 누가 이 정책의 산파 역할을 했고, 누가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는가? 아무도 '이것은 내가 적극 밀은 정책이다. 이것이 잘되면 내 공이고 잘못되면 내 탓이다' 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작년에 있었던 총선 때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때는 누가 어떻게 만든 정책 공약인가? 이것도 불분명하다.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로 임명된 홍장표씨등이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할 때 이를 구현할 정책 수단의 예시로 최저소득 인상을 거론한 적은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론 그도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을 정책 수단 중 하나로 들었을 뿐 2020년까지 만원으로 인상하자고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둘째, 이것의 취지도 모호하다. 소득주도성장론에서 주장했다고?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론에서 주요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예시에 불과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정책 수단이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무슨 수로 경제 전체적인 임금소득을 올리겠다는 것인가? 그러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나 통신요금 인하, 사회적 일자리 확충 등이 거론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예로 든 것이지 몸통은 아니었다.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이것들은 새발의 피다. 이것들을 다 한다고 해서 임금주도 성장이 되지는 않는다. 피고용자 총 보상(total compensation)이 약 650조 원이다. 이중 임금소득이 약 550조 원이 될텐데 5%만 증대시키려해도 일년에 30조 원을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자에게 1천원씩 더주고 통신비 조금 내려봤자 10조 원 근처에도 못간다. 
묻고 싶다. 최저임금 만원은 소득주도성장론의 몸통인가, 아니면 예시인가? 김상조처럼 마중물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퍼 올릴 지하수는 어디서 나오나?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오나?
셋째, 근거도 없다. 최저임금을 어느 정도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기준을 무엇을 할지에 대한 논의를 제안한 사람이 없다. 국제적으로 최저임금을 얘기할 때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보다 더 많은가 아닌가를 우선 본다. 한국은? 이미 거의 45%에 달한다. 조금만 올려도 금방 50%를 넘어버린다. 만원이면 중위소득 50%를 훨씬 넘어버린다.
넷째, 이것을 실시하면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정부 측 예상 시나리오 조차도 없다. 이 정도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정책이면 이것을 실시할 경우 예상 효과가 무엇인지가 나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상대로 정책 효과가 나는지를 나중에 챙겨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아직까지도 언론에 의한 논란과 국회예산정책처 등이 만든 회계적 자료만 있을 뿐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인상 결정 다음날 예상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자기들이 일은 저지르고 나서 그 다음날 이를 옹호하는 대신 부작용 경감 대책을 늘어놓는 것은 세상에 처음 본다. 이 정도 되는 사안이면 정부 내 누군가가 이것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가 주창한 것이고,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과 정책 담당자가 동의한 것이고 이러이러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누군가가 나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가? 
요약하자. 아이는 태어났는데 내가 그 아이 부모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일은 벌어졌는데 내가 했다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누가 주장한 것인지도, 취지도, 근거도, 예상 효과 분석도 모호하게 여기까지 왔다. 대기업노조의 선무당 소리를 당론이라고 받은 김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어제 문대통령이 일단 해보고 내년에 가서 다시 보겠다고 했단다. 자기들도 덜컥수를 둔 것을 두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말처럼 들린다.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끈질긴 도둑들


최근 정부와 국회가 합의한 건강보험료 제도 개편을 비판하는 조선일보 김동섭 기자의 컬럼이다. 
23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가 합의안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읽고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야당이 자기들 안을 관철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간 정부방안과 야당안을 둘러 싼 정치권 논의에 대해 언론이 보도한 적도 없었다. 
뉴스가 느닷 없었던 것에 비해 진행 속도가 일사천리다. 보건복지위는 25일 이미 통과되었고 30일 본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합의안은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안의 핵심 내용은 대부분 그대로 놔두었다. 내년부터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중 합산소득이 3400만원을 넘는 경우(10만명), 가입자의 형제·자매인 경우(25만명) 피부양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가입자에게 재산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고, 65세 이상 부모는 돈이 많아도 여전히 피부양자로 남게 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버젓한 직장을 가진 자기들 부모는 앞으로도 건강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다. 원청에 속하는 상위 10%에게 유리한 현행 부과체계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담합은 이렇게 뿌리가 깊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소득기준으로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총선 후에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종대씨를 위원장으로 한 특위까지 만들어 논의끝에 확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원래 정부안을 일부 수정한 것에 그친 법안에 자기들이 합의하기로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기사 역시 없었다.한국 정당이 내거는 정책과 공약은 이토록 허망하다. 
정책? 그거 허업이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자율적 임원 인사

많은 사람들이 한국정치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한다. 그러나 제왕적 또는 지나치게 집중화된 권력은 국가 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어느 조직이든 권력의 핵심은 예산권과 인사권이다. 둘 중 인사권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집중화된 권력이란 인사권이 한두사람에게 집중되었다는 뜻이 된다. 권력의 전횡도 결국은 인사권의 전횡이다. 
나는 보다 자율적이고 분권화된 조직 운영을 꿈꿔왔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별러왔던 것을 한화투자증권에 있는 동안 실행에 옮겼다. 
인사권한을 부사장 및 다른 임원들과 나누었다. 임원 승진과 해임 결정을 부사장과 임원들이 토론을 거쳐 결정하게 했고 나는 최대한 뒤로 물러서 있다가 최종 숫자 결정, 즉 몇명을 승진 시키고 몇명을 해임할지에만 참여했다. 
모두들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물러난 동료 임원들은 돌이켜볼 때 가장 좋았고 내 퇴임으로 계속되지 못해 가장 아쉬운 제도로 이것을 꼽았다.
나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력 사용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러나 기존 황제경영방식에 매몰된 재벌회사 문화에서는 내가 떠나면 없어질 제도였지만, 세상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실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틀 전, 그 방식으로 3년 내내 동료 임원들과 부하 직원들 사이에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았던 사람이 이번에 물러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화는 양화를 몰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아래는 1년 전 자율적 인사 결정을 어떻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한화투자증권에 와서 일하면서 강조했던 것이 자율과 규율 사이의 균형이었다. 직원들에게 자율 권한을 더 많이 주는 대신 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런 자율권 확대 중에서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임원 승진, 평가, 퇴임을 임원들끼리 모여 토론을 거친 후 공개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흔히들 상급자의 권력으로서 가장 놓기 싫어하는 것이 인사권이다. 나는 취임 했을 때부터 그것을 대폭 위양하기로 했다.
정기 임원 인사 철에 되면 우리 회사 임원들은 날을 잡아 회사 밖에 모인다. 제일 처음 순서는 신임 임원 선정이다. 사업본부장인 부사장들이 올해에 임원으로 승진시킬 후보를 제안한다. 주의 동료들의 익명 평가와 부서 직원들의 상향 평가도 같이 공유한다. 그러면 그 후보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여러 임원들이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나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다. 
이렇게 후보자들에 대한 소개와 토론을 모두 거친 후 신규 임원 승진 우선 순위를 적어내게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투표 내용과 그 우선 순위 합산 결과를 화면에 공개한다. 그렇게 하면 누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뽑았는지를 서로 알 수 있다. 후보자가 소속된 본부 임원들이 자기 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한 것을 제외한 결과도 알 수 있다. 최종 결과와 가장 근접하게 투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고, 가장 다르게 투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끝나면 상무보들은 퇴장한다. 상무보에 대한 평가를 상무와 전무, 부사장들만 남아서 하기 위해서다. 각 사업본부장들이 상무보에 대한 일차 평가 의견을 제시하고 나머지 임원들이 그에 대해 논의한다. 그 토론이 끝나면 상무들이 퇴장한다. 그러면 남은 고위임원들이 상무들에 대한 평가를 같이 논의한다. 
최종 임원 고과는 나와 부사장들만 모인 자리에서 부사장들이 논의를 해서 결정한다. 각자가 임원들에 대한 고과 순위를 적어낸다. 이 순위를 합산해서 올려놓고 최종 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이견 조정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임원 승진 후보 우선 순위를 결정할 때 아예 나는 투표를 하지 않는다. 최종 임원 고과 순위를 위한 일차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의견을 말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부사장들 사이의 이견을 조정 할 때만이다. 그렇게 해야 부사장들과 임원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 
퇴임 임원 선정도 투표로 한다. 대신 이것은 비밀투표로 한다. 각 임원들은 나에게 퇴임 후보 세명을 순위를 정해 적어낸다. 그러면 내가 그 투표 결과를 모아서 정리한 후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알리지 않고 최종 결과만을 부사장들과 공유한다. 부사장들은 자기들이 선정한 퇴임 후보와 다른 임원들이 선정한 퇴임 후보를 비교해서 최종 퇴임 후보 순위를 정한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중에서 몇명을 승진시키고 퇴임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첫해인 2013년부터 이렇게 했으니 올해에는 세번째다. 

아내 말 안들어서 생긴 일

청문회를 다녀온지 10일이 지났다. 
청문회 직후 인터뷰 요청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어쩌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말을 했다고 언론과 인터뷰하고 다니는 것은 꼴불견이다. 
우리는 이게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손혜원씨가 나를 참고인으로 나와 달라고 한 것은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했는지를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신상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완영씨가 의도가 뻔한 질문을 하고 내가 그것을 못참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원래 나는 말이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이다. 그날도 그랬다. 예를 들어, 왜 그렇게 그들이 집요하게 복수를 하려고 했을까요 하고 손혜원씨가 물은 것은 원래 예상에 없었다. 재벌이 조폭 조직 운영 논리와 비슷하게 운영된다고 한 것은 얼떨결에 즉석에서 나온 답이다. 미리 생각해 둔 질문이었으면 "범죄조직" 이나 "군대조직" 등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을 썼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 대중의 반응은 우리 생각을 훨씬 넘었다. 청문회에서 이완영씨가 보인 행동에 국민이 워낙 반감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내가 한 말은 별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들 아는 얘기를 한 것 뿐이다. 물론 요즘은 대중이 원하는 인기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치 지도자로 추앙받는 세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다.
정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차 지나고 나서 손드는 것 보았나? 정치 하려면 지난 총선에 출마했어야 한다. 뻔한 인기 발언도 하고, 여기저기 몰려 다니고, 이자리 저자리에 기웃거려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후배 교수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 말에 의하면 일단 정치권에 갔으면 모든 행동이 정치로 해석되는 것인만큼 무조건 국회의원 자리 하나를 꿰찼어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그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식으로 산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반응이 큰 것을 보고 반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발언 때문에 체면이 깎인 측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여론 조작에 능숙하다. 아예 전담 조직마저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음해성 글들이 카톡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돌아다닌다고 주위 사람들이 복사해서 알려왔다. 증권업계의 과당매매 영업등 비윤리적인 사업방식을 비판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작년 가을 내 거취를 갖고 부딪쳤을 때 가장 활발히 동원되었던 수법과 같은 방법이다. 마치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제 3자인 척 위장한 사람들이 뒤에서 탄식하는 척하면서 총을 쏘고, 어설픈 기자를 동원한다. 방치하기엔 너무 큰 악재이니 해명하는 것이 어떠냐고 접근해오는 것도 작년과 똑같다. 영화 <대부>에서 돈 코를레오네가 총격을 받고 위험에 빠졌을 때 아들 마이클에서 "화해를 제안하는 자가 배반자"라고 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어쨌든, 예상치 않은 청문회 반응 때문에 거북하다. 제일 불편한 것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제도 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누군가가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에휴,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뒤에서 음해하는 것은 제보가 들어오지만 제풀에 나가떨어질 것으로 본다. 
이게 다 그날 아내 말을 안들어서 생긴 일이다. 아내는 그날 아침에도 내게 밖에 나가서 싸우지 말라고 했었다. 내가 20년 전 만든 신 삼종지도(新 三從之道)를 내가 어겼으니 할 말이 없다. 내가 늘 그렇지 뭐.
어려서는 어머니 말을 따르고, 성년이 되어서는 아내 말을 따르고, 늙어서는 딸 말을 따른다.